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서 배우는 사랑의 언어
자녀들이 어떻게 공부하라고 하지 않아도 공부를 잘 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유태인의 교육을 통해서 배운것은 추후 더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그전에 자녀들이 부모의 말에 순종하는 자녀가 되기 위하여 부모들이 사용해야 할 언어가 있습니다. 자녀들은 부모가 자신을 사랑하고 인정한다는 확신이 있을때 능동적으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잔소리 없이도 하게 됩니다. 그 사랑을 느끼게 해 주는 최고의 언어 중에 하나가 함께 하며 집중헤서 자녀와 시간을 보내는 것입니다.
저희 가정은 아들이 초등학교 삼학년이고 딸은 유치원 들어갈 나이에 홍콩으로 갔고 그때부터 침대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전에는 요을 깔고 생활을 하여 아이들과 한방에서 잠을 잤습니다. 방이 하나밖에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고 자녀들과 더 많은 시간을 같이 지내므로 자녀들이 부모의 사랑을 느끼게 해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침대생활을 해서 아이들이 각방을 쓰기 시작했을때도 일주일에 한번 주로 주말에는 같이 자는 날로 정하여서 요를 깔고 한방에 가면 아이들은 너무나 좋아서 깔깔대고 웃으며 한방에서 자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아이들은 각방을 사용하면서도 함께 자는 날을 기다리며 좋아했습니다. 그것은 더 많은 대화를 나눌수 있는 기회였고 스킨쉽을 통하여 옆에 자는 아이를 끌어안아주고 이불을 덮아주고 하면서 자신이 보호받는 안정감을 주는 아주 좋은 시간이었던것을 기억합니다.
뿐만 아니라 자녀들이 성장할 때 두 자녀를 전혀 도우미나 친정 엄마에게도 맡기지 않고 두 아이를 저가 혼자 돌보았습니다. 아이들이 어릴때 같이 수영을 하고 겨울이면 롤러 스케이트를 타는 데서 함께 지내며 산에도 가고 아주 많은 시간을 자녀들과 보냈습니다. 그런 시간을 통하여 자녀들은 자신의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가 있었고 우리도 자연스럽게 자녀들에게 대화를 나눌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 아들이 어릴 때는 야구를 아주 좋아해서 삼성 오비베어스 옷을 입고 아빠 손을 잡고 야구구경을 가는 것을 아주 좋아했습니다. 아빠는 기쁘게 아들과 같이 야구장에 가서 경기를 같이 보며 대화를 나누었고 골목에서 친구들과 야구 경기하는 것을 아주 좋아했습니다. 아들은 경기를 하고 집에 들어오면 자신이 했던 모든 것을 저의 눈을 마주치며 중계방송하는것을 아주 좋아했습니다. 이런 시간들은 자녀들이 사랑받는 느낌을 갖게 하였고 커서 사춘기를 맞이하고 또 성인이 되었을때도 부모와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지는 고리를 연결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분이 십대의 아들하고 두시간을 차를 타고 오면서 할 이야기가 없어서 전혀 대화를 안 나누게 되더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주로 부모들은 “하라” “하지 마라” 이런 언어만 듣지 그들이 흥미로워하는것, 고민하는것 등등의 대화를 전혀 나누어 본적이 없기 때문에 자녀들은 부모들이 사랑한다는 느낌을 갖지 못합니다.
잠언에는 부드러운 언어에 관하여 가르쳐 줍니다. 우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한다고 하여 아이들에게 거친 언어나 명령조의 언어만 들은 아이들은 겉으로는 꼼짝 못하지만 스스로 공부를 하거나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자발적으로 할 의욕이 생기지 않는 것입니다.
이 유순한 언어, 부드러운 혀를 갖기 위해서는 성령의 통제아래 오랜 훈련이 필요했습니다. 소리지리지 않고 부드러운 혀를 유지하는데 성령의 가르침으로 몇 년을 기도하면서 배웠숩니다. 성령님은 제가 젊은 엄마였을 때 늘 이런 생각을 심어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어야 할 통로가 될 엄마가 부족함으로 우리 자녀들이 하나님을 멀리하지 않게 부드러운 혀로 대화하며 소리 지르거나 잔소리 하지 않고 자녀를 사랑하는 언어를 쓸 수 있게 도와주소서.” 날마다 이런 기도를 하면서 저를 통제하는 훈련을 했습니다.
성령은 잘 훈련받도록 지도 해 주신것 같습니다. 물론 저는 흠집투성이이지만 성령의 통제를 받을 때 부드러운 혀로 만들어 주었고 나중에 보니 부드러운 힘이 훨씬 더 강한 것을 배웠습니다.
서양사람들이 아이가 태어나자 마자 엄마와 분리해서 재우고 아주 어린 애기가 따로 자는것이 독립적이라고 가르친 책과는 달리 자녀를 위한 다섯가지 언어를 쓴 게리 채프먼의 책에서도 보면 부모와 함께 하지 못한 결과로 자녀들이 사랑의 결핍증을 느끼고 부작용의 사례를 많이 기록하였습니다.
청소년들이 마약에 손을 대기 시작하는것이 부모에게서 전혀 사랑을 느끼지 못하서 라는 고백과 인생이 너무나 재미없고 외롭기 때문이라고 고백을 하는 글을 읽고는 섬뜩했습니다. 자녀들을 그렇게 키워야 독립적이라고 하는데 저희 자녀들은 부모에게 의존형이 아니고 아주 독립적이고 스스로 자기의 책임을 할줄 아는 성인으로 자랐습니다.
요한 웨슬리의 엄마 수잔나는 십명이 넘는 그렇게 많은 자녀들을 키우며 그들과 함게 따로 한명씩 함께 하는 시간을 일주일에 한 번씩은 가졌다고 합니다. 수잔나의 가족 최우선으로 하는 교육으로 말미암아 요한 웨슬리 그리고 작시를 많이한 찰스 웨슬리를 키워서 지금도 우리가 그가 작시한 찬송가를 부르며 요한 웨슬 리가 만난 하나님을 배우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공부를 잘하나? 라는 고민보다는 어떻게 하면 자녀들을 사랑의 결핍을 느끼지 않게 해 줄수 있을까를 먼저 연구하면 문제가 더 쉽게 풀릴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