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주님과 동행하는 인생
계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나는 날마디 기적을 경험한다” 책이 나온 이후 새로 만나는 사람들마다 이런 질문을 많이 합니다. “나는 왜 기도해도 이런 일이 안 생길까요?” “작정기도, 철야기도 다 해 보았는데도 응답이 없던데요” 등등 기도에 관한 궁금증을 이야기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기도는 사도행전 12 장에 열정적으로 베드로가 감옥에 갇혔을 때 기도하는 모습과 같습니다. 그들은 열심히 기도했지만 응답이 되어 베드로가 풀려났을 때 기뻐서 그 소식을 전해주는 로데에게 미쳤다고 말하는 사람들과 같습니다. 이 교훈은 사람들은 기도를 하면서 과연 하나님이 응답하실까? 라는 뿌리 깊은 믿지 못하는 불신이 기도응답을 막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 기도의 응답을 가르쳐주신 말씀을 잘 목상해 보면 하늘 보좌를 움직이는 기도의 지름길이 있습니다.
요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첫째 순서가 “너희가 내안에 거하고” 라고 가르쳐 주시는데 요한계시록 3 장 20 절에는 주님은 일주일에 한번 잠깐 교회에 가서 “안녕하세요? 나 왔다 갑니다.” 라고 손을 흔들고 일주일내내 세상 사람들과 똑 같이 살면서 실패를 연속으로 하는 삶이 아니고 주님과 친구가 되어 먹고 마시고 더불어 함께 동행하는 것을 원합니다. 우리가 기도를 해도 응답이 되지 않는 이유를 먼저 말하자면 어떤 위금상황이나 우리가 알지 못하는 돌발 사건이나 주님과 함께 동행 하는 삶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언제든지 주님은 내 인생의 문밖에 새워두고 나 혼자 살아가는 것은 우리가 고통 속에서 사는 것을 자청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수 있는것은 사실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함께 더불어 나와 동행하며 나를 인도하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당신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는 주님의 음성을 외면하기에 당신의 고통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인생에 가장 친한 친구로 동행하고 싶어 하십니다. 그렇게 하나님과 가장 친한 친구 라는 별명을 아브라함에게는 부쳐녔습니다. 하나님은 친한 친구에게는 비밀이 없이 미리 정보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당신도 이런 인생을 살고 싶지 않으세요?
[약2:23]이에 경에 이른 바 이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응하였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창18:17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그러면 당신이 주님과 더불어 먹고 사는 주님과 동행하는 삶인지 아니면 교회 마당 뜰만 밟는 사람인지는 진단해보면 쉽게 플릴 것입니다. 주님과 먹고 더불어 그 안에 사는 사람이라고 하면 당신이 무엇을 하던 당신 앞에 하나님이 계신 것을 인식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친구”라는 별명을 얻는 사람은 아주 하나님과 친한 사람이지요. 그 사람은 하나님과 늘 동행하기에 하나님은 그 사람이 필요한 것을 말하기 전에 미리 아시는 분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구하는 그런 것을 구할 필요가 없습니다.
마6:8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저가 이렇게 기도를 가르쳐주면 많은 사람들은 기도에 딜레마를 느낍니다. 그들이 필요한 것은 당장, 자신에 급한 순서가 여러 가지 하나님께 달라고 해야 하는데 구하기 전에 안다고 하면서 그러면 왜 그렇게 항상 없고 기도가 응답이 안되는거야? 이렇게 질문합니다. 사람들이 가장 급하게 생각하고 필요로 하는 돈문제의 기도를 한번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저는 선교회에 끊임없이 한강에 독던지기 식으로 필요로 하는 선교를 하고 있습니다. 일월부터는 우리가 지원하는 선교사님들에게 어디는 얼마를 더 지원하고 이런 계획들을 세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계획들이 있는데 하나님 얼마를 주십시오” 라는 기도를 하지 않습니다. 어떤 분을 만났는데 그분은 외국인 선교를 바르게 하는 사람들은 물질에 아주 고통을 겪어서 힘들고 정치와 결탁을 하는 사람들은 돈을 잘 타내는 기술이 있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저는 아무 대답을 하지 않았는데 저가 우리 하늘 아버지께서 공급한다는 이야기를 해도 전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선교회는 정치나 어떤 세상적인 보통사람들이 받는 곳에서 1 원도 받아 본적도 없고 관심도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선교사로 가야 하는데 노회나 총회본부 친구 동기 목사님들이 단돈 만원도 지원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역시 저는 묵무무답이었지만 그것과 하나님 일과는 별개입니다. 하나님은 직접 우리가 필요한 것을 아실뿐더러 공급을 언제나 신실하고 하고 계십니다.
그러면 친구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면 매일 무엇을 달라고 하는 사람과는 좋는 친구관계를 유지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돈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늘 이렇게 이야기 해줍니다. “물질은 하나님 방법대로 하나님이 원하시는대로 돈을 잘 사용하면 그 점수만큼 맡기는 것입니다.” 저가 이렇게 대답해 주면 “하나님 나에게 물질을 줘 보세요. 그러면 잘 쓰겠습니다.” 이렇게 기도합니다. 그렇게 사업을 놓고 기도하거나 그런 태로도 시작한 사람들이 지금 노년이 되었을 때 끝까지 하나님께 잘 공급을 받는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전혀 아니고 신용점수는 나중에 주면 한다는 조건부가 아닙니다.
이 원리를 우리 자녀들에게도 아주 어릴 때부터 가르쳐 주었습니다. 지금도 계속 가르쳐 주고 있는데 아들가족은 한국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일주일에 한번은 계속 같이 성경공부를 하고 기도하면서 하나님rjl 더불어 먹고 마시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삶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지난 토요일에도 마침 장인 장모님이 와서 같이 계시면서 그곳 시골교회에 우리 아들 내외가 가서 한일을 이야기 하면서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아들은 우리 선교회에도 남편 다음으로 가장 많은 헌금을 하면서 이일을 돕고 있습니다. 장인 장모님이 노년에는 시골에서 사시겠다고 구레에 집을 짓고 이사 가셨는데 다니시는 시골교회에 참석을 하고는 도시의 모든 편리한 것과 화려한 건물과 달리 너무나 오래되어 여러 가지 수리해야 할 것을 보고 아들 내외가 먼저 헌금을 하고 왔다는 것입니다. 그 헌금을 보고 그곳 교인들이 자극을 받아 너도 나도 동참하여 새로운 좋은 환경에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정월이 되어 한달 유치원 지원비를 직장에서 받았다고 이달에도 어린 아들의 이름으로 그곳에 또 헌금을 보냈다고 장모님이 이야기를 하면서 기뻐했습니다. 아들 부부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전혀 아깝지 않고 쓰임 받는것이 기뻐요.”라고 하는것입니다. 저희 남편도 동일하게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은 내가 헌금을 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하실수 있는데 나를 써주는것이 영광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태도를 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면 이렇게 고백할것입니다. “이 모든 물질은 하나님께로부터 왔습니다. 나의 가진 건강, 재능, 생명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신것입니다. 감사할뿐입니다.” 그리고 자신을 돌이켜 보면 죄가 하나님과 분리하게 만드는 것이 싫어서 하나님을 슬프게 해 드리는 것이 싫어서 예수님의 보혈로 죄를 씻고 즉시 우리 행동을 죄에서 정결한 삶으로 전환 하는것입니다. 그래서 “회개와 감사”가 가장 능력있는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감사 - 만입이 내게 있으면 그 입다 가지고 내 구주 주신 은총을 늘 찬송하겠네.“ 그렇게 감사를 한번 해 보십시오. 또한 하나님안에 거하려면 깨끗하게 씻지 않고 함께 더불어 주님과 살수가 없습니다. 그 죄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히게 죽게 한것입니다. 이 죄를 씻고 정결한 영은 최고의 능력의 기도가 될것입니다. 이 기도가 바로 하늘 보좌를 음직이는 기도가 되겠습니다. 그러면 ”기적은 상식“처럼 날마다 일어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