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리네이션스
칼럼 목록

투게더 시리즈 - 자녀 사랑하기 (4)

마마킴||조회 4,615

투게더 시리즈 - 자녀 사랑하기 (4)

이 세상에 갓 태어난 아기는 머리 뒤통수가 몰랑몰랑합니다. 아기는 똑바로 뉘면 그대로 뒤통수가 납작해지고 엎드려 뉘이면 뒤통수가 볼록 나오는 전혀 다른 모습의 머리형과 얼굴형이 됩니다. 백퍼센트 엄마의 선택에 따라서 한 아기의 모습이 달라집니다. 다른 선택을 아기 자신은 전혀 할 수가 없습니다. 처음 아기가 납작해 지는 것을 보고 얼른 다른 방향으로 뉘이면 아기는 회복이 되지만 일단 딱딱한 머리형으로 되어 버리면 다른 모습으로 바꾸려면 전혀 불가능합니다. 이 유아기에 유대감이 강하게 건강하게 자란 아이와 유대감의 반대인 소외감으로 사랑을 느끼지 못하고 자란 사람은 나중에 고치려면 사람의 관점으로 보면 불가능해 보입니다. 하지만 속사람은 새롭게 만드는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는 약속이 있기에 우리는 소망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시행착오를 거쳐 상처를 체험했으면 우리자녀는 새롭게 처음부터 하나님이 맡겨주신 자녀를 사랑으로 잘 키워야 하겠습니다.

삼십오 년 전에 첫아기와의 대면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여덟시간 동안 진통을 하여 새벽 4 시 12 분에 첫 아들을 보았을 때의 모습은 머리가 아주 많이 나서 까맟게 윤이 나 있었고 아무것도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마치 엄마를 쳐다보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아기를 안았을 때의 감격은 지금도 느껴집니다. 그리고 둘째 딸을 낳았을 때 체중이 3.9kg 이나 되어서 아주 크고 순한 아기의 첫 대면도 너무나 감격스러웠습니다.

처음 아기를 출산하고 아기를 잘 키우고 사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저가 쓴 두 권의 육아일기가 있는데 한권은 간단한 내용과 사진 그리고 발달 해 가는 애기 발과 손을 대고 그린 모습, 애기의 하루 기분의 상태, 무엇을 좋아했던지 누구를 좋아했던지를 기록한 육아일기로 그 책은 며느리에게 전달해 주었습니다. 좀더 자세히 쓴 육아일기 노트를 지금도 내가 지니고 있는데 그 일기에는 아주 자세히 아기의 발달 상황 감정 아픈 기록, 즐거운 기록 모든 것을 적어 놓았습니다. 당시에는 컴퓨터가 없는 시절이라 매일 일기노트에 적었습니다. 아기를 키우면서 친정집이나 시댁이 둘다 걸어서 갈수 있는 거리에 살고 있었지만 저는 친정집에서도 시댁에도 아기를 맡기거나 부탁하지 않고 혼자 키우는 것을 노력했습니다. 사실 아기를 키우는 것이 참 행복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지금도 그 일기책을 보면 아기가 기침을 하면 대신 하고 싶었던 이야기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자세히 애기를 관찰하며 지켜보면서 키운것을 저가해야 할 최고의 중요한 과제로 삼았습니다. 그때 기도를 몇 년동안 하면서 아기에게 소리를 지르지 않고 부드러운 말을 할수 있도록 기도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당시 “하나님의 사랑의 통로가 되어야 할 엄마가 잘못함으로 아이들에게 부정적인 생각을 심어주지 않게 하소서” 라는 고백이 몸부림치는 기도로 자리잡었던것을 기억합니다.

세월이 흘러 세명의 손자의 출산을 지켜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가장 최근에 일 년 전에 태어난 외손녀를 보면서 세상에 태어나자 마자 아기가 바들 바들 떠는 것을 보며 우리가 성인이 되어 다른 외국으로 이사 갔을 때 아무도 모르는 그곳에 도착했을 때의 기분처럼 아기는 전혀 다른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너무나 놀라지 않았을까? 컴컴하고 저절로 모든 것이 엄마 탯줄을 통하여 공급받고 편안하다가 전혀 다른 세계로 나온 그 순간 아기는 얼마나 당황스러울까? 이것은 저가 느낀 점이었는데 저가 느낀것이 정확하다는것을 공감해 주는 글을 여기 소개 합니다.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 따뜻하고 촉촉하고 어둡고 편안한 환경에서 차갑고 메마르고 밝고 거친 환경으로 옮겨갑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공급되던 완벽한 환경이었던 엄마의 뱃속에서 벗어나 완벽하지 못한 다른 사람들에게 의존해야 하는 환경에 살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으로 나오는 첫 몇 분은 충격적이며 우리는 정서적인 고립 상태에 놓이게 됩니다.

갓 태어난 아기의 얼굴을 자세히 보면 이 전적인 고립 상태가 어떤 것인지를 알수가 있습니다. 이때 엄마는 아기를 안고 꼭 껴안고 부드럽게 말을 전하면 순간 아기는 변화를 경험합니다. 크게 울던 것을 멈추고 몸의 근육들도 긴장을 풀고 편안해 집니다. 그리고는 따뜻함과 먹을 것, 그리고 사랑을 찾아 엄마를 향해 몸을 돌립니다. 엄마와의 유대감을 형성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과학자들은 얼마 전부터 엄마와 아기의 유대감 형성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1945 년에는 보육시설에 있는 유아들을 대상으로 연구가 시작되었습니다. 그 시설에서는 아기들에게 기본적인 필요를 모두 채워 주었습니다. 배고플 때 먹여주고 때마다 기저귀도 갈아 주었습니다. 하지만 보모의 숫자가 모자라서 아이들을 안아주고 말을 걸어 줄수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자주 안아주지 못했던 아이들이 안아 주었던 아이들보다 질병에 걸리는 비율이나 사망률이 훨씬 높게 나타났습니다. 게다가 그 아이들은 심리적 발달 수준이 다른 아이들보다 더디거나 정체 되었습니다.”

저가 느낀 것과 너무나 공감되는 글이라 이곳에 같이 나눕니다. 우리 두 자녀를 키울 때도 그랬고 우리 큰 손자가 동생을 보고 두달 동안 우리 집에 아빠와 같이 엄마의 몸조리를 위해 떨어져 있을 때 참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아기는 잠이 들 때 저가 찬송을 불러주며 재우면 잠을 잘 잤습니다. 그리고 옆에서 저가 지켜 주고 있으면 아기는 오래 잤는데 잠이 살짝 깨었는데 저가 없으면 “할머니 할머니 할머니” 라고 부르며 울었습니다. 그럴 때 아기는 안아주고 다독거려 줄때 안도감을 하며 다시 잠이 드는것을 보았습니다. 지금도 눈에 선한 장면은 저가 샤워를 시켜 주고 있는데 그때 아빠가 퇴근해서 오는 소리를 듣고는 아빠가 아기가 어디 있는지를 모를까봐 “아빠 제민이 목욕탕에 있어요.” 라고 큰소리로 아빠에게 알리는 세 살 아기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아기의 기억이 오래간다는 것을 저가 안 것은 그때 아기를 데리고 조영철집사님댁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년이 자난후 몇 달 전에 그곳을 갈일이 있어서 갔는데 자다가 눈을 뜨고는 “누구 기도 해 주러 왔어요?” 라고 묻는 것입니다.

어린 유아시절에는 마치 말랑말랑한 뒤통수처럼 엄마는 강한 유대감과 사랑을 넣어줗수도 있고 인간에게 가장 무서운 소외감을 집어 넣을 수도 있습니다. 어린 시절 조금만 몇 년을 최선을 다하면 일생을 사랑할 줄 아는 모습을 갖게 되는데 소위감에 시달려 고통당하며 서서히 살아있다 하나 죽어가는 영혼들을 바라보며 사랑의 생수를 전하고 싶습니다.

요즈음은 외손녀가 같이 있으면서 저에게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저는 아기에게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