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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그리고 그 이후(3) - 우울증

마마킴||조회 4,535

치유 그리고 그 이후(3) - 우울증

희귀병과 불치병을 많이 보았지만 가장 심각하고 나쁜 병은 정신계통의 질병이며 우울증은 생명을 앗아가는 무서운 병입니다. 다른 곳이 아프면 사람들은 낫기 위하여 애를 쓰지만 우울증에 걸리면 스스로 낫고자 하는 의욕이 없기 때문에 고질병이 되면서 스스로 생명을 버리는 아주 나쁜 병입니다.

주위에 많은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정도의 차이지 거의다가 이 질병을 앓고 있습니다.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면 밝고 소망 적이며 생명력 있는 사람은 소수이고 다수는 이 어두운 질병을 앓고 있고 심해지면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 것을 바라봅니다.

저가 본 이 질병의 증세를 일으키는 사람들은 어느 책에서 읽은 이론도 아니고 정신과에서 본 것도 아니고 실지 현장 속에서 체험한 생생한 이야기를 이곳에 나눔으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하여 기록합니다.

저가 본 이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교회 내에 있는 사람들이며 자칭 예수를 믿는다는 사람들이며 소수는 믿지 않지만 직간접적으로 가족 중에 교인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아주 적게는 전혀 믿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진짜 그리스도인과 마당뜰만 밟는 사람은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습니다.

인간치유의 책에서는 그 의사는 사람의 걸음걸이 얼굴표정을 보면 어떤 육체의 질병을 앓고 있는지를 진찰하지 않고도 금방 알수가 있다고 하는데 저는 한 사람의 얼굴을 보면 처음 보는 사람도 그 영혼의 밝기가 바로 보이곤 하는 체험을 합니다. 전혀 본적도 없고 그 사람의 사연을 들은 적도 없는데 입은 웃고 있지만 속에서는 울고 있는 눈동자가 바로 보입니다. 그리고 거의 정확한 것을 체험합니다.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좋은 차를 타고 좋은 환경 인것 같은데 그 내면에는 전혀 다른 사람이 있는 것이 보입니다. 어떤 분이 저에게 어떤 식으로 우울증 환자를 치료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기도로 치유하세요? 아니면 상담이요?” 정확한 대답은 저는 전혀 치료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 영혼을 위해 기도합니다. 조금 하다가 마는 기도가 아니고 일단 기도수첩에 적으면 계속 기도합니다. 그리고 상담이라기보다는 그 영혼을 이해하는데 오랜 시간 그 영혼의 외침을 듣습니다. 저가 한 영혼의 언어를 이해하는데 이년이라는 세월동안 일주일에 몇 번을 만나면서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거기에 최고의 만병통치약은 “사랑”입니다.

다시 정리하면 첫째는 기도, 둘재는 깊은 교제, 셋째는 사랑입니다.

그 사랑이라는 처방약도 제게는 소유하지 못한 분야인 것을 잘 알기에 매일 매 순간 위로부터 받아옵니다. 그리고 각자 먹이는 양도 다릅니다. 우리 한국인들이 보통 쓰는 언어로 “애정결핍증”에서 오는 영혼의 질병은 각자의 결핍중이 전혀 다르기 때문에 조금만 먹여도 즉시 효과를 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마치 한강에 돌을 던지는 듯한 기분이 드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폴 투로니에 의사도 환자를 치료 하려면 오랜 상담을 거쳐서 그 병의 원인을 알아야 하는데 너무나 환자가 많아서 의사가 환자의 원인을 규명하는데 절대 부족한 대화의 시간을 느낀다는 이야기를 적어 놓았습니다. 저가 한 영혼의 언어를 이해하는데 그것도 그릅으로 만나는것이 아니고 일대일로 저 차에 태우고 다니면서 만나고 또 대화를 나누면서 이년이 걸렸다고 하면 얼마나 한 영혼의 언어를 이해하는데 인간의 심장으로 알기가 어려운 것을 깨닫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교회에 그런 영혼들이 오는데 겉으로는 아주 세련된 복장을 하고 멋있게 생겼으며 좋은 외제차를 타고 나타나면 교회 지도자들은 그 사람은 아무 문제도 없는 것으로 그저 외모만 본다는 사실입니다. 그 영혼들은 자신의 고통을 호소할 상대를 찾아서 해매고 있습니다. 내면을 그러한 치장으로 가리고 있지만 울고 있는 것입니다.

하루는 토요일 새벽 6 시 모임에 어떤 남자분과 여자 분이 전혀 모르는 분들이 문을 열고 들어왔습니다. 반대방향에서 그분들이 들어오는 것을 보았는데 그 남자분은 교회에 상당히 높은 중진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습니다. 그분이 들어오는 순간 그분의 얼굴에는 가려져 있지만 엄청난 상처가 많이 쌓인 분 이라는 것이 얼굴에 보였습니다. 그분은 그날 성경공부가 끝난 다음에 저에게 문자를 보내서 “저가 상담하고 싶은 사람을 오늘 만났습니다” 이렇게 사연을 시작하는데 저는 너무나 놀랐습니다.

한분은 그분 주위에 선교사나 많은 분들이 둘러싸여 있는 사업을 잘하는 것으로 보이는 사업가입니다. 그 선교사님들은 이분이 후원을 많이 하고 헌신되어 있는 분으로 보이는데 이분을 처음 본 얼굴과 잠시 만나지 못하다가 본 얼굴은 제가 보기에는 너무나 병색이 뚜렸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자신감 있어 보이고 헌신되어 있는것 같은 이분도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어서 몇 년동안 그 병으로 인하여 자신이 교회 중진인데도 생명을 끊을까 생각을 했다고 저에게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이분은 치유를 받고 다시 회복을 하였습니다.

이 질병은 어린 아이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모두에게 덮칩니다. 그렇다면 성경에는 기쁨을 그렇게 강조한 것이 우리에게 불가능하다는 것일까요?

빌4: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요15: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빌립보서 3 장 4 절에서 항상 기뻐하라 라는 말씀 앞에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있는 것을 우리는 최고의 처방전으로 받아야만 그런 늪속으로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것은 바로 “주 안에서” 라는 단어입니다. 그리고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한다는 주님의 말씀에서 우리는 사실 우울이라는 생각을 철저하게 거절하고 몰아내야 합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우리는 기쁨은 그것도 충만하게 하기를 선택해야 합니다. 오직 성령의 도움으로 말입니다.

“주 안에” 거하기 위하여 저는 몸부림을 칩니다. 특히 말레이시아 같은 나라에서 삼년을 살 때는 “주안에” 영역을 벗어나면 나라는 존재를 어떻게 믿을 수 있는가 라는 심각함에 봉착되는것을 알기에 늘 주안에 거하기 위하여 그 음성을 듣는 것을 최우선으로 둡니다. 성경을 읽는 것은 하루 일과의 가장 중요한 일중에 하나입니다. 그리고 기도시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묻기를 “그렇게 바쁜데 어떻게 한 달에 일독을 해요?” 라고 묻습니다. 그 말뜻은 바쁘면 빼 놓아도 된다던지 아니면 줄인다던지 해도 된다는 뜻입니다. 사실은 날이 갈수록 일은 더 많아집니다. 그러기에 마치 이것 아니면 죽습니다. 라는 각오로 말씀을 붙잡습니다. 그러면 매일 주님의 사랑의 음성을 듣기에 위로와 소망과 새힘과 믿음으로 출발합니다. 위로부터 공급되는 힘이 없는 한 우리는 모두 이 어두움의 늪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조금 먹어도 안 됩니다. 주님의 권면으로 기쁨이 충만하게 즉 조금도 나쁜 감정이 없도록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낙심이나 절망스러운 걱정들이 밀려올 때 “나는 이러한 것들을 거절한다. 나는 기쁨을 선택한다. 주님이 주시는 기쁨은 우리 것이다.” 이렇게 선포하며 기도로 그러한 생각들을 몰아냅니다. 그리고 우리는 외칠 수가 있습니다.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