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 어떻게 사랑해야 하나?
우리는 마태복음 10 장 37 절의 말씀에 부모나 아들딸을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합당하지 않다는 말씀을 가지고 마치 부모나 자식은 사랑하는 것이 우상숭배이며 해서는 안되는 것으로 잘못 해석하는 것을 종종 듣는다. 성경전체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뜻을 알아야 그 해석이 정확하게 할 수가 있으며 오류를 범하지 않게 된다.
마10:37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이 말씀은 하나님을 제일 먼저 사랑하고 그 안에서 가족을 사랑하라는 뜻이지 가족을 내 팽개치고 하나님일하라는 뜻이 아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주님의 제자라는것을 사람들이 알게 된다는 말씀때로 자신의 가족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누구를 사랑한다는 말인가? 흔히 “내가 하나님 일을 하면 너무 중요한 일을 하고 있기에 다른 것은 신경 쓰는 것은 아니다” 라고 잘못 오류를 범하게 된다. 만약 부모를 사랑하는 것은 아니고 하나님만 사랑한다고 해석한다면 왜 십계명 중에 부모를 공경하고 자녀는 노엽게 하지 말고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하였을까?
엡6:2-4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지극히 작은 자 하나도 실족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말씀에 가족도 실족하게 하는것이 아니라는 것을 묵상해 본적이 있는가?
마18:6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리라
서양 선교사들은 몇 대에 걸쳐 선교의 사역을 감당한 것을 기록을 통하여 보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왜 이대를 있기도 힘들 을까? 똑 같은 상황에서도 우리나라 그리스도인같이 가족을 소홀히 생각하지도 실족시키지도 그들은 하지 않을뿐더러 부부관계나 자녀관계를 “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 는 말씀에 가족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실천한다. 그러기에 그들은 어려운 상황에도 사랑으로 모든 것을 이기고 그 길이 아름다운 주님과 동행한다는 것을 바라보았고 자신도 부모에게서 배운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가문을 있는 자가 되는 것이다.
부부관계
새벽이면 나는 남편을 기도로 잠을 깨운다. 새벽기도를 마치고 일찍 출근을 해야 하는 남편의 손을 붙잡고 새로운 에너지를 전달해 주는 기도를 해 준다. 그러면 마치 사랑이라는 에너지로 하루를 달려 나갈 수 있는 사람처럼 일어나 출근을 한다. 나의 생일날 꽃바구니를 사서 리본에다가 “나의 생애의 최고의 선물은 당신” 이렇게 쓴 것을 배달시킨 것을 보고 며느리와 사위가 “어머니 아버지는 닭살 부부예요” 라고 웃는다. 사위는 덧붙여서 “두 분이 사이가 좋은 것을 보면 우리는 희망을 가져요. 우리 도 나이를 먹은 후에도 사이좋게 지낼 수 있다는 희망 이 있어요.” 우리 딸은 “엄마는 지금도 아빠가 0 순위로 가장 사랑하는 순위예요” 라고 한다.
보통 사람들이 우리 집을 방문하면 들어와 보기 전에는 내가 선교에 전심을 다하는 사람이기에 집안은 대출 상관하지 않고 사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렇게 행동을 한다면 나혼자 만의 열정으로 우리 가족 모두에게 예수님에 대한 열정이 사라지게 된다는 사실을 너무나 주위에서 많이 보아왔다. 아침에 남편이 출근을 할 때 무엇을 부탁한다고 하면 나는 낮에 너무나 해야 할 일이 많아서 잊어버릴 확률이 많기 때문에 그렇지 않기 위하여 제일 먼저 하려고 노력한다. 식탁을 준비할 때도 거창한 음식을 준비하는 것은 아니지만 좋아하는 음식을 성의를 보이려고 애쓴다.
남편도 종일 바쁜 업무와 회의가 연속이기에 급한 일이 아니면 전화를 삼가지만 간간히 문자로 격려하고 칭찬하는 일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며 서로가 무엇을 하고 어떤 일이 있는지를 대화를 잘 나눈다. 처음 대학교 1 학년때 만나서 43 년이 지났지만 그때보다 더 날이 갈수록 깊고 친밀해 지는 것이 주님이 호주가 되시는 우리 가정의 특징이다. 우리는 그때 사용하던 호칭을 지금도 둘이 있을때는 그대로 쓴다.
24 년 선교를 하는 동안 단 한 번도 남편은 제동을 걸거나 불평을 한적이 없고 기쁘게 선교의 후원을 해 주며 주일에는 같이 이 사역을 하고 있다. 남편이 없었다면 이 선교를 이렇게 할 수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 딸이 이런 말을 해 준다. “엄마, 아빠는 엄마를 위해서라면 그 무엇도 아깝지 않데.” 정말 감사할뿐이다.
자녀들
아들 한명, 딸 한명이었는데 이제는 둘 다 결혼하여 며느리와 사위 그리고 손자가 2 명 외손녀가 1 명이 되었다. 때때는 온 가족이 우리 집에 모여서 같이 먹고 자고 하명 방마다 꽉 차서 대가족이 “가정 생활 세미나”를 한다. 함께 기도하고 성경공부를 하고 모든 것을 서로 나누고 우리가 또 섬기고 나누어야 할 이웃에게 기쁘게 나눔을 한다.
자녀들이 어릴 때 매일 성경이야기 동화를 들려주고 우리는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아주 어릴 때부터 바쁜 나의 시간들 중에서 자녀들에게 아들은 아들대로 딸은 딸대로 나의 소중한 하나님의 사랑의 선물이라는 것을 늘 이야기 해 주었다. 지금은 삼십대가 되어 버렸지만 지금도 하루일과 중에 하나가 매일 메일을 보낸다. 나는 메일을 쓸때 “나의 사랑하는 아들에게” 이렇게 시작하던지 “나의 소중한 아들에게” 딸은 또 딸대로 그렇게 시작하며 “많이 사랑해”라는 말로 마친다. 결혼을 해서 다른 부모들이 자식이 멀리 떠난 것 같이 서먹해졌다고 하소연 하는데 홍콩에서 사는 딸의 가족은 해외에 있기에 그렇지만 아들은 일주일에 한번은 서로 꼭 만나고 며느리와 같이 기도시간을 갖기도 한다. 우리 딸이 애기를 낳고 우리집에 와서 약 6 개월을 같이 살 때 매일 외손녀를 데리고 잤다. 처음 애기를 데리고 밤에 잠을 깨고 제대로 자지 못하고 낮에 활동을 할수 있을까 생각을 하겠지만 애기에게 신앙의 유산을 물려줄 수 있는 귀한 시간이라고 생각하니 잘 감당할 수가 있었다.
어떤 선교사님이 자녀와 같이 지내지 못하고 멀리 떨어져 공부를 시킬 때 이런 질문을 했다
“부모님이 남을 위해서 좋은 일을 한다고 할때 우리가 얼마나 힘들게 사는지 우리의 고통을 아세요?” 주위에서 교회의 중진의 자녀들이 신앙이 별로 없는것을 종종 보는데 그것은 부모의 잘못이라고 본다.
나는 나로 인하여 자녀들이 예수님에게 관심이 없어지고 멀어지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 자녀들에게도 이제는 손자들에게도 각자 자신이 가장 사랑받는 존재라는 것을 느끼게 해 주려고 노력을 한다. 다섯 살 난 제민이 세 살 난 제윤이 그리고 육 개월 된 민서...“누가 제일 예뻐?” 혹은 “ 자녀 키울 때랑 손자하고 누가 더 예뻐요?” 그럴 때 이렇게 대답을 한다.
“자녀를 키울 때는 자녀가 너무 소중해서 예뻤고 손자는 또 손자대로 너무 예뻐서 똑 같아요. 세명 손자는 제민 이는 첫 손자라 제일 예쁘고 둘째 제윤이는 막내라 또 예쁘고 그리고 새로 외손녀 민서는 아들 손자만 있는데 손녀가 태어나니까 또 예쁘고 다 예쁘네요.”
세 살, 6 개월 된 애기는 말을 충분히 잘 못하니까 충분한 대화가 되지 않는데 다섯 살 난 제민 이는 전화를 해서 내가 먼저 이렇게 말한다. “세상에서 제일 예쁜 우리 제민이예요?” 그러면 “맞아요.” 라고 대답하는 것이 너무 귀엽다.
며느리를 얻기 전에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부간에는 갈등을 느끼는데 그것은 필연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겪는 일인가? 해 보지 않고는 대답할 수가 없었는데 막상 며느리를 얻고 나서는 예수 안에서는 세상 사람들이 걸어가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고부지간이 아닌 아주 친밀한 관계가 주님 안에서 가능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 연고로 둘째 아기를 낳을 때 첫째 손자를 두달 동안 내게 맡아 줄 것을 부탁하여 기꺼이 맡아서 우리 집에서 아기와 함께 지낼 수 있는 귀한 시간을 가졌다.
사위도 딸이 산휴기간중에 같이 지날 때도 서로 편안하게 지낼 수가 있어서 한명의 딸과 한명의 아들을 각각 입양했다고 남편에게 말하면서 웃었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주님이 그곳에 계시기에 가정은 작은 천국이 된다.
어릴 때부터 배우는 진실하고 충성된 청지기의 교육
모든 부모들은 자식을 최고의 학문을 통하여 최고의 직장을 갖고 그것이 가장 성공한것인양생각 한다. 더 직접적으로 쉽게 말하면 돈을 어떻게 해서라도 잘 벌어야 한다고 가르치지만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으며 우리는 지혜롭고 충성된 청지기의 삶을 살아야 하고 하나님이 그것을 기뻐하신다는 교육은 소훌히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한 사람을 간절하게 찾으시는 것을 성경을 읽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마24:45-47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냐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의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기리라
현대인들은 모두 돈에 노예가 되어 있기 때문에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하나님의 모든 소유를 맡을 수 있는 청지기는 하루아침에 결심을 했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알기 때문에 우리 아이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그런 교육과 실천하는 것을 가정에서 배우게 했다. 보통 어릴 때부터 부모가 예수를 믿으면 교회갈 때 엄마가 주는 헌금을 가지고 가면 되지만 그렇게 하면 자신이 해 보는 것이 아니기에 우리 아이들은 어릴 때 마른 빨래를 개놓는 일을 한다든지 청소기를 돌린다던지 하면 100 원씩을 주고 첫 주에 받은 것은 모두헌금을 스스로 하도록 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꼭 나눔을 해야 할 곳이 있으면 아이들에게 그곳의 사정을 다 이야기 해주고 전체 우리가 도와야 할 액수에 아이들도 꼭 동참을 하도록 했기에 그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성년이 되어 직장을 가지고 돈을 벌 때는 자연스럽게 청지기의 자세로 돈을 사용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되어졌다. 그것을 배워보지 않은 사람들은 갑자기 그런 일을 하려면 마치 자기 돈을 낭비하는 기분이지만 우리 자녀들은 모든 것이 하나님 것이라는 것을 늘 배워와서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여려운 외국인을 돕는 일은 물론이고 한국 사람들도 도움이 필요한곳에 당연히 기꺼이 나눔을 하는것을 자발적으로 한다.
우리 시어머니라면 어떻게 할까?
어제 미국인 남편을 둔 김집사님이 자신의 시어머니를 이야기 해서 귀한 분의 이야기라 같이 나누고 싶다. “예수라면 어떻게 할것인가?” 라는 질문이 아니고 자신도 이제는 며느리를 얻고 시어머니가 되다 보니 전에 자신의 시어머니가 해 주시던 기억을 하며 그 시어머니를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처음 영어도 충분히 유창하지 않을 때 당신의 아들이 한국에 와서 한국인 여인과 결혼을 해서 나타났을 때 그 어머니의 따뜻한 보살핌은 잊을 수가 없다고 한다. 요즈음 국제 결혼이 우리나라도 많이 늘어서 며느리가 베트남, 필리핀, 러시아, 캄보디아 각지에서 얻는데 한국어도 충분하지 않는 며느리를 얻는 기분과 같지 않았을까?
어머니는 몇 년 전에 돌아가셨지만 사셨으면 93 세가 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그 연세에 대학을 나오신 인 테리면서 신앙인으로 교회에서 반주도 하셨다. 한편 초등학교가 학벌이 모두인 시아버지와 사랑을 해서 부모의 반대를 물리치고 결혼을 했다고 한다. 처음 결혼을 해서 시어머니가 집에 오신다고 하면 집전 체를 대청소를 하고 맞이하느라 상당히 부담이 되어서 “어머니 오시면 좋은데 청소하는 것 많이 부담 되요.” 이렇게 솔직하게 표현을 하는 며느리에게 “네가 건강한 만큼, 네가 행복한 만큼만 하렴.” 이렇게 대답을 하시더라는 것이다. 얼마나 성숙한 인격이 뭍어나는 말인지 모른다.
하루는 아들들과 대화를 나누는데 아버지가 막무가내 고집을 피우시더라는 것이다. 아들들 앞에서는 어머니는 잠잠히 아무 말없이 듣고만 있었다. 밤에 화장실을 가려고 층계를 내려와 그 방업을 지나는데 어머니가 조용히 “아까는 당신이 잘못된 것이지요.” 라고 부드럽게 이야기 하는 목소리를 들은 며느리는 순간 너무 놀라서 깊은 생각에 잠겼다고 한다.
처음 국제결혼을 해서 여러 가지 갈등으로 남편과 헤어질까 결심도 했던 시절에 그 어머니를 보고 “저런 어머니에게 교육을 받은 사람이면 무엇인가 다른 데가 있을 것이다 ” 생각하고 살다보니 삼십년이 지났고 아들, 딸은 모두 장성하여 또 가정을 이루게 되었다. 시댁에 가려면 미국에서 며칠씩 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해서 가면 그 후유증으로 변비가 생기는 며느리에게 온갖 음식을 변비에 좋은것을 해 주던 그 어머니를 추억하며 인생의 순간 순간 이럴때 우리 어머니라면 어떻게 했을까? 라고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좋은 부모, 그 부모의 사랑과 기도 보여주는 삶이 이 어두운 세상에서 그야말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할수 있는 가정을 이루고 또 하나의 열매를 맺게 되는것을 보며 가정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강조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