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맞춘 대화의 힘
자녀가 자신감 있고 책임감을 가지고 밝은 모습으로 살아가기를 원한다면 여러 가지의 사교육 대신에 매일 부모와 눈 맞추는 대화의 시간을 통하여 “사랑의 씨”를 심어주고 물을 주듯이 끊임없이 자녀를 북돋아주며 세워주는 시간을 가지면 아이는 그렇게 자라납니다. 자신의 의사와 선택과 재능에 상관없이 강제로 끌려가는 사교육시간의 스케쥴 속에서 자라나는 아이는 전혀 창의성도 없고 공부에 의욕을 잃을 뿐 아니라 강제로 시키는 엄마가 아주 싫어집니다. 우리는 아이가 자신의 의사를 말하려고 하면 “말대꾸한다” 라고 말하며 아이에게 거절감과 수치심을 키워주는 말을 하면서 그 열매가 어떻게 되어질것을 생각하지 못합니다.
책 제목에 이런 제목을 보았습니다. “보복당하는 부모 존졍 받는 부모” 그 제목만 보아도 섬뜩해 지는 느낌입니다. 아기가 이 세상에 태어난 지 얼마 후에 혼자 있는 것이 무섭고 따뜻한 품안에서 안기고 싶을 때 한국 사람들은 “아기가 손 탔다”라고 하면서 아기가 운다고 금방 안아주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면 아기는 울다가 지치고 자신이 거절당하는 느깸을 받으며 자라게 됩니다. 사실 안겨 있는 시간도 인생에 그리 많은 시간은 아닙니다. 아기는 저절로 자라서 안기는 것보다는 마음대로 돌아다니고 싶어 하는 시간이 곧 옵니다. 품에 안겨서 사랑받는 자신을 알아가며 자라나는 것은 참 중요합니다.
매일 눈 맞추는 대화를 나누면 자녀의 문제를 쉽게 풀어 나갈 수가 있습니다. 매일 시간을 늘여가면서 자녀의 생각과 고민과 고쳐야 할 부분들을 인격적인 대화를 통하여 해결해 나갈 수가 있습니다.
저가 여섯 살 정도였을 때 기억이 지금도 그 장면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들이 있습니다. 저는 혼자 한 구석에 서 있고 동네 아이들은 모두 한 패가 되어서 저를 놀렸습니다. 저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고 서 있는데 한 남자아이가 저 한 테로 오는 것입니다. 저는 그 남자아이에게 “너는 나하고 놀아 줄꺼지?” 하면서 기쁜 얼굴로 그 아이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있는데 그 아이는 저한테로 오더니 제 손에 들고 있는 무엇인가를 확 뺏어가니까 아이들은 모두 더 깔깔거리며 저를 신나게 놀렸던 장면입니다. 얼마나 마음이 상했으면 몇 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 장면이 보이는 것입니다. 그때 그런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털어놓을 상대가 있었고 어린 저를 안아주고 위로 해 주었다면 그 장면은 제 기억에 나쁜 기억으로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런 경험은 누구에게나 나름대로 있습니다.
우리 두 아이들이 어렸을 때도 그런 경험들은 동일하게 있었습니다. 우리 가족이 외국에서 살 때 저희 아들은 토요일이면 한국 학교에 가서 한국어를 배웠습니다. 그리고 그때 외국에 가서 처음 친구도 없을 때 한국 아이들을 만나는 유일한 시간은 아이들에게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저희 집 건너편에 몇 살 위인 여자아이가 살았는데 그 아버지는 외교관이라 이 나라 저 나라를 다니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면서 외국아이들에게 놀림을 당하기도 했던 그 여자아이는 저희 아들이 한국에서 새로 오니까 자기가 당했던 것을 그대로 해볼 대상이 생긴 것입니다. 같이 한국 학교에 가려고 가면 처음 외국에 가서 영어를 잘 못하는 저희 아들이 못 알아들을 것으로 간주하고 영어로 다른 아이들에게 저희 아들에게 머리에 이가 있으니까 같이 엘리베이터도 태워 주지 말고 놀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엘리베이터에 같이 타려고 하면 “너는 타면 안되”라고 하면 다른 아이들이 웃어대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처음 외국에 가서 적응해야 하는 시기에 8 살 난 아이에게는 큰 상처였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어떤 것도 엄마와 눈맞춘 대화를 해 왔기에 그런 자신의 고민을 엄마에게 이야기 했고 우리는 대화를 통하여 무슨 일이 있는지를 알게 되었고 그 아이들과 모두 잘 놀수 있도록 저는 해결을 하였습니다.
저희 딸은 학교에 처음 들어가니 학급에서 가장 공부를 못하던 미국 여자아이는 자신이 놀림을 받았던데 서 역시 놀릴 수 있는 대상이 들어와서 학교에 가면 그렇게 했습니다. 딸은 학교에 갔다 와서 그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의 속상한 이야기를 엄마에게 털어 놓았습니다. 저가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그래서 많이 속상했겠구나” 하면서 끌어 안아주니까 속상해 하던 딸은 거꾸로 “엄마 눈물 닦아 주께” 하면서 밝아졌고 학교에 가서 당당하게 대처할 수가 있었습니다.
여름에는 아이들과 같이 수영을 하면서 수영을 못할 서늘한 시간에는 롤러 스케이트를 타는 옆에서 그 외에 같이 산에도 가도 비오는날은 우산을 같이 쓰며 걸어가면서 하는 대화에 아이들은 너무나 즐거워 며 미주알 고주알 모든 이야기를 털어 놓았습니다. 초등하교 들어가면서 자신의 방에서 자지만 일주일에 한번은 온 가족이 같이 자는 날로 정하고 침대 대신 이불을 깔고 자면 아이들은 그렇게 즐거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도 그날이 오면 신나게 웃던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대화가 이어졌기에 지금 성인이 되어 각자 가정을 가진 시간에도 대화가 이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외공부시간 대신에 같이 앉아서 성경 이야기 해주고 듣고 스스로 하게끔 하여서 “여호와를 경외하는것이 지식의 근본”이라는 말슴을 암송하며 자라나게 하였습니다.
며칠 전에 우리 손자가 이사를 가서 다섯 살 난 아이가 유치원을 새로 옮겨 간 첫날 가방을 메고 눈물을 질금거리며 가더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아이에게는 그것이 큰 적응을 해야 하는 과제였을 것입니다. 그런 것은 아랑곳 앓고 아이의 인격은 별로 중요시 여기지 않고 부모가 행동한다면 나중에 왜 그렇게 자식에게 배신감을 느끼나 하면서 어버이날인데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다고 투덜거릴 시간이 올 것입니다. “눈 맞춘 대화”의 시간은 모든 것을 풀어주고 새로운 하나님의 피조물이 되게 해 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