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게더 시리즈 - 자녀 와의 유대감(9)
사람이 이 세상에서 태어나서 마치 한 건물이 지어지듯이 그 속에 들어가는 자료에 따라 전혀 다른 사람으로 성장되어 갑니다.
1. 사랑안에서 지속되는 끊을수 없는 진한 유대감
2. 무관심속에서 소외감으로 굳어진 관계
첫째 사랑안에 유대감으로 자라난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도 유대감을 잘 가지고 인생을 살아가는데 긍정적이고 자신감과 남을 배려하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빛의 자녀로 승리하며 살아갑니다. 많은 사람들은 한 집에서 살며 밥을 먹여주고 많이 사교육을 시켜주고 비싼 것을 사주면 훌륭한 부모로써 잘해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서 가끔 초등학생과 마주치는데 밤늦은 시간에 귀가하는 아이들을 많이 봅니다. 저는 한 영혼들에게 관심이 많기에 그들에게 물어봅니다. “지금 어디 갔다 오는 거니?” “영어 배우고 와요.” 그리고는 자신이 가야하는 학교 공부 외에 가는 곳을 열거하는데 몇 가지를 하는지 그 사교육비도 엄청나고 아이는 아이대로 빡빡한 스케쥴에 사실 부모하고 전혀 유대감을 나누는 시간이 없다는 것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안타까운 것은 그렇게 많은 돈을 투자해주었는데도 조금도 감사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요즈음 어린 아이들의 비행과 끔찍한 자살소동과 문제들이 모두 부모와의 사랑 안에 유대감의 결여 라는 것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기에 문제가 터진 다음에 눈물을 흘릴때는 너무 늦는 다는 사실을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부모가 주는 사랑 안에서 유대감은 세상의 그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자신감과 자신이 존귀하다는 자존감을 주며 그렇게 자란 자녀들은 형제간에도 상당히 깊은 유대감을 갖게 됩니다.
우리 두 자녀는 거의 과외공부를 시키지 않았습니다. 우리 부부는 둘이 합심해서 자녀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사 교육보다는 자녀와 함께 하는 시간과 대화를 더 많이 나누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우리 아들이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 아빠는 여러 군데를 많이 데리고 다녔습니다. 야구경기장에 데리고 가서 아들은 삼성 오비베어스 라고 쓴 유니폼을 입고 땀을 흘리며 아빠손을 잡고 야구장에 같이 가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삼삼합니다. 테니스를 치러가면 테니스장에도 꼬마를 데리고 가고 여러군데 아빠가 출장 가는 곳에 가족을 동반하여 여행을 많이 데리고 갔습니다.
아주 유아때는 유아와 함께 안아주고 놀아주고 초등학교 때는 역시 함께 대화를 통해 함께 아이에게 일어나는 모든 것들을 나누고 청소년기에도 이어지는 유대관계는 성년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녀들이 커서 대학생이 되면 보통 잘 지내겠지 라고 믿고는 유대관계를 소홀이 하게 되어 나중에는 대화가 되지 않고 깜짝 놀라는 상황을 맞게 되면서 가슴을 치는 많은 부모들의 고통을 들었습니다. 우리가 친한 친구 간에도 자주 만나고 대화를 하면 계속 관계가 이어지는데 한동안 서원하게 지내다 보면 귀한 관계가 서먹해지는 것과 같이 자녀도 늘 유대관계를 깊게 유지 하지 않으면 서먹해 져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어떻게 하고 있는지 모르게 되며 전혀 예상치 않은 일을 당하면서 한숨을 쉬는 부모가 많아집니다.
청소년 시기에도 가장 예민한 사춘기를 거치면서 잔소리가 아닌 사랑과 인내의 대화를 통한 유대관계는 자녀를 극한 상황으로 몰고 갈수 있는데서 보호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겠습니다. 우리 두 자녀들은 처음부터 미국으로 대학을 보내야지 라는 생각을 한 것이 아니고 아빠의 직장을 따라 국제학교를 초중고등학교를 나오게 되니 그렇게 가게 된 것입니다. 대학을 가서 서로 다른 나라에서 살고 있을 때에도 하루에 한번 이상 메일을 통해서 아니면 전화를 통해서 자녀들과 유대관계를 결코 놓지 않았습니다. 학업을 마치고 아들이 군대갔을때 처음 훈련기간중에 이메일이나 전화가 전혀 되지 않는 시간에 가장 중요한 유대관계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하여 하루에 한 번씩 편지를 써서 우체통에 넣는 것이 매일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아들이 결혼을 한지 7 년반이 되었고 직장을 다니는 가운데서도 하루에 한번은 메일을 보내는 것을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딸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치 옆에 있는것과 같이 유대관계를 유지합니다. 자녀는 나의 소유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기 위해 엄마라는 직책을 주신 것으로 두렵고 떨리는 귀한 하나님의 맡겨준 사명인 것입니다.
자녀가 전화를 통하여 “엄마”라고 부를 때 그 소리만 들어도 자녀가 전화를 건 용건이 무엇인지 거의 느껴집니다. 똑 같이 엄마를 부르는 것 같은데 격려가 필요한지 좋은 소식을 같이 나누고 싶은지 등등 거의 정확하게 느껴지는 것은 늘 유대관계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어제 칼럼에 박용묵목사님의 일곱남매의 아버지의 사랑에 관한 글을 읽고 책에서만 읽어도 감동이 왔는데 오늘 우리집에 오신 한분 집사님은 바로 대길교회 교인이었습니다. 전에는 대길교회 다닌다고 하여도 별로 관심 있게 듣지 않았는데 오늘 박용묵목사님의 자녀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목사님이 사랑을 보여 주었기에 목사님이 돌아가신지 이십년이 되어도 그 자녀들의 유대관계가 열방을 향한 사랑을 보여 주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이 칠남매는 해 마다 목사님이 돌아가는 추모일이 되면 이천 명이나 되는 교인들 전체에게 연합하여 식사 대접을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형제가 연합하는 유대감이 바로 부모의 사랑 안에서 나온 것을 증명해 주는 이야기였습니다. 얼마나 아버지가 사랑을 보였으면 그렇게 형제가 연합할 수가 있겠습니까?
시133:1-3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그 집사님은 한참동안 저에게 증언을 해 주었습니다. “박용묵목사님은 정말 작은 예수님이었어요. 그런 분은 전에도 후에도 없을 것입니다. 그 목사님은 자녀들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야단을 치는 것이 아니고 자녀들에게 벌을 주는 경우라면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드러누워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교인들이 누가 아프다고 하면 시도 때도 없디 찾아가서 기도 해 주셨고 그분의 삶이 곧 예수님 같아서 그분이 하는 설교는 정말 은혜로웠어요. 그 자녀들과 손자들도 너무나 착해요. 보통 목사님의 아드님이 그 교회의 장로로 있으면서 존경받기가 쉽지 않은데 둘째 아드님은 우리 모두 존경해요. 서울대 의사면서 세계로 의료선교를 하면서 자신의 집은 아주 소박하게 꾸며졌어요.”
다른 아드님이 쓴 글에도 아버지 목사님의 가르침이 돈은 누리라고 주신 것이 아니고 나누라고 주신 것이 라고 목사님이 아주 근검 절약한 이야기기 기록되어 있었는데 박목사님이 영양실조 걸릴 정도로 근검절약하며 살았다고 그 집사님이 증언을 해 주었습니다.
그런 모델이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행복합니다. 주위에 모두 실망스러운 사람들만 있다면 우리는 그렇게 할 수가 없는 것으로 단정지을 터인데 하나님이 맡기신 자녀를 잘 키운 모델이 있어서 감사드립니다.
둘째로 유대감대신 무관심으로 자녀를 대한 사람들은 소외감과 외로움에 대인관계가 아주 어려워집니다. 안정된 뿌리가 내리는 사랑이 없기에 성품이 하루에 사계절인 것 같이 기복이 심합니다.
엡3:17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만일 지금까지 자녀와 유대관계가 깊지 않아서 고민을 하고 있는 분이 있다면 지금 자녀에게 사과하면서 새롭게 시작하면 다시 길이 열릴 것입니다. 부모는 사과하지 않는다는 관념은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는 완벽하지 않기에 자녀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었기에 사과함으로 다시 관계가 좋아질 수 있는 길을 선택해야 새로운 관계가 이루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