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게더 시리즈 -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
성경을 이제 71 독으로 들어갔습니다. 성경은 읽으면 읽을수록 “사랑하라”하는 말씀이 전부인 것을 왜 진작 깊이 깨닫지 못했을까 라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사랑의 모범을 보여주시고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사랑하라고 신신 당부하며 가르쳐 주셨는데 여태껏 신앙생활을 하면서 너무 먼 거리를 돌아와서 깨달았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오늘은 요한복음을 읽으면서 이런 깨달음으로 묵상을 해 보았습니다.
요15: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요15:12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주님은 우리가 기쁨이 충만하기를 원하시는데 그것은 즉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고 그 계명은 서로 사랑하는 것이기에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우리의 슬픔은 가시고 기쁨이 충만해 지는 것이라는 묵상입니다. 이것이 신학적으로 맞는지는 저는 잘 모릅니다. 한가지 아는 것은 사랑할수록 기쁨이 커지는것은 체험을 해 본 결과 깨달아지는것입니다. 그리고 사랑만이 기적을 남긴다는 놀라운 사실을 목격하면서 깨달은것입니다.
몰튼 T. 캘시 목사님이 쓴 Caring and How Can We Love One Another? 이라는 책에 참 공감이 가는 많은 내용이 있었습니다.
“세익스피어는 인생을 가장 실감나게 표현한 사람 중의 하나이다. 사람들은 세익스피어가 하나님을 알았다고 평가한다. 세익스피어는 그의 회극과 비극에서 인간의 본질을 이해하고 그것을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잘 조명하였다. 그의 희곡에서 다루는 질투와 분노는 우리들의 삶에서 볼 수 있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리어왕’ ‘햄릿’ ‘오델로’같은 비극이나 ‘겨울이야기’ ‘심벌린’‘태풍’과 같은 후기의 희국 사이에는 결정적인 구분이 있다. 이 비극에서 등장인물들이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을 주는 사랑과 동반되는 용서가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희극에서는 결정적인 순간의 사랑과 용서가 나타난다.”“만약 당신이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사랑의 태도를 취한다면 그 결과 당신은 모든 사람과 사이좋게 지낼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는 아무도 비극의 주인공이 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려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용서라는 처방전을 받아 들고 사랑하라는 말씀에 순종해야 될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경고를 하셨을까요?
마6:14-15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이 말씀을 심각하게 생각해 본적이 우리들에게는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용서를 받지 못한다는 생각을 심각하게 한다면 우리는 용서해야 하는 이 중대사를 안 해도 되는 것으로 넘어가지 않을 것 같습니다.
남에게 아무런 대가도 기대하지 않고 위안과 이해와 용서와 사랑을 주기 시작할때에야 비로서 우리는 성숙의 모양을 갖추게 된다는 것을 공감합니다. “나”라는 성에서 예수님의 공로를 위지하여 나오게 되면 우리는 먼저 하나님이 보이고 동시에 이웃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 사랑은 모든 생명의 원동력이 되고 사람을 살리는 신비의 힘입니다. 사랑을 많이 할수록 우리의 기쁨은 가득하게 되고 비로소 주님이 걸어가신 길이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오늘도 다시 이 기도문을 따라 해 봅니다.
오 주여!
위로 받기 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 보다는 이해하고
사랑받기 보다는 사랑하게 하소서!!!
이것을 통하여 주님이 우리를 위해 피흘리신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