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게더 시리즈 - 자녀 사랑하기(2)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하나님께서 맡기셨다는 철두철미한 부모로써 자세를 가지고 우리 자녀를 바라보아야 하며 모든 초점을 그렇게 맞추어야 우리는 하나님이 맡기신 자녀를 잘 키울 수가 있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만난 엄마 그리고 아빠는 나를 어떻게 대해 주는 것일까? 그 인생의 처음 시간에 일생을 좌우하는 자아형성이 되는 시간이라고 하겠습니다.
어떤 목사님의 아내가 네 자녀를 두고 있으며 보통 때는 아주 헌신적으로 보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아내가 자살을 시도하여 병원에 실려 왔습니다. 그녀를 살리기 위해 응급실에 실려 온 후 온갖 노력을 하여 다음날 아침에 의식이 돌아왔을 때 그녀는 자신을 살린 병원 측에 마구 폭언을 하며 화를 내며 자신의 목숨을 너희 들이 무엇인데 끊을 자유를 박탈하느냐고 소리를 질렀다고 합니다. 많은 우울증에 시달린 사라들을 대하면서 우리 보통 사람은 그녀에게는 남편도 네 자녀도 중요하지 않단 말인가? 라고 한마디씩을 하겠습니다.
그러나 아주 어릴 때부터 성장과정에서 그녀는 자신이 귀하여 사랑받는 존재라는 자존감을 느끼지 못했기에 겉으로는 헌신된 것 같이 행동을 할 수는 있어도 속으로는 그녀에게 아무도 중요하지 않게 느껴졌고 자신도 아무하고도 유대감을 느끼지 못했기에 그런 행동으로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그후 전문적인 상처의 원인과 치유가 됨으로서 새로운 변화를 가져오게 되겠습니다.
저가 기억하는 오랜 기억속에 아주 어린 시절에 기저귀를 차고 업혀 있는 기억이 남어 있습니다. 그리고 부산으로 6.25 동란때 피난을 가서 여섯 살 정도까지 살았던 기억이 납니다. 한 가지 선명한 기억은 하루는 동네아이들이 저는 혼자 다른쪽에 서 있는데 집단으로 저를 놀렸던 장면이 떠오릅니다. 저는 반대편에 서 있고 남자 여자 여러 아이들이 떼를 지어서 저를 혼자 세워 놓고 놀렸습니다. 가만히 당하고 서 있는데 한 남자아이가 저 있는 쪽으로 걸어 왔습니다. 저는 그 아이가 제 편이 되어 주는 줄을 알고 반가워서 “너는 나하고 놀아줄 꺼지?” 이렇게 물었더니 아무 말도 없이 살금살금 제 곁에 다가오더니 제 손에 들고 있는 그 무엇인가를 확 빼앗아 달아났습니다. 아이들은 더 재미있어서 깔깔대고 놀렸습니다.
우리 두 자녀를 키울 때도 비슷한 경험을 각각 국제학교를 다니면서 경험을 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엄마에게 그런 이야기를 다 털어놓았고 우리는 같이 대화를 통하여 그 상처가 남지 않도록 모두 해결하였습니다. 그런 연고로 자녀의 고통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만나는 사람이 바로 부모가 아니겠습니까? 그 어린 시절에 듣는 자신에 대한 평가는 일생의 기초가 되는 사랑을 채워주는 귀한 시간이 된다고 생각됩니다.
자신이 아주 어린 그 시절에 존귀하게 여김을 받았고 사랑으로 격려와 칭찬으로 자란 사람은 그렇게 또 한 자신도 남을 사랑하는 법을 본대로 행하게 됩니다. 자신이 유대감을 든든하게 느끼지 못한 사람은 그렇게 가족 안에서도 대중 속에서도 외롭고 홀로인 느낌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귀하게 느끼지 못하기에 그런 우울감속에서 헤어 나오지를 못하는 것을 바라봅니다. 어떤 청년은 어릴 때 형을 따라 가서 같이 놀고 싶은데 형이 같이 끼어 주지 않고 좋아하는 친구들도 사귀고 싶은데 잘 관계를 갖지 못함으로 어린 시절 사람을 사귀는것이 두려움으로 남아서 그 다음에 스스로 홀로 남아버렸고 직장이나 가정생활에도 잘 적응하지 못하게 남아버릴 인생이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부모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의 대리인으로 자녀를 맡겼을 때 우리는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이라는 것을 늘 기억하며 사랑의 통로가 되기 위하여 준비하며 배워나가면서 우리는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지상명령의 첫 번째 대상인 우리 가족에게 사랑의 실천을해야 되겠습니다. 날마다 우리 아버지께서 들려주시는 사랑의 음성을 우리도 배워서 자녀에게 실천해야 속사람이 강건한 사람으로 자랄것입니다.
[사49:5]나는 여호와의 보시기에 존귀한 자라 나의 하나님이 나의 힘이 되셨도다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한 청년에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자신이 여섯 살때 동네에 친한 아이가 있었는데 그 아이는 야쿠르트가 배달되어 먹는 것을 보고 늘 그것이 부러웠다고 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듣고 “참 많이 먹고 싶었겠구나. 한데 한 가지 생각을 한번 해 보렴. 우리 아들과 딸은 외국에서 자라면서 가지고 싶고 부러운 것이 있었을까 없었을까?” 잠시 생각하던 그 청년이 “역시 있었겠지요.” 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자녀들뿐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야쿠르트 같이 부러운 것이 있는 것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국제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자신보다 열배나 더 되는 용돈을 가지고 부모가 왜 이렇게 조금 용돈을 주느냐고 투덜대자 우리 딸은 그 용돈을 보고 집에 와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많은 대화를 통하여 그렇게 많은 돈을 쓰는것이 좋은것이 아니고 돈보다 더 소중한것이 많다는것을 배웠다는 글을 쓴적이 있던것을 그 청년에게 들려 주었습니다.
다만 다른 것이 그런 것을 느꼈을 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부모가 있는 것과 없이 상처로 남는 것과의 차이일 뿐입니다. 우리 자녀......그들은 하나님이 맡겨 주신 가장 중요한 천하보다 귀한 영혼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돈이 가장 소중하다거나 학식이 더 소중하다거나 하지 않고 한 생명이 천하보다 더 소중하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더 소중한것과 덜 소중한 것의 순서를 너무나 잘 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