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니나 할머니
예수님께서는 죄로 인하여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의 인간의 애환앞에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나인성 과부의 아들이 죽었을때도 그런 종류의 눈물이었습니다. 원래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셨을 때는 죽고 애통하고 아프고 그런 삶이 아니었고 하나님과 더불어 사는 인생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애환의 이야기들을 듣고 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눈물이 나는 이야기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위하여 중보기도를 할때 처음 만났는데도 불구하고 저가 눈물로 기도를 하다보면 옆에서 같이 있던 사람들도 눈물을 흘립니다.
김니나할머니는 70 세가 넘었고 카자스흐탄에서 왔습니다. 처음 선교회에 왔을 때 슬픔을 당하고 온 직후라 별로 얼굴에 웃음이 없었습니다. 김니나할머니는 고려인으로 두 딸이 있었습니다. 큰딸이 의사였고 신앙이 아주 좋았다고 합니다. 그 딸이 미국으로 건너갔고 둘째 딸은 한국으로 나왔습니다.
둘째 딸은 아주 이른 나이에 결혼을 해서 20 살에 나은 아들이 있습니다. 남편은 카자흐스탄 사람으로 백인얼굴을 하였으므로 아들은 백인의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곧 이혼을 하여 김니나 할머니는 그 손자를 애지중지 길렀습니다. 그 손자는 어느덧 대학을 갈 나이가 되었고 할머니 생각은 재혼한 둘째 딸과 한국에서 사는 것 보다는 그 손자를 첫째 딸이 있는 미국에서 공부를 시키고 싶었습니다. 할머니는 먼저 미국에 갔었는데 그만 그 신앙이 좋던 딸이 암으로 미국에서 세상을 떠나버렸습니다.
할머니는 큰 딸이 미국으로 가게 하기 위하여 카자흐스탄에 집과 모든 재산을 팔아서 그 딸에게 주었기에 가진 재산도 다 날린 후였고 남편도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애지중지 하는 손자의 엄마 둘째 딸은 한국에 와서 다른 카자흐스탄에서 온 남자와 결혼을 하여 이제 6 살난 딸이 있습니다. 할머니는 손자를 한국에 데리고 왔습니다. 미국으로 가는 길이 막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믿음을 다 버린 상태였습니다. 그렇게 하나님 믿은 딸이 세상을 떴기에 하나님 믿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손자는 처음 한국에 와서 엄마와 새아빠가 한 학기 등록금을 주어 연대에 입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비싼 등록금도 보통 부담이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출입국관리소에는 입학허가서가 있고 그렇게 등록금을 내어도 누군가 한국인이 보증을 서 주지 않으면 비자를 내주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박윤태집사님이 선뜻 보증인이 되주었습니다. 그렇게 학교를 입학하였습니다.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였지만 다른 문제가 또 따르기 시작하였습니다. 모든 것이 비싼 한국에서 새아빠가 번 돈은 제대로 돈을 받지 못해서 차비도 없고 공부를 계속 하기가 현실적으로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그런 연고로 주말에는 공장에 가서 일도 하였지만 차비나 한국에서 학생이 필요한 책값등 모든 것이 산 넘어 또 산이었습니다.
그 한 영혼을 살리기 위해 홀리네이션스 선교회에서는 그 손자를 장학생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 학생이 바로 이걸입니다. 하나님을 원망하고 하나님 없다고 하던 김니나 할머니는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조건 없는 사랑을 보고 하나님께 다시 감사하고 며칠 전에는 제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감사라는 것을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없어요.” 한국어가 어눌해서 잘 표현을 못하지만 손주사랑하는 할머니의 마음이 하나님께 감사하는 그것을 보고 참 감사했습니다.
이걸이 한 영혼을 통하여 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기를 기도하며 김니나할머니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찬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