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계신 주를 아는가?
호4:6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호4:1-2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오직 저주와 속임과 살인과 도둑질과 간음뿐이요 포악하여 피가 피를 뒤이음이라
저는 구례에서 일박이일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전하고 돌아왔습니다. 많은 곳을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면서 요한웨슬리의 전환점을 생각합니다. 미국에서 선교사로 갔을때 요한웨슬리가 전한 소식은 살아계신 하나님이 아니고 지식으로만 아는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시접은 자신이 지식으로만 아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시험지를 받는 그 순간이었습니다. 막상 선교사로써 실패하고 영국으로 돌아오는 배안에서 풍랑을 만났을 때 그는 두려웠고 모라비안 교도들은 두렵지 않고 평온하게 찬양을 부르는 모습을 보고 그 속에 있는 자신이 모르는 그 무엇이 있는가를 깨닫게 된 것은 은혜의 시간이었습니다. 그후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났고 요한웨슬 리가 가는곳마다 사람들은 세상을 바라보는 눈에서 위의것을 찾는 사람들로 수 많은 사람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했습니다.
수많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 풍랑의 시간의 시험지를 한번 받아봐야 정말 자신이 하나님을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알고 있는지 아니면 지식으로 아는지를 태스트 하는 중요한 시험입니다. 그런데 더 비국은 그런 풍랑의 위기를 거쳐 보지 않은 믿음은 자신이 하나님을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지식이 없어서 망한다는 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모르는 지식을 말합니다. 부부가 아는것 같이 아는 하나님, 어떠한 것에도 두렵지 않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아는것입니다. 우리는 찬양을 부릅니다.
살아 계신 주 나의 참된 소망
걱정 근심 전혀 없네
사랑의 주 내 갈길 인도하니
내 모든 삶의 기쁨 늘 충만하네
이 찬양이 진실한 고백인지 한번 테스트 해 보면서 대답을 한번 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과연 주님은 나의 참된 소망인가? 정말 내 속에는 걱정 근심의 풍랑이 일고 있지 않은가? 나의 사랑의 주님이 내가 갈 길을 인도하고 계신 것을 나는 보고 있는가? 과연 내 모든 삶의 기쁨이 늘 충만하다는 것은 사실인가? 우리가 생각 없이 그냥 습관적으로 이 찬양을 부르면서 “나는 과연 그럿다”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더 심각한 것은 자신 속에 두려움에 쌓여 있고 진짜 기쁨이 늘 충만하지 않으면서 마치 말기 암까지 어떤 증세가 나타나지 않는 것처럼 일생을 교회안에 마당 뜰만 밟으면서 주님을 믿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정말 믿는 사람은 인생의 풍랑 앞에서도 모라비안 교도처럼 찬양할 수 있고 사도바울처럼 감옥에서도 찬양할수 있는 비결이 절대 실수 하지 않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살아있는 지식이고 하나님을 안다고 고백할 수가 있을것입니다. 저는 말씀을 전하기 위해 다른 장소로 옮길 때 마다 하나님께 어떤 본문을 가지고 어떻게 전할지를 묻습니다. 그러면 성령님은 친절하게 자세히 가르쳐 주십니다.
구레에는 우리 며느리의 부모님이 노후에 시골에서 살고 싶다고 삼 년 전에 이사를 가신 곳입니다. 바깥사둔은 그곳에 와서 말씀을 전해달라고 여러번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다가 두 달 전쯤에는 저가 너무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아 서운해 지실라고 한다고 하시며 다른 사람보지 말고도 사둔 한분만이라도 보고 와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두 달 전에 예약을 했습니다. 네시간 이상을 박찬국집사님이 운전을 해서 우리 팀은 오후 세시가 넘어 그곳에 도착을 했습니다. 저녁 집회는 7 시 인데 늘 먹을 것을 잘 챙겨주시는 사부인은 도착하자마자 “식사를 몇시에 할까요?” 친절하게 딸기와 도마도 쥬스를 갈아 쟁반에 바쳐들고 오시면서 물었습니다. 저가 먹는 것은 언제나 먹으니까 이왕 왔으니 먹는 것보다 지금부터 저녁 예배 전에 기도를 하기를 권하니 깜짝 놀라는 것입니다. 우리일행은 사둔 내외분과 교회 다른 권사님 한분이 그곳에 와 계셔서 세분과 함께 찬양을 하며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실수 있는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주 지적이고 명철하신 바깥 사돈과 교회 권사님은 그 자리에서 방언을 받았습니다. 저녁에 가서 말씀을 전하는데 처음 만난 그분들은 누가 그분들 소개 해 주고 사연을 듣지 않아도 언젠가부터 한 영혼의 속에서 나오는 외침은 얼굴에 쓰여 있는 것을 저는 판독하게 됩니다. 한분은 아주 착하게 웃으시는데 그 분속에는 너무나 짙은 슬픔이 보였습니다. 놀랍게 그분을 기도 해 드리고 났을 때 그분은 우울증 약을 복용하고 있다는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새벽에 우리 안사돈에게 교회 10 시 가기 전에 다시 하나님을 만나는 기도를 하자고 했습니다. 저화 윤권사님은 세시 반에 일어나서 준비기도를 하고 다섯 시에 다같이 모여서 기도하자고 했는데 우리 안사돈은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이 당신은 그런 사람들이 싫다고 자신은 관심이 없다고 웃으시면서 사양을 하셨는데 쓰나미 같은 성령이 타치를 하니 역시 방언을 받고 저를 끌어 안고 고맙다는것입니다.
목사님께 양해를 받고 바르게 기도하는것이 어떤 것인지를 강의를 한다음 두 곳 줄을 나누어서 윤권사님과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곳에서도 방언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남자집사님도 성령이 그 심령을 타치할 때 방언으로 큰 소리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명이 전혀 생각지도 않고 조용하던 그곳에서 놀라게 하는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조용한 그곳에 쓰나미가 온것 같이 심령을 건드렸습니다. 순천에서 이사 온 지 열흘밖에 안되신 집사님은 기도가 안 된다고 와서 기다리며 자신을 위해서 기도해 주기를 소망하더니 유창한 방언으로 기도하면서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 했습니다.
저가 간다고 약속을 한뒤 성경을 사십일 만에 일독을 한 바깥사둔에서 성경의 흐름을 더 이야기 해 드리고 싶었으나 일정이 짧아서 다음에 서울에 아들집에 오실 때 하기로 약속을 하고 그곳을 떠나왔습니다. 박찬국집사님 내외가 같이 찬양을 하면 가는곳마다 얼마나 기쁨이 넘치는지를 모릅니다.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에 밤에 내리니 남편이 차를 보내 주어서 그 차를 타고 윤권사님과 같이 일산으로 왔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교회에 갔는데 아직 못 만나고 있다가 하나님을 만나서 기쁨이 충만해 지는 것을 보면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습니다. 차를 타자 스님의 아들이었다가 우리 남편을 차를 운전하게 된지 이제 일년된 그 분이 저를 보더니 “권사님 오랜만에 뵙지요?” 하는 것입니다. 저가 웃으면서 “왜 보고 싶으셨어요?” 하니 막 웃으면서 잠시 후에 “저가 기타 치며 찬양하는 것 좀 들어보실래요?” 하는 것입니다. 휴대폰에 자신이 찬양을 기타 치면서 녹음한 것을 들려주는데 정말 주님을 만난 기쁨이 그 찬양 속에 들어 있었습니다. 한번은 그분이 자신이 기타를 치면서 찬양을 하다보면 기쁨의 눈물이 흐르는데 아내 집사님이 보면 멋쩍어서 눈물을 닦고 돌아서서 아내를 본다는 고백을 하였습니다.
챤양을 앞에서 부르는 분이 전혀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지 못하는 분이 인도를 하면 예배 시작하기 전에 자장가를 불러줍니다. 그것은 음악적인 기교하고는 상관이 없습니다. 정말 외양간에 소가 없어도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없어도 주님으로 인한 기쁨입니다.
지금은 정말 전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찾지 않으면 안 되는 절박한 말세가 보이는 시기에 살고 있습니다. 당신의 하나님은 살아계신 주님이십니까? 인생의 풍랑에서도 당신의 갈길을 인도하여 기쁨이 충만한 하나님을 간절히 전심으로 찾으면 만나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잠8:17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