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를 잊은 적이 없어
사49:15 -16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사49:16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한 청년의 집안과 교제를 한지 이년이 흘렀습니다. 그 가정의 구성원 한명 한명을 바라보며 함께 교제하며 인간의 애한을 많이 느꼈습니다. 모잠비크에서 사역하는 하이디 베이커가 선교라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고 사랑을 배우는 것이라고 한 것을 공감합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법을 배워본 적이 없기에 실지 인물들을 우리 앞에 하나님께서 붙혀 주시고 배우게 하십니다.
닉 부이치치 같이 몸이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도 정상인보다 뛰어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도구로 만들 수 있는가 하면 다른 부모의 영향은 자녀를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인물로 만들기도 합니다. 이 청년은 후자의 경우입니다. 쓰러진 그를 일으키는것이 바로 주님이 우리에게 부탁하신 일입니다. 어릴때부터 닉 부이치치의 부모처럼 귀에 못이 박히도록 “하나님은 너를 사랑하시고 너를 향한 놀라운 계혹이 있어” 이렇게 마음밭에 새겨진 사람은 그대로 행동을 합니다. 반대로 “너가 무엇하나 할줄 아냐?” 이렇게 늘 듣고 자라다보면 영혼은 점점 더 의기소침해지고 두려움과 대인기피증과 무기력증으로 사람이 두려워집니다.
처음 그를을 보았을때 그리고 복음을 심어서 살아난것 같고 모든 것이 완전한 회복이 이루어진 것 같을때 우리는 환호를 지르지만 한 사람이 굳건한 성인으로서의 흔들리지 않는 모습으로 서기에는 정말 오랫동안 신약 구약을 먹으며 기도와 사랑가운데 자라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마치 아기가 한걸음씩 걸음을 옮기면 박수쳐주지만 넘어지고 또 일어나고 하는 것을 반복하여 어느 날 뛰어 다닌 모습으로 바뀔 때까지 그리스도의 인내를 배우게 됩니다. 그런 과정의 코스는 하나님의 인내가 무엇인지를 배우게 되는 신학교교실입니다.
손과 발이 없는 닉이 휴대폰을 한쪽 끝에 달린 발가락으로 던져서 어깨에 살짝 올려놓기 까지 수없이 휴대폰을 떨어트리고 몇 개를 그렇게 고장을 냈는지 말할수 없다고 한것 같이 우리는 옆에서 지켜보며 격려를 하는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얼마나 우리를 참고 사랑하며 기대하며 보고 계시는가를 배우게 됩니다. 닉은 어느날 아주 샆분이 휴대폰을 어깨에 올릴수 있게 된것 같이 새로운 피조물의 모습은 우리를 놀라게 할것을 믿습니다.
어느늘 밝은 모습으로 모두에게 인사하며 똑똑한 자신의 표현을 하며 주님의 사랑 안에 젖어 들다가도 아무것도 아닌 일이지만(본인에게는 심각함) 좌절하고 또 다시 문을 닫고 방에서 두문불출하고 다시 불러내고 연속적으로 반복하는 일이었습니다.
얼마전에 만나서 “나는 너를 잊은 적이 없어”라고 말하며 그를 끌어안아주니 저를 꽉 끌어안고 “저두요”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방문을 걸고 이번에는 두달동안 집 밖에 한발자국도 나가지 않았다는것입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한번도 포기하지 않는 사랑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집 나간 둘재 아들을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며 진치를 언제나 베풀어 주실 준비가 되어 있으며 멀리서 상거가 아직 먼데도 기다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드디어 두 달 만에 집에서부터 걸어서 교회까지 온것입니다. 집에서 교회까지 걸어오려면 두 시간이 걸리는데 나타나서 저를 놀라케 했습니다. 항상 보면 잘 생긴 얼굴입니다. 그날은 웃으면서 “권사님하고 여러번 약속을 어겨서 오늘은 새벽부터 잠이 아직 들지 않은 상태에서 걸어왔습니다.” 그는 낮과 잠을 거꾸로 살고 있어서 그것은 아주 힘든 일이었는데 그렇게 온 것입니다.
어제 수련회에도 그렇게 걸어왔습니다. 함게 종일 말씀을 듣고 기도하는 시간에 다시 은혜의 바다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함께 차를 타고 돌아가면서 “어제도 왔으면 너무 좋을껄 그랬어요.”하며 밝게 웃는 것입니다.
이 선교의 현장은 우리가 무엇을 주거나 가르치는 장소가 아니고 성경에 있는 말씀이 현실속에서 어떻게 적용되어야 그 의미를 깨닫게 하는 맨토들이 있는곳입니다. 그가 넘어지면 다시 일으키고 또 넘어지면 또 일으키고 그러나 그리스도안에 새로운 피조물이 될것에 대한 희망이 절대적이기에 우리는 오늘도 푯대를 향하여 부르신 부름의 소망을 가지고 달려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