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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게더 시리즈 - 자녀 사랑하기 (5)

마마킴||조회 4,588

투게더 시리즈 - 자녀 사랑하기 (5)

한국의 속담에도 “세 살적 버릇이 여든 간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이미 우리 조상들도 교육학 심리학을 배우지 않았지만 인생의 경험에서 터득한 진리인 것입니다. 어릴 때 사랑의 유대감이 형성된 인격과 사랑 없는 소외감이 형성된 인격은 눈으로 그 심장이 보이지 않는 형태이지만 그 사람의 눈빛과 몸에서 풍겨 나오는 것을 우리는 맡을 수가 있습니다. 사랑의 사람은 따뜻하고 밝고 소외감속에 있는 사람은 냉랭하고 어둡고 아무 의욕이 없습니다. 함께 성경공부를 하고 기도하고 교제를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치유가 되고 새로운 피조물로 바뀌며 약한 사람이 강해지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걔중에는 마치 남극과 북극의 얼음 같은 덩어리를 가슴에 품고 있어서 어떤 사람에게도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 사람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 사람은 남편이나 자녀 자신의 형제간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인생에 들어오지 못하게 놋성벽같은 철문으로 마음을 닫고 있습니다. 그 마음은 하나님에게도 마찬가지인 것을 봅니다. 그 사람은 울며 기도도 하고 하지만 언제나 혼자입니다. 하루는 심각하게 저에게 상담을 했습니다. 자신은 보통 주중에는 전혀 하나님을 느끼지 못하고 사는데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 심각하게 자신의 문제를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그녀는 하나님이 자신의 삶에 들어오거나 다른 사람이 들어오게 절대 문을 열지 않습니다. 오랜 세월 지켜보면서 왜 그럴까? 의문을 가졌습니다.

많은 사람을 바라보며 배운 것은 어릴 때 사랑의 유대감이 전혀 없이 소외 감속에 자란 사람의 마음에는 차가운 얼음덩어리가 웬만한 사랑의 열가지고는 녹여지지 않는 것을 바라봅니다. 그 영혼은 외롭지만 어릴 때 받은 소외감은 절대 사람을 신뢰하지 않고 그 소외감속에 갇혀 있는 것을 봅니다.

이분의 사연은 어릴 때 부모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세 명의 형제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이분은 친척집에서 학교에도 보내주지 않고 가정부처럼 일을 시켰습니다. 이분은 그때 이야기들을 자세히 기억하며 저에게 여러 번 이야기 했습니다. 옛날 추운 겨울에 따뜻한 물이라고는 꼭 덥혀야 있던 그 시절에 자신은 친척집에 같은 또래의 자녀들의 씻을 물을 대야에 들고 갔다 바쳤던 이야기를 하곤 했습니다. 그것도 수고했다는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물이 왜 이렇게 차냐 뜨거우냐 라고 항상 핀잔을 받았습니다. 늘 그녀는 홀로였고 외롭고 고달팠습니다. 결혼을 해서 자녀를 두 명을 낳았지만 옆에서 지켜볼 때 그중에 아무도 전심으로 사랑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사랑을 받아 본적이 없기 때문에 사랑한다는것이 전혀 모르는 분야이기 때문인 것으로 할줄을 모르는 것으로 느꼈습니다.

이분의 경우는 부모가 돌아가셨지만 요즈음의 어린이들은 부모가 있지만 부모가 부재인경우가 많은 것을 봅니다. 겨우 다섯 살, 여설살 밖에 되지 않은 아이가 부모와 함께 하는 시간을 거의 갖지를 못하는 것을 지켜봅니다. 아이에게 가장 비싼 옷을 사서 라벨을 띠기도 전에 입혀보지도 못하고 시간이 지난다고 합니다. 옷을 사 놓고는 챙겨 입힐 시간이 없을 정도로 아이를 뺑뺑이 돌리면서 아이가 영어도 한문도 잘 쓴다는 자랑입니다. 너무 많은 스케쥴로 인하여 아이는 잠 자는 시간도 적고 전혀 부모와 함께 하는 시간을 갖지 못하는데 아이가 잘한다고 자랑하는 부모가 참 안타깝습니다. 여러 손길을 거쳐 전혀 그 누구가 자신을 가장 사랑하는 유대감을 주는지를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의 심각성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무엇이 중요한지를 전혀 모르는 인생의 가장 기초가 되는 사랑을 심어주는 그 시간 즉 다시 돌아오지 않는 그 시간을 놓쳐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사랑 안에서 유대감 형성은 이 세상에서 그리고 한 인간의 삶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이 시간에 이 기초가 되지 않으면 마치 기초 없이 지은 성수대교가 무너지듯이 아우 아파트가 붕괴되듯이 소외 감속에서 “나만의 성”에 갇혀 사는 인생을 바라봅니다. 사랑받고 소속감을 느끼는 즉 “나는 우리 부모에게 가장 존귀하고 사랑받는 존재다”라는 든든한 인생의 기초 석을 다지지 않으면 그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또 다시 상처를 주는 것을 재생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창조하실 때 하나님과 함께 그리고 돕는 배필과 함께 우리의 깊은 곳에서 관계를 그리워하도록 만드셨습니다. 목말라 하면서 찾게 만들었습니다. 아기를 지켜보면 본능적으로 손을 벌리고 안아주기를 호소하면서 우는 것을 봅니다. “나는 사랑받고 싶어요. 나를 인정해 주세요.” 라는 본능적인 욕구인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 연결되도록 하나님은 창조하셔서 본능 속에서 자신의 소속을 알고 싶어 하는 행동이기도 합니다. 아이는 그때 전혀 관심이 없고 밖으로만 내 돌린다면 어디에도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고 소외감을 형성하여 인격 속에 차가운 남극 북극의 얼음덩어리가 차 있기에 다른 사람들이 감동하는 수준에도 전혀 감동이 느껴지지 않고 마음 문을 열지 않습니다. 그리고 “나” 외에 아무도 사랑하지도 관심도 없는 것을 봅니다. 더 심각한 것은 자신도 사랑하지 않고 인생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기에 그렇게 많은 생명을 포기하는 안타까운 기사를 봅니다. 어린나이에 한문을 잘써어 무엇하는지? 참 안타깝습니다. 수재들이 들어가는 카이스트에서 왜 생명을 포기하는지를 심각하게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과 그러한 관계를 요한복음 15 장에는 포도나무의 비유로 잘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어야 하기에 뿌리에 비유와 가지의 비유는 우리가 잘 알고 익히 들어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서로 사랑하라는 누누이 강조되는 말씀을 우리는 듣지만 결코 적용하지 않습니다.

어린 그 시절에 아이는 엄마 아빠의 감정과 분위기 속삭이는 부드러움, 사랑한다는 고백, 수없이 해 주는 뽀뽀, 발바닥까지도 해 주는 뽀뽀 만져줌에서 자신의 자존감을 키워갑니다. 늘 들려주는 자신에 대한 평가는 한 인간의 일생을 좌우하는 자존감을 유대감 가운데서 사랑을 기초하여 단단하게 세워져 갑니다.

혹시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 자신의 부모를 원망하며 우리 부모는 날 사랑하지 않으셨어. 라고 생각하는 오해가 없기를 바랍니다. 세상의 부모는 저를 비롯하여 모두 실수투성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을 한번 묵상해 보십시오.

시27:10 설령 내 부모는 나를 버릴지라도 그래요, 여호와께서는 나를 끝끝내 붙드시리니

사49:15 그러나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과연 어머니가 젖먹는 자식을 잊어버릴 수 있느냐 ? 자기 태에서 나온 자식을 불쌍히 여기지 않는 어머니가 세상에 있느냐 ? 만일 세상의 어머니들이 자기 자식을 잊어버릴 수 있다고 하여도 나만은 너를 결코 잊을 수가 없다 !

자신이 뱅뱅 주님의 주위에서 겉돌지 말고 그 사랑 안에 푹 잠길 수 있도록 자신을 온전히 주님께 맡기십시오. 그리고 새로운 사랑 안에서 새로운 사랑 안에 유대감이 새롭게 형성되어 치유되기를 기도드립니다. 한편 자신의 자녀가 어린 시간이라면 지금부터 사랑 안에 유대감을 다시 키워 주도록 최선을 다할 수 있는 힘을 하나님께 구하고 이미 성장하였어도 못다한 사랑을 다시 시작하면 그리스도 안에 새로운 피조물을 경험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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