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행복을 주는가? 희생하게 하는가?
자녀에게 하는 대화중에 “엄마는 힘들어 죽겠다” “아빠는 너희 때문에 고생한다. “내가 어떻게 키웠는지 아니? 오직 너희만 바라보고 키웠다” 라는 식으로 말합니다. 그 말을 듣고 있는 자녀는 마치 자신이 부모의 행복을 앗아가고 힘들게 하는 존재이고 희생하게 만드는 사람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그 반대로 대화를 하면 자녀는 너무나 밝게 자라납니다. 우리 자녀가 어릴 때 “엄마는 얼마만큼 사랑하지?” 이렇게 질문을 하면 “눈”을 가르치며 대답하곤 했습니다. 그 뜻은 엄마는 너를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만큼 사랑한단다. 라고 이야기 해 주었더니 그것을 길게 말하지 못하고 “눈”을 가르치곤 했습니다. 사실 자녀는 우리에게 많은 행복을 줍니다. 아기가 신생아에서 눈을 맞추기 시작하고 옹아리를 시작하면 그 모습에서 우리에게 행복을 주고 온갖 재롱을 부리면서 우리를 많이 웃게 만들어 줍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주신 자녀에게 우리가 청지기로써 마치 자녀 때문에 희생을 하는 것 같은 인식을 심어 주는 것은 자녀의 밝은 성격에 어두움을 주는 말입니다.
대화를 많이 하는 만큼 자녀를 많이 알 수가 있고 쉽게 문제를 풀어 나갈 수가 있습니다. 어릴 때 아무 옷이나 엄마가 사준 옷을 입다가 중학교 들어가니까 다른 친구들이 유명 브랜드 옷을 입은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 아들은 운동을 좋아해서 야구 배구 등을 했는데 자신의 바지가 떨어지면 그 옷이 유명 브랜드를 엄마가 사주지 않아서 그런가 하고 하루는 질문을 했습니다. 그럴 때 충분히 납득이 가지 않으면 자녀는 쉬지 않고 조를 것입니다. 아들에게 한국 사극을 떠오르게 하면서 집안에서 주인이 부르면 “예이” 하면서 청지기 노릇을 하는 사람이 그 집안 살림을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하는지 주인의 뜻대로 하는지 같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아들은 드라마 장면을 연상하면서 “주인 뜻대로 하지요” 라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그것을 비유하면서 우리도 하나님이 맡겨준 물질이기에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며 낭비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하니 그 다음에는 그런 것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어렸을 때 일본 장난감을 외국에서 살면서 사달라고 할 때도 일본 것을 자꾸 사면 일본은 부자되고 우리는 가난해 지는 것이라고 하니 다시 사달라고 떼쓰지 않았습니다.
우리 딸은 학교에서 다른 친구 들이 용돈을 자신보다 더 많이 쓰면서 불평하는 것을 보고 자신은 그만큼만 있어도 좋겠다 셍긱히고 집에 와서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는 소말리아나 아프리카 제삼세계의 이야기를 해주며 자족이라는 것에 관하여 이야기 해주며 진주 목걸이 동화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딸은 그 대화를 듣고 “어느 날의 생각” 이라는 글을 써서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세상에 많이 있다는 것을 배운 이야기를 써서 학교에 신문에 그 글이 실렸습니다.
충분한 납득 가는 이야기들을 늘 나누어 버릇하면 아이들은 이해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납득이 가지 않으면 아이들은 계속 떼를 쓰고 요구하게 됩니다. 사실 집안이 천국인지 아니면 지옥인지는 그 가족이 쓰는 언어에 달려 있습니다.
계속 일방적으로 엄마가 강요만하고 잔소리하고 공부하라고만 하면서 아이들의 전인격은 신경 쓰지 않는다면 성인이 되었을 때 한국부모처럼 자녀를 많이 만나지 못하는 부모가 없다는 통계에 당신도 끼게 될 것이고 당신도 자녀의 얼굴을 명절에나 간신히 볼까 평소에는 볼 수도 없으며 서로 할 대화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 가족은 한국에 살고 있는 아들가족과는 일주일에 한번 아주 바쁜 경우에는 한 달에 두 반 정도는 서로 만나고 있습니다. 저는 매일 아들에게 지금도 메일을 보내고 있고 딸은 홍콩에 살지만 매일 메일을 보내고 전화도 하루에 한번은 통화를 합니다. 지금은 애기하고 같이 지내고 있지만 다시 홍콩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저희 남편은 하루에 바쁜 때는 15 번 회의를 한 적도 있으며 평균 8 번은 회의를 하기에 많이 바쁘지만 여전히 부부지간에 아주 사소한 것도 나눕니다. 오늘아침에는 세권의 책을 다시 저가 구입하면서 문자를 보냈습니다. “당신 덕분에 책을 늘 마음대로 불수가 있어서 영의 양식이 풍성함을 인하여 감사해요. 꾸뻑” 이렇게 문자를 보내니 “천만예요. 여건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 이렇게 답이 왔습니다.
오늘 아침에 아들에게 보낸 메일에도 아들에게 대한 감사와 하나님의 말씀을 같이 나누었습니다. 저가 감사의 글을 보내면 아들도 감사 하는 언어를 너무나 쉽게 사용합니다. 아들집에 가면 “엄마가 먼데까지 와주셔서 감사해요” 라고 자연스럽게 말을 합니다.
어떤 엄마가 자신의 자녀에게 배신감을 느낀다고 하며 엄마에게 감사할 줄을 모른다고 늘 폭언을 사용하는 것을 듣습니다. 아들은 자신이 모처럼 아르바이트를 해서 어버이날 카네손을 사드렸더니 감사나 칭찬은 한마디도 하지 않아서 다음부터는 하기도 싫어졌다고 제게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모르는 엄마는 자신은 희생했는데 그렇다고 투덜거립니다. 언어는 메아리치기에 당신이 사용하는 언어가 그대로 돌아올 것입니다.
자녀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며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탁하신 하나님의 자녀이기도 합니다. 자녀를 잘 돌보는 것이 선교의 일번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