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떤 자녀를 원하십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의 질문은 어떻게 하면 공부를 잘해서 좋은 학교에 들어갈 수 있는가? 를 묻지만 왜 좋은 학교를 원하고 어떤 삶을 살기를 원하는 데는 그저 돈 많이 벌면 행복하고 인생이 그것보다 더 바랄 것이 무엇인가 라는 가치관만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왜 미국의 최 일류학교를 다니던 아들과 엄마가 같이 자살을 했을까요? 왜 연탄가스를 피우고 계획적으로 자신의 목숨을 꾾었을까요? 왜 재벌 2 세가 죽음의 기리을 택할까요? 돈이 행복을 가져온다면 그런 일은 생기지 않았을것입니다.
특목고에서 점심시간에도 다른 아이들과 대화를 전혀 하지 않고 혼자 책을 펴서 공부하며 밥을 먹는 아이에게 왜 친구들하고 말도 없고 그렇게 공부하며 밥을 먹느냐고 물었을때 아빠가 그렇게 하라고 시켜서 한다고 대답 했다는 것입니다. 그 아빠는 정말 큰 실수를 자녀에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목고에서 혼자 어울리지 않는 아이는 공부는 잘할 수 있을는지 몰라도 다른 사람과 전혀 어울리고 남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고 자라서 성인이 되었을 때 큰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는 것을 그 아이의 부모는 어리석게도 모르고 그런 교육을 시킨 것입니다.
기부왕 폴 마이어 가 쓴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기 위한 24 가지 습관에서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성공이란 무엇인가
돈인가?
자유인가?
권력인가?
영향력인가?
그러니 이것이 전부가 아니가 진정한 성공은 그부다 훨씬 더 위대하다
그가 처음 직원을 채용할 때 아주 머리가 좋은 사람들을 채용하였는데 나중에는 그들의 태도가 아주 부정적이고 사람들과 관계가 좋지 않으므로 그런 사람들을 채용하지 않았다는 내용을 읽어보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공부를 잘 시킬 것인가를 결정하기 전에 어떤 자녀를 키워야 가장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를 먼저 결정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부모의 결정이 자녀를 그렇게 키워 나갈 것이며 그 결과가 부모가 맞게 되는 미래의 자신이 심은 열매의 결과가 될 것입니다.
잠23:7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 그가 네게 먹고 마시라 할지라도 그의 마음은 너와 함께 하지 아니함이라
똑 같은 재능을 가진 사람이라도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그의 미술 재능으로 우리에게 최후의 만찬이라는 작품으로 예수님을 전하는 불후의 작품을 남겼습니다. 헨델도 그의 음악이라는 재능으로 메시아 라는 작품으로 지금도 우리의 영혼을 흔들며 하나님을 찬양할수 있는 작품을 남긴것입니다.
그런 목적이 설정된 다음에 자녀를 바르게 지도할 수가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을 가지고 지혜롭고 충성된 청지기가 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녀가 되는 것이 저희 부부의 꿈이었고 그 꿈나무를 가꾸는 일을 했습니다.
처음 한글을 배우기 시작하고 영어를 배워서 국제학교를 들어가야 하고 그들과 같이 공부해야 하는 과정에서 과외공부를 시키지 않고 우리 부부가 자녀들에게 교사노릇을 했습니다. 전에 말씀드린 대로 유태인의 엄마의 교육처럼 “공부는 즐거운 것”이라는 인식을 주기 위하여 사개월 동안 알파벳을 모르는 아들이 영어로 작문을 해야 초등학교 3 학년에 편입을 할수 있는 상황이고 딸도 유치원 생이 한시간 반정도 회화를 해야 들어갈수 있는 긴급한 정도의 시간이었습니다.
“공부는 즐거운 것” 이런 생각을 심어 주는 것은 아주 힘들고 더군다나 알파벳을 모르는 아이를 그렇게 가르친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힘든 과제였습니다. 우선 영어 영어 영어 하면서 자녀들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일을 피해야 겠다고 생각하고 어떻게 하면 필요한 만큼의 기본 단어를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암기할 수 있을까를 생각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주신 지혜가 지나가다 간판을 보면 저절로 큰 글씨가 반복해서 붐으로 눈에 들어오는 것을 생각해서 아주 큰 글씨로 아이가 보기 쉬운 방문 장롱문, 벽 모두에 붙혀서 일주일에 한번씩 그 단어를 바꾸어 붙였습니다. 일주일이 지나서 그 단어를 새로 붙힐때 그 단어로 오빠와 동생을 둘이 앉혀 놓고 단어 찾기 게임을 했습니다.
공부를 하면서 오랜시간을 지루하게 하는것이 아니고 집에서 하더라도 집중할만큼 하고 노는 시간을 충분히 갖게 했습니다. 그때 자녀들과 함께 수영이나 다른 놀이를 엄마와 같이 했습니다. 그다음 동화책을 영어로 읽어주고 서로 대사를 바꾸어 가며 하다보면 재미있게 자연스럽게 대화를 외울 수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영어공부를 시키니 믿기 어렵겠지만 초등학교 3 학년 작문 시험을 아들은 거뜬히 해서 합겪을 했습니다.
그렇게 영어를 가르치기 위하여 온갖 지혜를 쓰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자녀에게 그런 정성으로 가르치면 얼마나 자녀들이 하나님을 더 배워 갈까 생각하여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성경이야기를 꼭 들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영어 성경을 읽고 녹음을 해 보고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또 성경을 영어로 암송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눈을 반짝거리며 듣던 두 어린 자녀들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이런 과정 가운데서 다른 한국 엄마들은 영어를 더 잘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여 형제간에도 집안에서 영어를 사용하도록 시켰습니다. 아이들은 그렇게 자라서 한국어를 아주 유치한 수준밖에 못하는 성인이 되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집안에서 영어공부를 열심히 시키지만 전혀 영어를 쓰지 않고 오직 한국어만 사용하는 집안 분위기를 만들었습니다. 그것은 한국어를 잘해야 하는 것 이상의 목적이 있는데 자신이 누구인지 정체성이 없으면 인격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저희 부부가 원하는 자녀입니다. 당신은 어떤 자녀를 원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