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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그리고 그 이후 (4) - 우울증

마마킴||조회 4,274

치유 그리고 그 이후 (4) - 우울증

우리는 간증 집을 읽어보면 예수 믿고 “나는 이렇게 변화가 되었다” 는 이야기들을 접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한 사람의 인생의 이야기는 그렇게 일막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이막 삼막이 다시 펼쳐지며 최후의 승리를 얻는 사람은 그리 많지가 않습니다. 그것은 복음의 능력이 약해서가 아니고 우리 속에 자석처럼 끌어당기는 오래된 습성이 다시 끌어당기는대로 이끌려 가는 것을 봅니다. 이런 사실을 많이 보았기에 변해서 기뻐하고 박수를 쳐주지만 처음 걷는 아기가 또 넘어질것을 알고 있기에 예의주의 깊게 한 영혼을 지켜보고 바라봅니다.

그러기에 한 영혼을 온전히 진실한 그리스도인이 되기까지는 한번 치유되었다고 안심 할것이 아니고 연약한 지체를 향하여 권면하신 말씀을 잘 붙잡고 따라가야만 승리의 개가를 부를수가 있습니다.

살전5:14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

어릴 때부터 소외감과 상처로 다져진 우울증을 앓고 외로움에 있는 영혼을 건강하게 되기까지는 격려와 붙들어 주며 오래 참으라는 권면을 우리가 행하면서 사실은 우리가 사랑이 무엇인지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이런 연약한 영혼들은 저의 맨토이기도 합니다. 이런 과정 속에서 하나님이 저를 향하여 얼마나 참으셨는지를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처음 이 사람과의 만남은 집에까지 찾아갔지만 집안에 들어갔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방문을 잠그고 밖에서 가족이 불러도 끝까지 문을 열어주지 않아서 기다리다 만나지를 못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만남이 이제는 삼년이 지났습니다. 그 다음에는 그 집밑에서 집으로 전화를 하니 바로 그 문을 열러주지 않은 주인공이 받았습니다. 저가 전해 줄 것이 있으니 잠시 내려오라고 간곡히 부탁을 하니 나왔습니다. 얼마나 오랫동안 방콕을 하고 살았는지 얼굴색이 하얗다 못해서 전혀 햇빛을 보지 않은 창백한 얼굴이었습니다. 그리고 밑에서 먹을것을 사가지고 간 저를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물건을 받아가지고 들어갔습니다.

얼마 후에 모두 우울증을 앓는 이들을 우리 집으로 저녁을 차리고 초대를 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교제는 우리가 관객이 되어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느 순간에는 완전히 새롭게 치유가 되어 새 출발을 하는것으로 보이고 신앙심도 뜨거운 것 같이 우리를 감동시킵니다. 그러다가 다시 옛날의 비관적이고 부정적인 모습으로 되돌아갑니다. 이렇게 수 없이 반복을 합니다. 그러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나는 방콕이 좋아” 라고 하면서 되돌아갑니다. 저는 이들의 기질을 잘 알기에 결코 끈을 놓지 않습니다.

성경을 잘못 이해하는 어떤 사람들은 사람에게 무슨 위로를 받느냐 오직 하나님께만 받으라고 하면서 사람이 보여주는 하나님의 사랑의 통로가 되는 것을 무시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사도 바울같이 위대한 하나님의 종도 사람의 위로가 필요한 것을 읽을 수가 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자신을 위로 해준 것에 감사하는 글을 쓴 것을 읽을 수가 있습니다.

빌4:14 -16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였으니 잘하였도다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뿐 아니라 두 번이나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사도바울은 분명히 괴로움에 처해 있었고 그를 돕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빌립보 교인들을 사용하셨습니다. 그런 종에게도 위로가 필요한 것을 보면 하나님께서 그분이 택하신 통로를 통하여 사람을 세우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심부름을 하기 위하여서는 상대방을 잘 알아야 합니다.

첫째 우울증의 증세중에 분노를 일으키는 단계가 있습니다. 한 사람은 눈에 늘 분노하는 것을 저는 읽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앞에서는 웃기에 사람들은 이 사람을 보고 착하고 잘 웃는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그가 웃고 있는것 같지만 곧 돌아서서 분노가 불붙듯 하는 것을 늘 보았습니다. 단지 사람들은 그 내면을 보지 못한 것 뿐이었습니다. 보통 분노라는 감정이 하루아침에 그렇게 쌓이는 것이 아니고 어릴 때부터 주위에 자신이 바라보는 세계가 그를 분노하게 만든 것이었습니다. 그의 눈동자는 내면의 분노를 잘 나타내고 있는데 그 분노는 그에게 다른 사람을 믿지 않고 특히 교회 다니는 사람들에게 더욱 분노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교회 다니는 사람들에게 분노하는 것은 그의 가족이 교회의 중진가족이었고 그의 어릴 때부터 친척 모두 그에게 강한 반항심을 불어넣게 행동을 했으며 아주 어릴때는 가족을 따라 교회를 갔지만 스스로 커가면서 그는 교회에 발걸음을 끊고 있었습니다.

우울증을 가진 사람들 중에 전혀 수면을 못 취하는 증세를 가진 사람도 힘들지만 모든 것을 잊고 싶어서 잠을 많이 자는 것도 증세중에 하나입니다. 그는 후자였습니다.

그에게 다가갔을 때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분노가 차고 혼자 소외감이 많이 차 있는 사람은 마음에 방탄조끼를 입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방탄조끼는 웬만한 사랑이나 말로 뚫고 들어갈 수가 없는 강력한 방탄조끼입니다. 스스로 무장해제를 하기 전에 어떤 것도 그에게 감동을 주고 자신이 더 이상 상처받지 않기 위하여 입고 있는 방탄조끼를 벗게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할수 있는 것은 주님이 보여주신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아가페 사랑”과 방탄조끼를 벗도록 성령님이 역사하도록 중보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 오랜 수면에서 깨어나기 까지 일 년은 걸렸습니다. 그 어간에 때로는 저에게 엄청 화를 내기도 나쁜 말도 했습니다.

사람이 새 마음을 갖고 새로운 가치관과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기까지 내면 깊이 들어가려면 시간이 걸립니다. 그동안 몇 년이 지났고 많이 좋아지고 때로는 넘어지는것을 바라보고 있지만 우리는 주님을 의지하여 이렇게 찬양할 수가 있습니다.

“때로는 넘어져도 최후 승리를 믿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