광야에서 마련된 식탁- 그 맛
시 78:19 하나님이 광야에서 능히 식탁을 준비하시랴
지난 토요일에 이란에서 온 지미 결혼식을 거행했습니다. 언제나처럼 십년동안 주방의 총 책임을 맡고 있는 백남수 권사님이 결혼식이 끝나자 맛있는 뷔페식사를 우리에게 준비해 주셨습니다. 그 음식상을 바라보며 모든 사람들은 그냥 당연하게 식사를 하겠기만 나 홀로 만의 광야에서 능히 식탁을 준비하시는 하나님을 묵상했습니다. 그 맛은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신실하심을 맛보는 식사였습니다. 이 광야에서의 식탁은 오늘도 내일도 오직 우리 아버지만이 마련하십니다.
결혼식에 관련된 많은 세월 속에 일들이 오버랩 됐습니다. 예수님의 최초의 표적도 가나 혼인잔지였으니 최초의 결혼식과 관련된 우리의 체험 이야기들을 늘어놓고 싶습니다. 제 인생의 최초의 다른 사람과의 결혼식에 관한 사건은 삼십 여년전 한 전과자의 결혼식과 관련이 있습니다. 전혀 모르는 사이였고 우리 집과 사는 방향도 남과 북 끝과 끝인데 그 신랑이 결혼식을 앞두고 사글세 보증금을 놓고 기도 했을 때 우리 남편 직원 다섯 명을 그리로 몰고 가셨습니다. 물론 결혼식을 앞둔 상황인지 전혀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날 우리 다섯명의 핸드백을 모두 털었던 돈은 정확하게 그분의 월세 보증금과 현충일에 올렸던 광야에서 마련한 식탁을 제공하였습니다.
그리고 홀리네이션스 선교회에서 삼위교회당에서 일곱 번, 그리고 해외에서 결혼식을 올렸던 한 쌍 모두 광야에서 하나님은 식탁을 베푸셨습니다. 그것도 아주 풍성하게 말입니다. 해외에서 일년전 약혼식을 하고 다시 올려야 하는 결혼식을 앞두고 이 신랑도 산에서 기도를 하고 내려왔습니다. 그날 우리는 다른 한국인 결혼식에 같이 가게 되었고 저가 고민을 하고 있어 보이는 신랑에게 결혼식을 올리는 비용이 얼마가 드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나라 에서는 300 만원이면 풍성하게 결혼식을 치룰 수가 있다고 했습니다. 저가 예수님이 물이 변하여 포두주가 되게 하시는 능력을 믿고 한 걸음 나아갈 때 자세히 그때 나왔던 돈의 출처를 기억해 보니 년말 정산을 하여 일년 동안 낸 세금 중에서 정확한 300 만원이라는 그 액수를 돌려받게 되었습니다. 그 나라에 돌아가서 결혼식을 올린 사진을 보여 주었는데 동네 사람들 모두 그들 특유의 춤을 추며 즐거운 잔치를 베푸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년 동안에 거행한 결혼식은 한번은 한달 간격으로 치렀고 한번은 두 달 간격이었습니다. 그때 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상식으로 어찌 광야에서 능히 식탁을 마련할 수 있으랴? 는 우리 수준의 상식을 깨고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라고 말씀하시고 그 전능하심을 보여 주듯이 측량항수 없는 풍성을 통하여 그분의 풍성함을 보여 주셨습니다. 주위에서 저를 걱정하는 권사님들은 한꺼번에 두 쌍을 합동결혼식을 시키면 경비가 줄어들 터인데 왜 따로 따로 해 주느냐는 질문도 받았습니다. 저가 그 질문을 하는 분들에게 그분들의 결혼식이라면 합동결혼식이 좋느냐고 되물으니 그 다음부터는 그런 질문을 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결혼식을 한 번도 엄두를 못내는 다른선교회외 달리 하나님을 신뢰하면 그렇게 측량할 수 없는 풍성함을 전하기 원하는 사도 바울의 고백이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처음 결혼식을 올린 러시아 카플은 그들이 출석하고 있는 러시아 사람들만을 하는 선교회에서 결혼식을 부탁했습니다. 다른 외국인들은 그냥 동거 생활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데 로미오와 일리나는 그것이 싫다고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리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그 선교회에서 그런 결혼식 같은 것은 선교회에서 하는 일이 아니라고 하여 우리에게 왔습니다. 우리는 모든 비용을 그때부터 우리 아버지께 받아서 결혼식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때 그때 필요한 것을 공급하셨습니다.
엡3:8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측향할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는 특권을 주심으로 말미암아 광야에서 능히 마련하시는 식탁의 맛을 조금이라도 알게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번 지미의 결혼식 비용도 하나님께서는 전혀 헌금을 해 보지 않았던 한 영혼에게 하나님이 하신 것이라는 너무나 뚜렷한 훈련과정을 통하여 부인할 수 없는 그 과정에서 스스로 천만원의 헌금을 하도록 인도하셨습니다. 두 가지가 감사한 것이 그 하나님을 만나도록 인도하셔서 그 영혼이 하나님은 살아계신다는 증언을 하게 된 것이고 우리는 그 손길을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식탁을 마련하게 하신 것을 보는 즐거움이었습니다.
광야에서 대하는 식탁은 전혀 다른 감동을 줍니다. 사실은 우리가 먹는 날마다의 모든 것은 하나님이 마련하시지 않으면 물 한방울도 우리가 마실 수 없는데 우리는 당연히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에 광야에서 마련되었을 때 특히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게 됩니다.
세월이 많이 흘러서 이제는 주님이 풍성한 삶을 주기 위해서 오셨다는 요한복음 10 장 10 절의 말씀과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이 무엇인지를 이론이 아닌 실지 삶속에서 일어나는 것을 전할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합니다. 사람들은 이미 기적을 부인하는 신학에 모두 물들어 있습니다. 자유주의 신학은 오병이어의 기적도 물위를 걸어오신 주님 이런 모든 것을 성경대로 해석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기적종식론을 많이 따라가고 있습니다. 실지 아니라고 하여도 하나님이 직접 하시는 실증을 보여 줄 수가 없는 전혀 능력이 없는 현실주의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시고 전능하시고 광야에서 식탁을 마련하시는 분입니다. 이 하나님을 모르는 한 우리는 사람만 의지하지 하나님을 전혀 우리 삶속에 모실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곧 피곤해 질것입니다. 반대로 광야에서 마련되는 식탁은 오늘도 내일도 변함없이 준비되어 우리를 기다린다면 우리는 기대 속에서 또 한걸음씩을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어제 청원공장 예배에 갔는데 그곳에서 만난 목사님이 제 책을 읽고 이제는 기도하면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기대가 되어 다른 분에게도 그 책을 이야기 했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기도의 응답을 넘치도록 하시는 분이시고 그분이 마련한 광야에서 식탁을 맛보실것을 권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