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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마마킴||조회 6,602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기쁨 탱크를 우리 가슴 가득 채우는 비법을 계속 전하고 있습니다.

어제 여호수아 엄마 영자씨가 교회에 와서 자신이 새로 마음에 드는 아파트가 있다고 그 아파트를 사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먼저 윤권사님한테 아파트 사달라고 자기가 융자받는것도 다 할터이니 사달라고 하여서 아무리 설명을 해도 못 알아들으니 제게 설명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더니 박정화전도사님이 중국에서 돈을 가지고 와서 사면 안되느냐고 또 그렇게 질문을 하는 것입니다.

사연은 이렇게 시작이 됩니다. 처음 여호수아하고 둘이 팽개쳐 두고 파카스탄 남편은 독일인가 어디로 가버렸습니다. 옥탑방에 젓먹이 아들과 정신지체인 엄마와 달랑 둘이 있는 것을 보고 저는 복지과에 가서 사정을 설명하고 모든 서류를 구비해서 정부보조금을 받을수 있게 하였습니다. 처음 그런 과정을 할때 심사를 하고 조사를 모두 한후 시간을 좀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러자 영자씨는 자신이 살고 있는 집에서 동회를 찾아가려면 한정거 거의 되는 거리를 찾아가서 저가 그 돈을 띠어 먹고 주지 않나 알아본다고 한번 소동을 부린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여호수아를 책상에서 떨어트려 다쳐서 일산병원에 입원을 시킨후 퇴원비를 내고 집으로 데리고 가는데 무엇이 못마땅한지 일산병원 로비에 사람들이 오가는데 식빵 봉지를 던져가며 화를 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여호수아는 자라났습니다. 그 남편은 다시 돌아와서 일정 시간이 지나니 한국 영주권을 받고는 그녀를 버렸습니다. 정부보조금 85 만원을 받고 살아가는데 계산을 잘 할줄 모르니 복합상가 원룸을 오십만원이나 월세를 주고 살고 있어서 우리는 임대아파트를 알아보면 싸게 살고 더 좋은 환경에서 살 수 있기 위하여 알아보고 있었습니다.

요즈음 장애인 임대아파트가 자리가 없고 빌라도 시간을 가지고 가능한지기다려야 하는데 자신은 빌리는 싫고 아파트 깨끗한 것을 사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몇 년동안 그녀의 거처를 이사한후 찾지 못해 안타까워 하다가 그녀늘 은행에서 만난후 보물 찾기를 찾듯이 다시 찾아서 교제를 하며 처음 집전화도 휴대폰도 없는것을 보고 연락이 안되면 어떻게 하나 생각하고 저가 전화를 연결시켜 주었습니다.

그러나 며칠후에 그녀는 제게 획스가 딸린 전화로 바꾸어 달라는 것입니다. 어제는 저가 교회들어가자 마자 아파트 이야기를 하는데 저가 웃으면서“ 조금만 기다려 보세요. 빌라도 지금보다 더 좋거든요” 하면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이런 일들이 있으면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면 우리의 기쁨을 빼앗아가고 다른 사람을 섬기는 일에 하고 싶은 의욕이 없어지지 않나 생각합니다.

전에 삼위교회에서 홀리네이션스 선교회를 시작하기 전에 4 개월을 다른교회에서 시작을 하였습니다. 그 교회 교인들은 아파트 주민이면서 참 여러 가지 해프닝이 있었습니다. 저가 외국인들하고 식당에 앉아서 대화를 나누고 있으면 할머니 몇몇 사람들이 앉아서 커피를 마시면서 서로 이렇게 대화를 합니다. “제네들은 커피 안주나?” 다른 할머니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 제 귀에 들려왔습니다. “아이고 커피는 관둬. 제네들 같이 화장실 쓰면 에이즈 걸릴까 걱정되.”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희 집에 수시로 전화해서 “외국인 화장실 깨끗이 쓰는 교육좀 시켜라, 부엌 깨끗이 사용하게 교육시켜라“하는 요청을 수시로 해서 몸둘바를 몰랐습니다. 어떤 남자교인은 생전 교회 청소안하다가 외국인 들어오면 따라다니며 걸레질을 제 앞에서 하는 것입니다. 하루는 박윤태집사님이 교회 봉고를 가지고 외국인들을 태워 가지고 들어오는데 입구에 서 있던 교회 중진이 제게 삿대질을 하며 무어라고 야단을 하는 것입니다. 사실 그 교회를 갈 때 목사님이 외국인 선교에 비전이 있다고 해서 간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몇 달만에 그곳을 떠나서 삼위교회로 오게 되었고 이제는 십년이란 세월이 지났습니다. 이런 과정가운데서 남들이 보면 근심하는 자로 착각할지 모르지만 우리는 항상 기뻐하기에 이 길을 계속 갈수가 있는 것입니다. 영자씨가 그렇게 투정을 부려도 우리는 웃으며 그녀를 바라볼수가 있고 어떻게 도와 줄것인가를 생각해 봅니다.

어떻게 계속 기쁠 수가 있느냐고요? 사람은 사랑이라는 탱크가 가득차면 기쁨탱크가 넘치고 그 에너지로 달릴 수가 있습니다.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주님의 사랑과 위로부터 부어주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우리의 귀에 확성기를 대고 말씀하시는 것 처럼 들려옵니다.

사52:7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하나님께서 우리의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말씀하십니다. 사실 “전도한다“ 이렇게 말하면 그리 실감이 나지 않는데 우리는 “좋은 소식” 즉 “기쁜 소식”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기쁜 소식”을 아는 사람의 얼굴에 기쁨이 없다니요? 우리는 기쁜 소식을 가지고 누군가에게 전할 때 목소리부터 흥분되고 달라집니다. 게다가 죽은 영혼이 살아나는 것을 보는 이 기쁨은 늘 신비를 느끼는 새로움에 우리를 기쁨의 탱크에 가득 차게 만들어줍니다.

우리가 달려갈수 있는데까지 이 “기쁜 소식”을 가지고 달려갈것입니다.

 

어제는 남편이 아주 놀라운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주례를 서준 사람들이 애기를 낳으면 소식을 전해 주는데 두 부부가 서로 한달 사이에 딸 아이를 낳았다고 합니다.  서로 모르는 사이인에 똑 같이 예원이 (예수님이 원하는 사람) 이 된다는 뜻으로 그렇게 지었다고 합니다.  그런 소식들은 또 우리에게 기쁨 탱크에 기쁨을 채워줍니다.  직장에서 닭살부부 소문으로 주례를 부탁하곤 합니다.  자신들도  예수님이 호주 이기 때문에  가능한 닭살부부가 되고 싶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