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뼈다귀들은 큰 군대로
겍 37:8-10 내가 또 보니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이나 그 속에 생기는 없더라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 하셨다 하라 37:10 이에 내가 그 명령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나서 일어나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
주위에 죽어 있는것 같은 수 많은 영혼들,마른 뼈다귀 같다고 하는 표현을 쓰면 가슴 아프지만 그 마름 뼈다귀가 생기가 들어가서 살아나 큰 군재가 되는 것을 생각하면 가슴 설레입니다.
우리 주위에는 너무나 마음아 상해있고 아픈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것이 한국의 현실이기 때문에 박 반이 되는 사람들이 가정이 깨어졌고 그 후유증으로 자녀들도 역시 많이 피해를 보고 있습니다. 설사 아직 깨어진 가정이 아니라고 해도 가족이 서로 사랑하며 화목한 가정이 오히려 희귀하게 되어버린 현실이야 사람들은 너무나 많이 가슴이 상해 있습니다. 지난 토요일 성경공부에는 그렇게 일찍 못 일어난다고 하는 여러분이 함께 참석을 하였습니다. 우리는 이 아픈 마음을 주님이 만져주시기를 바라며 “심장이식기도”를 하였습니다.
상대방의 마음을 그대로 느끼는 심장이식기도 만큼 닫혀진 영혼의 마음문을 여는 기도는 없습니다. 우리는 같이 애통하며 같이 아파하며 울었습니다. 그리고 일어나서 살아서 큰 군대가 되는 꿈을 꾸었습니다.
오늘은 새벽부터 송학식품에 말씀을 전하러 가면서 시작한 하루는 다시 가족생활세미나가 끝난 연고로 마음이 아픈 사람이 아닌 몸이 아픈 사람을 위한 기도를 하기 위해 강동구 까지 갔습니다. 그곳은 노인 요양병원으로 추리가 방문한 환자는 88 세의 대장암 환자입니다. 병원 중에서 가장 분위기가 무거운 곳은 바로 노인 요양병원입니다. 그곳은 병원이라기 보다 마치 죽음 대기소 같은 느낌을 줍니다.
마음이 상한 자나 육체가 아픈 사람들을 보면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게 됩니다. 언제 우리 아버지가 그러한 삶을 우리에게 디자인 하신 것일까요? 88 세의 그분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곳에 있는 모든 환자들도 소망이나 기쁨이나 그런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분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그 모든 고통을 지불하신 것입니다. 저는 눈물을 닦아주며 기도하면서 소망의 주님을 꼭 붙잡을것을 말씀드리고 왔습니다.
그러한 고통이 많은 갈급한 영혼들은 여기 저기 줄을 섰는데 같이 병원에 가기를 요청했던 그분이 들려주는 이야기도 많이 마음이 아팠습니다. 헌신예배에 오신 강사는 새벽 기도를 안나오는 사람들은 그 강사는 죽으라고 기도한다고 설교를 하더라는 것입니다. 정말 끔찍한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기도를 강조하신 성경말씀은 있어도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심자가의 고난을 당하신 주님이 기도하지 않는다고 죽으라고 기도했을까요? 그렇게 오도된 메시지를 전하니 참 수 많은 갈급한 영혼들이 어디서 쉽을 얻고 소생이 될수 있을까 안타까울 뿐입니다. “사람들이 겉이 멀쩡한것 같아도 속은 울고 다니는것을 전혀 모르는 것 같아요.” 그분이 자신도 울고 다닌적이 많다고 하며 그렇게 들려주는것입니다.
아무튼 주님 안에 있으면 마른 뼈다귀들은 살아나고 큰 군대가 되어 다른 뼈다귀들에게 생기를 불우주는 주님을 다시 증거하며 그 큰 군대의 행진이 있을 것을 믿습니다.
가족들이 집에 있기 때문에 그동안 찾아가지 못했던 여호수아 집에 가니 너무나 기뻐하며 다음 주부터는 일찍 샤워하고 제 차를 타고 꼭 교회에 가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성령의 역사인지 아닌지를 구별하는 가장 좋은 몇 가지가 있습니다.
처째, 성령은 지극히 작은 자까지 사랑하는 영이십니다. 그러기에 그러한 사랑이 없는 것은 성령의 역사가 아닙니다. 히나님은 사랑이시고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주님께 한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마25:40]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둘째, 성령은 자신을 높이지 않고 주님만을 높이기를 원합니다. 세례요한의 고백처럼 주님은 높아지고 자신은 낮아지기를 원합니다.
[요3:30]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셋째, 자신의 깊은 내면의 죄까지 깨닫게 하는 것이 성령의 역사인고로 겸손하게 만들지 교만하게 만들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