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게더 시리즈 - 싫어하는 언어
게리 채프먼의 여러 형태의 사랑하는 언어, 사과의 언어 모두 은혜롭게 많은 것을 배우고 좋은 글을 써준 저자에게 감사를 했습니다. 한가지 채프먼이 사과하는 언어와 같이 “싫어하는 언어”를 더 추가해서 써 준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싫어하는 언어”에 관하여 저가 느낀 것 만큼 아는 것 만큼만 나누어 보겠습니다.
사랑의 언어를 어떻게 해야 상대방이 사랑을 느낄수 있느냐 라고 주제를 설명해 나간다면 “싫어하는 언어”는 “공든 탑이 무너진다” 라고 표현하면 정답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상대방이 좋아하는 100 가지의 사랑하는 언어를 사용하고 사랑을 보여 주었는데 상대방이 치명적으로 싫어하는 언어를 한 번만 사용하여도 그 쌓아 올린 모든 공든 탐은 무너져 내리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눈이 예쁘지 않은 것에 콤플렉스가 있는 사람에게 농담을 한다고 “가뜩이나 못생긴 눈을 해 가지고” “그 눈으로 잘 보이기는 하냐?” 라고 웃으면서 말하면 그것은 농담이 아니고 관계를 악화 시키는 결과가 됩니다. 왜냐하면 그 언어는 비수를 찌르는 듯하기 때문입니다.
잠12:18 칼로 찌름 같이 함부로 말하는 자가 있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과 같으니라
어떤 남편은 툭하면 “당신이 아는 것이 무엇 있어?” 이렇게 이야기 하는데 아내는 남편이 자녀들 앞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자녀들이 엄마를 무시하고 말을 듣지 않는다고 투덜거렸습니다. 학력이 높은 사람에게는 그것이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학력이 좋지 않은 사람에게 그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자신의 뱉은 말의 열매를 먹게 될것입니다. 그 아내에게는 그것이 가장 싫어하는 언어이기에 그 언어도 역시 관계를 나쁘게 만드는 요소가 되었습니다.
“네가 도대체 할 줄 아는 것이 무엇이 있어? 네가 장애인이지 뭐야?” 라고 자녀에게 말을 하는 부모는 그 말이 얼마나 자존감을 무너뜨리고 일어서지 못하게 하는 싫어하는 언어인지를 생각한다면 그 입을 다물게 될 것입니다. 특히 싫어하는 언어를 두 사람만 있을 때 사용하는 것 하고 타인이 앞에 있을 때 하는 것에는 엄청난 다이너마이트 같은 위력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 앞에서 그렇게 할 때 더 강하게 모멸감을 느끼게 되기 때문입니다.
뚱뚱해져서 고민을 하는 사람에게 배를 쿡쿡 찌르면서 “이 똥배좀 봐라”하면서 놀려대는것을 농담이라고 생각하면 그것은 농담이 아니고 칼로 찌르고 있다고 성경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오십이 되기 전에 직장에서 구조조정으로 밀려난 사람이 있습니다. 이 가정에서 식사를 가끔 같이 하면 이 남편은 밥을 다른 사람보다 많이 먹는 편인데 아내는 그것을 비아냥거렸습니다. “밥을 누가 요새 두 공기씩 먹는다고 밥을 저렇게 많이 먹는데요.” 그때 그 남편의 눈에 엄청난 모멸감을 느끼는 것을 저는 읽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내는 전에도 그랬지만 늘 남편의 고함과 욕지거리를 듣고 사는 사람이 되면서 그것이 자신이 뿌린 씨앗이고 말의 심판을 받고 있다고 하는 것을 전혀 모릅니다. 이 이내는 저가 본 사람 중에서 가장 요리를 잘하는 사람 중에 하나입니다. 또한 경제력도 있기에 돈에 구애를 받지 않고 모든 면에 완벽합니다. 온갖 좋은 것 심지어 소금까지도 정제한 것 아니면 큰일 난다고 저에게 가르쳐 주며 갖가지 웰빙 음식이라는 아끼지 않고 직접 만들어 줍니다. 그러나 남편은 전혀 그 부분에 감사하지 않습니다. 가장 싫어하는 언어를 사용하였기에 공든 탑이 이미 무너진 것이라는 것을 알면 얼마나 자신에게 유익할까요? 아내는 전혀 감사를 모른다고 하소연 하는데 싫어하는 언어를 사용하면 모든 수고는 실패로 돌아가게 됩니다.
마12:34 -36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심판 날에 말에 무인한 말을 하든지 심문을 받는다고 성경에 말씀하신대로 우리는 이미 이땅에서도 심문을 받고 거기에 부응한 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특히 다른 사람 앞에서 밥을 먹는 것 가지고 그렇게 무안을 주고 무시하는 것은 아무리 좋은 반찬을 해 주어도 전혀 감사를 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밥을 많이 먹는 것은 구조조정으로 밀려난 후 그분에게는 전혀 다른 간식이나 먹을 것이 없고 오직 집에서 식사를 하는 것이 전부이니까 우리나라가 전에 가난했을 때 지금보다 훨씬 더 밥을 많이 먹었던 것을 생각하면 그 남편이 밥을 많이 먹는 것을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언어도 각자 느끼는 것이 다르듯이 싫어하는 언어도 각자 다릅니다. 돈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돈을 손실 보았다는 것이 가장 싫어하는 언어일 것입니다. 어떤 남편과 이혼한 아내의 고백이 “돈”을 벌어다 주어야 살지 않느냐고 하는 것을 들어보면 그분에게는 그것이 가장 싫어하는 언어입니다.
사랑에 관한 많은 묵상과 배움을 가지면서 저도 다른 사람 앞에서 사랑하는 이집트에서 온 와기에게 화를 냈던 것이 기억이 났습니다. 오늘 아침 메일로 정중하게 사과를 하였고 이따가 오후에 만나면 다시 사과와 용서를 빌 예정입니다. 이런 가르침을 주신 우리 주님께 감사 또 감사를 드릴뿐입니다.
어제 읽은 책에 사랑에 관한 멋진 정의가 있는것을 함께 나눕니다.
“사랑이란 다른 사람의 정상적인 성숙을 위하여 자기 자신을 주려는 의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