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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 다운 부부들

마마킴||조회 4,870

아름 다운 부부들

 

어제 수련회 시작 전에 월요일 송학식품예배에 갔습니다. 예배순서에 김현길전도사님과 이봉선전도사님 부부에게 특송을 하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이 부부는 중국조선족으로 우리가 후원하는 학생입니다. 중국에 돌아가서 조선족들과 탈북자를 위한 선교의 비전을 확실히 가지고 있는 부부입니다. 어제 특송을 할 때 보니 이봉선전도사님이 그렇게 아릅다운 모습이었습니다.

  처음 김현길전도사님을 이기열선교사님 부탁으로 우리 학생으로 후원하기 시작하였을 때 당연히 아내도 주일 예배를 우리와 같이 드려야 하는데 식당에서 일을 하느라 오지 않고 평일에 가끔씩 왔습니다. 저가 하루는 주의 종이 될 사람이 모범을 보여야 하는데 어떻게 주일을 지키지 않느냐고 하니 그것 보다는 식당에서 일을 하는것을 더 우선으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부터 잘생긴 모습이었지만 잘생긴 것과 아름다운 것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아무리 잘생겨도 예수 안에서의 겸손함과 부드러움이 없으면 아름답지가 않습니다.

먼저 김현길전도사님이 복음가운데 더욱 성숙한 인격을 갖춘 신앙으로 다녀지는 모습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 생수의 강이 넘치자 아내도 바뀌었습니다. 주일을 지키는 것도 물론이지만 “감사”를 아는 사람으로 바뀌고 어느 날부터는 식당일을 그만두고 자신의 돈으로 신학교에 입학을 한것입니다. 우리에게 부담을 주는것이 죄송하다고 조용히 그렇게 바꾸었고 전에 같이 중보기도모임에 오면 기도가 전혀 무엇인지 모르는 모습이었는데 성령안에서 방언으로 깊히 기도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더니 점점 더 아룸다워지고 어제는 찬양을 하는데 너무나 아름다워서 저는 속으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그를 후원하기 시작했습니다.

 메뉴카는 지난주일예배 후에 저에게 특별한 선물을 안겨주었습니다. 그것은 메뉴카의 영어로 쓴 논문이었습니다. 얼마나 감격스러웠는지 모릅니다. 메뉴카는 슈랜드라의 아내이고 처음 비자 받을 때부터 하나님께서 기적을 베풀어서 면담도 하지 않고 대사관문앞에서 돌아서는 메뉴카를 다시 불러서 비자를 주도록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한국에 도착한 한 학기는 아주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메뉴카도 저도 같이 험들었습니다. 다른 학생들과 같이 신학과 입학금과 등록금을 이미 지불하였는데 그 공부가 맞지 않는다고 상담학과로 돌릴수 있느냐고 슈랜드라가 물었습니다. 애당초 메뉴카를 한국으로 부를때 저는 슈랜드라와 좋은 부부로써 만들어 주기 위한 목적이 더 커서 그렇게 상담학과로 돌릴 경우 얼마의 돈을 더 지불해야 했습니다. 그런데도 메뉴카는 그렇게 그리워 하던 남편과 같이 있는 기쁨도 있지만 사랑하는 딸이 보고 싶어 매일 울었습니다.

 한학기를 마치고 겨울이 되자 두 사람은 저에게 상담할것이 있다고 저희집에 찾아와서 같이 저녁을 먹고 하룻밤을 잤습니다. 그날 저녁을 먹으면서 딸이 보고 싶어서 그냥 네팔로 돌아간다는것입니다. 저가 힘들게 한국으로 하나님께서 보내주셨으니 이 고비를 넘겨보자고 하니 요청을 거절당한 것만 생각하여 메뉴카는 울고 슈랜드라는 아내를 달래느라고 수고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다움 한국에 머무는 시간들에 메뉴카는 자신의 변해야 할 부분들, 버려야 할 부분, 고쳐야 할 부분을 복음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총명하여서 한국어도 어학당에 가지 않아도 너무나 잘 하는 것을 보았고 네팔사람들을 너무나 잘 섬기므로 네팔반이 부흥하였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처음네팔에서 왔을때 까많던 피부는 환해지고 얼굴을 밝아지고 논문도 빨리 통과해서 저에게 안겨주었습니다. 이제 이 부부를 통하여 네팔에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의 통로가 될것을 믿고 그 나라를 변화시키는 소망의 빛을 전하는 도구가 될것을 믿습니다. 슈핸드라도 아주 영리하여서 한국어 성경도 읽고 한국어도 거의 다 알아들을 정도로 뛰어납니다. 성경을 보는 안목이나 지혜도 뛰어납니다.

 메뉴카가 그렇게 변화된 시간은 2년 4 개월밖에 아닙니다. 사람들은 얼마만에 사람이 바뀌냐고 묻는데 각자 전혀 다릅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진실로 거듭나고 기름부음이 있는 사람은 부드럽고 겸손하며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열매를 바라시며” 찬양을 주님께 올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