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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버지의 사랑으로

마마킴||조회 7,321

그 아버지의 사랑으로

성환이의 간증에서 아버지에 관하여 더 자세히 써 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성환이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좀더 자세히 기록하였습니다. 저가 처음에 조집사님과 친밀하게 된 이유는 집사님의 유별난 아들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삼위교회에 온지 9 년전 어느날 아들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40 이 넘어서 낳은 그 아들로 인하여 살아야 겠다는 생의 애착을 느꼈다고 하시며 그 아들에게 특별한 맛있는 것을 해 주기 위하여 손수 음식을 만들어 주신다는것입니다. 그 말씀에 너무 감동스러워 나도 그 사랑하는 아들에게 같이 맛있는것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조집사님과 친밀한 관계가 된것입니다.

간증 중에서 200 만원을 모아 대학 입시 준비하는 아들에게 돈을 건네주는 아버지의 마음을 읽었고 그 아들이 모든 자랑이며 감사의 조건이었습니다. 다음의 글은 성환이가 보내온 아버지에 관한 간증입니다.

아버지는 어렸을 때 사고로 허리를 크게 다치셨습니다. 그 당시에는 치료도 제대로 받을 수 없었기에 몇 년간 허리상처에서 나오는 피고름을 짜며 누워계실 수 밖에 없었습니다. 허리를 다치셨기에 걷지도 못하시고 상처가 너무 심해 의사도 몇 년을 넘기지 못하고 죽을 것이라 했었습니다.

몇 년 간을 침대에 누워 계시다가 다행히 다리 신경도 돌아오고 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허리는 그 때의 사고로 큰 구멍의 상처가 생기셨고 허리 모양도 굽어져 버렸습니다. 그 당시에는 너무도 가난했던 시기였기에 아버지를 포함한 6형제 모두를 교육시킬 수 없었습니다.

자연히 장애를 입은 아버지는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체 초등학교만을 간신히 졸업하시고 장사를 하며 집안 살림에 보탬이 되었어야만 했습니다. 1950년대 너무도 힘든 시기에 불편한 몸을 가지고 오직 살기 위해 돈을 버셔야만 했던 아버지의 고생은 말로 다 표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많이 선진화된 지금도 장애를 입은 체 돈을 버는 것이 어려운데 복지 혜택도 없던 그 당시에는 오죽 하셨을까요. 이일 저일 가리지 않고 하시다가 50이 되실 무렵 몸에 이상이 생겼습니다. 장애로 인해 내부 장기도 보통 사람보다 훨씬 작고 혈액 순환도 제대로 되지 않아서인지 만성 두통을 겪으셔야 했던 겁니다. 이 병원 저 병원 다 가 봐도 뚜렷한 치료법을 찾지 못한 체 암 환자들이 먹는 마약 성분의 독한 두통약을 매일 먹으며 보내셔야만 했습니다.

아버지는 일을 하실 수 없었기에 저희 집 생계는 어머니가 맡게 되셨습니다.

아버지가 평생을 일해서 모은 이천만원도 지인들에게 떼먹히고 어머니가 파출부나 청소부 등의 일을 하시며 간신히 생계를 유지했기에 생활이 무척이나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사랑은 오늘 날 성환이가 있게 만들어 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