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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 년

마마킴||조회 4,696

1997 년

 

1997 년? 도대체 무엇을 말하려는 거지? 이렇게 궁금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이 1997 년이 다가오기 전에 홍콩에서는 온통 관심과 집중이 되었던 시간이기도 합니다.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생사가 걸려있던 시간이기도 합니다.

영국의 통치 100 년이 끝나고 중국으로 넘어가는 해가 바로 1997 년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가족이 처음 홍콩에 도착한 것은 1985 년이었고 그곳을 완전히 떠나서 말레이시아로 간 것은 1995 년 즉 중국으로 넘어가기 2 년 전이었습니다. 맨 처음 도착했을 때도 교회를 가도 보통 다른 사람을 만나도 대화가운데 중국이 통치하게 되면 공산당 통치에 들어가는데 어떻게 될 것 같으냐고 언제나 불안한 생각과 추측을 하곤 했습니다. 지금 “한국이 전쟁이 날지도 모른다” 라는 생각보다 더 현실적이었던 것이 그것은 정해진 해에 양도를 해야 하는 시기가 이미 정해져 있었기 대문입니다. 사람들은 많이 긴장되어 있었습니다. 특히 우리 같은 주재원은 그곳이 조국이 아니기 때문에 덜 심각했지만 그곳에 교민들은 많이 신경을 곤두세웠습니다.

영국인들도 홍콩에서 오랜 세월을 살아온 사람들은 그곳이 고향이었습니다. 그들은 이미 오래전에 영국을 떠나서 그곳에서 병원을 개업하고 있기도 했고 사업장을 그곳에 벌리기도 하였기에 그들에게 영국은 다시 돌아가서 적응하기에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홍콩 사람들중에 많은 부자들은 공산당 통치에 모든 것을 정부가 관리할 것을 생각하고 재산을 모두 정리하고 캐나다 같은 곳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세계에서 시작을 해야 했습니다. 1985 년 당시는 중국이 아직 개방을 하지 않은 상태여서 지금과 같이 수많은 외국인들이 중국을 드나들고 그들도 세계 여러 곳으로 왕래할수 있던 시간이 아닙니다. 당시 중국은 굳게 닫혀진 장소였습니다. 그리고 공산주의의 개념이 지금처럼 희박해진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교민들과 대화를 나눌 때 제 1 안, 제 2 안 하면서 여러 가지 궁리를 하는 이야기 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1997 년이 되었습니다. 모두의 예상을 깨고 자치지구로 정해진 것은 이미 정리를 하고 떠나버린 사람들에게는 쇼크였습니다. 아무것도 달라진것이 없이 홍콩은 지금도 여전히 옛날과 똑같이 국제도시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많은 지진과 지구의 변화등 몇 년 전에도 쓰나미의 충격등 세계는 믿지 않는 사람들이 보아도 위험수위를 넘어가고 있습니다. 모든 인류의 태초부터 하나님의 창조이후로 사람들은 악하고 하나님의 창조를 파괴하고 하나님의 의도와는 다르게 살아왔습니다. 그래서인지 그런 영화도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우리가 젊었던 그 시간에도 교회에서도 또 강력한 예언을 하는 사람들도 이 나라가 위험하다는 니야기를 늘 듣고 살아왔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세상의 모든 것에 관심을 갖는 자체가 어리석게 보이고 곧 주님 앞에 갈 준비를 해야 하는 것으로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습니다.

설사 곧 세계 종말이 오지 않아도 이제는 며칠만 지나면 한국나이로 64 세나 되는 2011 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 앞에 갈 날이 더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강건하면 80 그렇지 않으면 70 이라고 하면 인생의 마지막 달리기를 해야 하는 시간입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어떻게 준비를 하며 어떻게 사는 것이 진실한 그리스도인이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일까 많이 묵상해 보는 시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경을 손에 들려주셨을 때부터 이미 세상의 종말은 예언 되어 있고 주님의 재림은 기록되어 있는 사실입니다. 터키에 어떤 지역에 갔을 때 그들은 주님이 예수님이 승천하신대로 다시 재림할 것을 볼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여 굴속에서 살며 세상의 모든 삶을 등진 사람들이 살던 장소도 보았습니다.

때와 시기는 아버지만 알기 때문에 더 사랑을 심으며 하루하루를 살아야 하지 않을까 저는 생각합니다. 오늘 주님이 오라고 하실 수도 있기에 더 사랑하며 사랑의 나무를 심어야 하는 것이 아버지의 뜻이라 생각합니다. 이것은 저의 생각이고 의견입니다. 홍콩에 25 년전에 갔을 때 그리고 믿음의 여정을 걸어온 지금 이 시간을 되돌아보면 너무나 실수와 부족한 것 투성이이지만 하루 하루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오늘 아버지앞에 간다고 해도 후회없이 사는것이 종말을 맞이하는 자세가 아버지가 원하시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젊었던 시간은 지나가고 이제는 마지막 달리기를 해야 하는 이 시점에서 많은 사람들을 보았고 많은 사람들의 신앙생활도 보았습니다. 정말 사람들은 “각자의 믿음대로, 각자의 소견대로” 하나님을 섬기고 살아가는 것을 봅니다. 어떤 때는 같은 하나님을 믿고 있는데 마치 다른 신을 섬기는 것 같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옳다고 믿음대로 살아온 그 시간은 결과가 같은 것이 아니라 세월이 흘렀을 때 자신이 옳다고 믿은 대로의 인생의 열매를 바라보게 됩니다. 어떤 한 사람도 완벽하여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가장 잘 믿는 것이다”라고 가르쳐 주는 모델은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 우리의 모델일 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가르쳐 주십니다.

최병춘장로님은 작년 3 월 이후 성경을 모두 23 독을 마치고 윤권사님은 모두 14 독을 하였다고 오늘 홍천 산돌식품에 예배를 위해서 갔다오는 길에 이야기 하시며 성경을 계속 읽다보니 “성경이 점점 얇아지는것 같아요. 처음에는 성경이 두껍고 일독씩 넘어가기가 어려운 것 같았는데 읽을수록 깨달아지고 두께가 두껍지 않네요.” 라는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수 많은 종교지도자들도 보았고 나름대로 책을 많이 읽어보았지만 조지뮬러의 고백처럼 “영감이 있는책”과 사람이 써서 “엉감이 없는 책”의 가르침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성경을 읽고 기도하다보면 기도에 관한 우리가 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을 배우게 됩니다. 우리의 기도가 늘 응답이 되는 것이 정상입니다. 주님의 기도의 모습을 성경 그 자체에서 한번 묵상해 보면 왜 제자들이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소서” 했는지를 알게 될겁입니다. 물론 제자들이 그때가지 기도를 하지 않았을 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기도는 전혀 다른 권위가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죽은 나사로를 살리는 과정에서 “아버지 나사로를 살려주세요” 이렇게 세시간 다섯시간을 부르짖게 가르쳐 준것이 아니고 “ 항상 내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요 11:42)” 이렇게 시작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곧 “나사로야 나오라” 확신하며 말씀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런 과정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홍콩에서 밤에 잠을 잘 때 한 외국인과 대화를 나누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의 개인적인 이야기라 전체를 공개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꿈속에서 저에게 “나는 가족을 위해 이렇게 결정을 내렸어요.”라고 하는 것입니다. 너무나 선명하여 그것이 무엇일까 생각했는데 그리고 며칠후 토요일에 이합이 수술을 받은 병원에 같이 가는데 저가 묻지도 않는데 모든 이야기를 해 주는데 그 꿈의 선명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용서와 사랑으로 승리한 놀라운 이야기였습니다. 복음을 전하고 사랑과 용서의 메시지를 수없이 전한 것을 참으로 기쁘게 생각한 순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시기를 원하면 그렇게 정확하게 가르쳐 주십니다. 당신이 늘 하나님과 고통하고 있으면 기도는 시간이나 방법의 문제가 아니고 주님처럼 이렇게 고백할 것입니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이것이 기도의 진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