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든 박해든
눅6:26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그들의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나아갈 때 모둔 사람이 박수를 쳐주며 칭찬을 하는 것이 아니고 비판과 박해도 받게 되며 하나님의 일이 진행되었던 것을 나구고 싶습니다. 우리주님은 모든 사람이 우리를 칭찬하면 화가 있다고 가르쳐 주십니다. “아멘”입니다. 우리를 모두 칭찬한다면 우리는 교만에 빠지고 오히려 교만하여 패망에 선봉을 걸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비판을 받고 박해를 받게 되어 교만하여 지는 것을 막아준다면 이 또한 우리를 괴롭히는 일이 아니라고 고백할 수가 있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고백하게 될것입니다.
[고후1:20]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과거를 돌이켜 보면 대학부를 맡았던, 청년부를 맡았던 아니면 다른 곳에서 복음을 전하던 이 비판과 박해가 없었던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저가 대학부를 맡아서 지리멸절해 가는 대학부를 40 명으로 부흥시켰을 때 저에게 “전설의 여인”이라는 별명을 붙여주며 담임목사님이나 교육담당목사님, 또 변화된 자신의 자녀를 둔 부모님들은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한편은 그때에도 비판과 박해는 따랐습니다. 이 이야기를 나눔으로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나아가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기 위하여 나눕니다.
그때 다수의 대학부 학생들은 교회에 잘 출석도 하지 않았을 뿐더러 특히 우리가 성경공부를 하는 오후시간에는 교회 근처에서 얼씬하지 않던 학생들이었습니다. 그런 학생들을 붙잡고 성경공부를 하는데 일부에서는 왜 오후 예배시간에 대학부를 모이게 하느냐고 중진들 중에서 언성을 높이는 박해를 가해 왔습니다. 큰 교회이지만 대학생들이 모일수 있는 장소가 교회 꼭대기 도서실이라 그곳은 여름에는 에어콘이나 선풍기가 없고 겨울에는 난방이 되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학생들은 아랑곳 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젖어 들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형제들에게 친구들에게 이렇게 권면하곤 했습니다. “그곳에 오면 마치 성령이 운행하는 것을 볼수 있는 것 같고 느껴지는 것 같아” 대학생들은 울며 회개하고 주님의 뜻을 따라가기로 결단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엄청 비판을 했습니다. 지금 세월이 이십여 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 비판하던 그들의 이름도 얼굴도 제게는 희미할 뿐이고 남는 것은 하나님이 어떻게 나를 평가하는 것인가 하고 그 열매를 보고 나무를 아는 것입니다.
청년부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것보다 더 심한아픔은 가장 사랑을 많이 붓고 또 부은 사람이 전혀 다른 길로 빠지는 소수를 보는 것입니다. 그럴때 계산을 해 보면 다수가 더 많이 회심을 하고 주님을 따라갔다는 것을 깨달을수가 있어서 다시 전진하며 새 힘을 충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수백명이 이곳에서 치료를 받아서 감사를 하는 사람은 왜 성경에 열명이 고침을 받고 한명이 감사하러 돌아온 사실을 기록해 놓았는지 깨닫게 될 정도로 감사를 하지 않습니다. 이 이야기는 “평생감사”책에서 100 달러를 주는 실험을 해 본이야기에서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한 달 동안 매일 100 달러를 돌려 주었을때 처음에는 의아해 하다가 나중에는 당연한것 처럼 쓰다가 주지 않으면 “내 돈 내 놓으라”는 식으로 왜 주지 않느냐고 하는 이야기와 동일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계속 전진을 하며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푯대를 향하여 달려갈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 땅에서 상이 아니고 우리 아버지에게 하늘에서 주시는 상을 받기 때문입니다. 세월이 지나면 당신에게 박수를 쳐 주었던 비판을 했던 그들은 모두 사라집니다. 오직 하나님 앞에 섰을때 아버지의 평가가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의 선배 선교사인 허드슨 테일러는 이렇게 충고해 줍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보람을 찾는 것이 아니고 하늘나라에서 보람을 느낄것이라구요. 당신에게 사랑이던 물질이던 그 무엇을 받아서 오히려 비판하고 감사하지 못하는 것을 조금도 마음에 둘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과거의 모든 시간을 돌이켜 보면 얼마나 상주시는 것을 기뻐하시는지 “냉수 한잔”에도 상을 잃지 않는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입니다. 오늘 아침에 마태복음에서 주님이 이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신다는 약속앞에 “항상” 함께 하신다는 그 “항상”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와서 닿았습니다. 그 주님을 영안을 열고 본다면 그 어떤것도 이길 수 있는 힘을 받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