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기뻐하라
한국 국민 중 다수가 우울증이라는 통계를 굳이 듣지 않아도 기뻐하는 사람을 보면 오히려 희귀한 사람을 보는것 같아 깜짝 놀라기에 거의다가 우울증이라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울증은 너무나 무서운 병으로 자살로 사람을 몰고 가기 때문에 기뻐하는 법을 배운다는 것은 우리의 인생을 행복하게 하는 비결입니다. 이것은 필요불가분한 수업입니다.
어제 오후에 주연이와 전화 통화를 했습니다. 주연이의 밝고 예쁜 목소리를 들으면 기쁨지수가 올라갑니다. 다섯 살 난 어린아이가 방언을 받고 기도를 그렇게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방언기도를 어떻게 하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주연이는 처음 전화를 받을 때도 “여보세요” 이렇게 받는 것이 아니고 “주연이네 집입니다.” 이렇게 시작을 했습니다. “귀여운것. 세례요한인가? 어찌 어린아이가 이런 다섯 살난 아이가 있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면서 물었습니다.
“주연아 너 방언기도 하는데 들어보고 싶다.”
“권사님, 저 방언기도 이민희집사님이 가르쳐 주었어요.” 저는 아이들이 보통 듣고서 랄랄라 하는 방언은 더러 하는것을 보아서 “그래, 주연아 한번 해 보렴” 그랬더니 방언기도를 하는데 그것은 랄랄라 수준이 아닌 천사의 아름다운 방언 같았습니다. 그렇게 천사방언을 하고 나더니 주연이는 멋쩍은듯 “하하하” 하면서 웃는것입니다. 얼마나 귀엽고 감동스럽고 또 신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조성숙집사님을 통하여 환경을 초월하는 기쁨과 그 엄마의 기도와 주의 교훈으로 자녀를 키우는 모습도 아름다웠습니다.
비 오는 날 어린 주연이가 방언기도 배우고 싶다고 해서 엄마하고 같이 이민희선생님이 한시간 반을 기도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토요일에도 주연이가 자기가 4 시에 집에 있다고 선생님에게 오라고 약속을 하여 낮에 종일 치과에서 일을 하고 요즈음은 집에 전혀 도우미 없이 가사일도 하는데 그 어린 아이를 위해 시간을 내서 그곳까지 간것입니다. 사실 그렇게 행할 때 기쁨이 저절로 우리 속에 채워지는 것이 아닐까요? 지극히 작은자 한테 한것이 곧 내게 한것이라고 주님이 말씀하셨기에 나의 모든 것 보다는 이웃사랑에 먼저 실천을 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점수가 어디서 득점을 얻을까요?
약2:17-18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혹이 가로되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왜 행복을 전수하는 강사가 자신은 행복하지 않을까요? 바로 입으로 하는 전수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 부부가 가장 존경하는 목사님은 북한을 다니시는 한목사님입니다. 이분이 유창한 설교를 잘해서는 절대 아닙니다. 식상할정도로 말씀이 좋은 사람은 보았습니다. 그러나 삽십여년동안 이분을 옆에서 지켜볼때 주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기에 진심으로 복한동포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고 그러기에 단 한번도 자신이 하는 일이 어렵다던 지 힘들다던 지 아니면 공로를 자랑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단 한가지 일괄적으로 똑같이 볼수 있는 모습이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섬기기에 언제나 즐겁고 기쁘다는 것입니다. 기쁘다는 것은 정말 주님을 좋아하고 이웃사랑을 진심으로 좋아한다는 증거입니다. 그분을 보면 언제나 첫사랑에 빠진 이십대 같습니다. 이미 칠십 중반이라 그렇게 호주에서 중국으로 북한으로 비행기 타는 것만도 힘든 나이인데 그렇게 어린아이 같이 순수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분에게는 겸손이 언제나 넘칩니다. 주님과 동행했기에 주님이 하셨기에 주님께 모든 영광을 돌려드릴줄 아는 겸손입니다.
삼위교회에 와서 십년이 되었습니다. 저가 홍콩에 있을 때는 정말 세상에서 잘났다는 사람들이 모인 교회였습니다. 그리고 말씀이 좋다는 곳도 은혜롭다는 곳도 다 찾아보았고 다녀보았습니다. 그런데 모든 것을 종합하여 저는 이곳이 너무나 좋습니다. 우선 다른 어느교회에서도 이렇게 외국인들을 품어 줄 수 있는 교회가 없다는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느 교회에서 그렇게 한 결같이 외국인을 위해 식사준비를 해 줄수 있을까요?
또한 저는 이곳에 행복했다고 말할수 있는 것이 저같은 사람이 조용히 한 자리에 있으므로 꼼짝 못하고 죽어가는 환자의 손목을 잡아주러 일년 반이상 그 집안에 위로하기 위하여 갈수 있었던 그 시간에 사실 유창한 어떤 지식이 있는 곳보다 많은 곳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아무와도 교제하지 않고 털어놓을수도 없는 고통이 있는 몇가정이 부족한 저의 손을 잡고 소망을 가지고 일어날 수 있었다면 (물론 이것도 저 혼자 한것은 아니고 홀리의 식구들이 같이 하였고 사실은 주님이 하셨습니다.) 저는 식사동 이 한곳에 있었던 것이 참으로 기쁘고 행복한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침묵”이라는 책을 보면 일본에 처음 신앙생활을 하고 나서 극심한 핍박으로 죽음과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난 이야기를 읽어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책의 결론은 핍박이나 어려움이 아니고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과의 싸움”이라고 결론을 짓습니다.
이제 저는 60세 하고도 몇 년이 지나서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다가고 믿음을 지켰나니 라고 고백할 수 있는지를 되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제게는 어떤 후회도 없습니다. 그리고 주님으로 인하여 정말 행복하고 기뻤습니다. 다만 죄를 짓는것만 후회스럽고 마음이 아플뿐입니다.
어떻게 전도를 끊임없이 할수 있느냐고요?
“그리스도인이란 자신이 가장 행복하다고 느끼기에 그 행복을 전하는 것이다.” 이것이 결론입니다. 당신이 기쁨이 넘치지 않는다면 기뻐하는 법을 반드시 배워야 합니다. 그래야 수많은 죽음의 길을 택하여 목숨을 끊고 TV 에 십자가 걸려있는 빈소에 자살이라는 그것이 인간이 택하는 길이라는 것인양 보여주는 것이 아니고 김활란 여사가 말한 것 처럼 “내가 죽거던 장송곡을 부르지 말고 승리의 찬가를 불러다오” 이렇게 외칠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