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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피니의 질문에 대한 답변 (죄와 회개)

마마킴||조회 6,710

찰스 피니의 질문에 대한 답변 (죄와 회개)

오늘 아침 토요성경공부에서는 우리는 전반적인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너무 방대해서 한편씩 찬찬히 제가 알고 있는 것을 시험지에 답변을 써 보았습니다. 너무 많은 양이라 한 주제씩 여기에 올려 보려고 합니다.

우리는 흔히 설교를 들을 때 눌 듣는 말씀이 우리의 죄를 위하여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말도 노상 들었습니다. 그러나 듣는 사람이나 전하는 사람 양쪽을 바라볼 때 전혀 어떤 감정이 없는 것을 봅니다. “죄와 사망의 법” 항상 죄와 사망은 함께 바늘과 실처럼 움직이는데 과연 우리는 죄가 어떤 의미를 주고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거의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주일날 교회에 다니고 약간의 헌금을 하면 자신은 예수를 믿는다고 고백합니다. 하지만 삶속에서 세상 사람과 전혀 다른바가 없는 것을 보게 됩니다. 주일날 대표 기도하는 사람은 “일주일도 하나님 뜻대로 살지 못했음을 용서 해 주십시요”라고 기도하지만 전혀 회개하는 태도는 아니라는 것을 불수가 있습니다. “세상을 사는 대는 그렇게 살수는 없어. 하나님 방법대로 정직하고 따라가다가는 돈도 벌수도 없고 이것은 죽은 다음에 천국의 이야기야” 라는 의식이 깔려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보고 성경은 마당뜰만 밣고 있지 진정한 하나님과 관계가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것을 알면 얼마나 억울할까요?

사1:12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죄를 짓고 사는 인생은 이미 살았다고 하나 죽어 있습니다. 죄는 하나님의 그 놀라운 자유함의 구원의 축복을 뺏어 갑니다. 우리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예를 들어 죄가 가져오는 사앙이라는 그 불행의 현장을 살펴보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문제를 상담해 보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하나같이 고백을 하는 것이 있습니다. 똑같이 죄인들의 본성에서 나오는 고백은 자신이 아주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모두 똑같이 하는 말이 “나의 남편은(아내는) 이러 이러한 나쁜 점이 얼마나 나를 괴롭히는지 몰라요. 자녀들도 똑 닮았어요” 그리고 상대방이 자신을 고통을 준다고 하는 모든 사람은 아무도 자신이 잘못이 있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행복의 기준이 세상의 무엇을 소유하면 행복해 진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죄인들의 본성에는 많은 것을 가질수록 더 가지고 싶은 욕망으로 결코 자족하거나 감사를 모르기에 그 마음에 평안은 영원히 존재 하지 않습니다.

하루는 와기와 대화를 나누기 위하여 같이 몇시간을 보냈습니다. 거의 9 년이라는 세월을 지내면서 그의 모든 환경을 잘 알고 있습니다. 역시 와기도 자신이 고통을 느끼는 것은 자신은 이러 이러 한데 가족은 저러 저러 하기 때문이라고 늘 같은 이야기입니다. 저는 그것이 자신의 문제라는 것을 가르쳐 주는데 여러 가지 예를 들어 설명했습니다. 요즈음은 그가 애통하며 간절히 자신이 새로워 져야 된다는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명품 핸드백이 오백개가 있다고 자랑하는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새로 보석을 바꾸거나 하면 제게 보여 주었습니다. 저는 명품 핸드백이 하나가 얼마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여인이 어느 날 자신의 고백을 하는데 자신은 하루에 크리넷스가 한통이 필요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돈이 많아서 딸이 둘이 있는데 작은 딸이 파티하고 놀때 사용하는 아파트를 사주었습니다. 어느날 그 딸이 그 아파트에서 뛰어 내려 자살을 했다는 고백을 하며 그 슬픔으로 하루에 한통씩 크리낵스로 눈물을 닦아 내며 산다는 것입니다.

어느 날은 중국어를 잘 배우기 위해 대만 사람들이 모여서 기도 하는곳을 갔습니다. 그곳에 여러사람이 있었는데 한 여인이 제 눈에 들어 왔습니다. 그 여인은 눈빛이 죽어가고 있는데 마치 에이즈 환자가 그런 모습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늘 잠을 못자서 수면제를 복용했는데 계속 장기 복용하다보니 더 이상 약이 듣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날 기도모임이 끝나고 다과를 나누는데 저가 그분에게 우리 집에 같이 가서 기도할 마음이 있냐고 하니 저를 금방 따라 왔습니다. 우리 집에서 같이 기도를 했고 그 날밤 편한 잠을 잤다고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후에 그분의 집을 가보니 그집은 홍콩에서 가장 실내 장식을 잘한 집으로 잡지에 실린 정말 화장실 구석 구석까지 잘 꾸며진 집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인간의 죄성에서 온다는 사실을 알면 우리는 죄에 대한 생각이 전혀 달라집니다. 죄는 우리를 감사하게 하지도 않게 할뿐더러 무정하며 오직 “나”라는 성안에 가쳐서 자신만 사랑하고 자신만 옳다고 하기에 어떤 것이 주어져도 지옥의 맛을 보게 하는 것입니다. 한데 더 불행한 것은 죄가 죄인지를 성령의 조명이 없으면 모르는 것입니다. 성경을 통해서 보겠습니다. 믿는 다고 자칭하고 헌신되었다고 하는 사람들도 “불신”이라는 죄를 가장 많이 짓고 있는 사실을 잘 모릅니다. 만일 정말 하나님을 신뢰하면 주님 말씀하신대로 기쁨이 늘 충만할것입니다.

1. 죄나 회개란 어떤 의미로 사용하는가?

그것은 단순히 죄에 대한 슬픔의 감정인가? 혹은 그것은 마음의 수동적 상태인가? 아니면 자발적 요소를 포함하는가? 만일 그것이 마음의 변화라면 어떤 점에서는 그러한가?

“죄”에 대한 나의 태도는 어떠한가?

예수님은 “죄”가 아버지의 집에 거하지 못하는 원인이 된다고 하셨다. 요한복음의 말씀을 살펴보면 죄를 지으면 아버지의 집에 거하지 못한다고 하셨다. 우리는 구원 받은 백성이면서 이 땅에서도 주님과 동행하기에 그곳은 천국이다. 그러나 죄는 우리를 죄의 종으로 만들고 자유함이 없다. 당신이 기분이 나쁘고 상대방의 단점이 보인다면 죄의 종이며 그것외에도 현재 많은것을 소유해도 늘 두려움과 의심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같은것에서 자유하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십자가에서 우리 죄값을 치루고 우리를 자유하게 하셨다.

요8:3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요8:35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요8:36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늘 기도의 응답을 받는 다윗은 우리가 죄악을 품으면 하나님이 기도를 듣지 않는다는 것과 떨며 범죄치 말라고 경고해 준다.

시66:18 내가 나의 마음에 죄악을 품었더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시4:4 너희는 떨며 범죄하지 말지어다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지어다 (셀라)

한데 불행한 것은 우리 죄인들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전혀 모른다. 오직 성령이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을 가르쳐 준다. 성령은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며 (요16: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회개하게 인도한다. 우리는 어리석게 자신이 지은 죄의 결과로 고통당하는것을 모르고 하나님을 원망한다. 그러나 성경을 자세히 묵상해 보자.

애3:39 살아 있는 사람은 자기 죄들 때문에 벌을 받나니 어찌 원망하랴

애3:40 우리가 스스로 우리의 행위들을 조사하고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애5:15 우리의 마음에는 기쁨이 그쳤고 우리의 춤은 변하여 슬픔이 되었사오며

애5:16 우리의 머리에서는 면류관이 떨어졌사오니 오호라 우리의 범죄 때문이니이다

우리가 우리 행위를 살펴보고 하나님께로 향할수 있게 하는 것도 성령의 역사이다.

겔11:19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영을 주며 그 몸에서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

겔11:20 내 율례를 따르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결론: 성령은 우리 깊은 내부까지 보여주며 돌같은 마음을 제거해 주고 회개할수 있도록 하시기에 우리의 죄를 입으로만 고백하는것이 아니고 성령의 조명으로 “죄를 가르쳐 주십시오. 성령님 도와 주십시오” 라고 기도하면 구원의 기쁨이 충만할것이다. 그것은 이론으로 아는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