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보기도의 신비
중보기도라는 주제를 가지고 쓴 책 중에서 리즈 하월즈의 중보기도 만큼 제 마음에 남는 책은 없습니다. 그의 기도는 오직 기도로만 한 도시를 변화 시켰고 아프리카 같은 곳에 선교사로 갔을때도 그는 승리했으며 전혀 돈이 없이도 기도로 대학도 설립하였습니다. 우리는 기도가 과연 얼마만큼 능력있는것인지를 더 깊이 배워야 하는것을 늘 느낍니다.
어제 교사 월례회때 대표 기도를 윤권사님이 하면서 웬디의 가족을 위해 중보기도를 했습니다. 이번 수요일에 한 달여 만에 엄마를 떠나 필리핀으로 가서 외할머니 손에 커야 하는 애기를 기도하며 눈물이 나와서 억제하지 못하는 권사님을 옆에서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애기의 임신중에 입덫이 심해서 쓰려졌던 웬디를 데리고 병원에 가서 영양 주사를 맞춰 주고 애기가 태어난 후 조리원에서 시간을 보낸 후에는 권사님이 웬디집에 가서 목욕도 시켜 주고 신빙엄마 아빠이렇게 손을 잡고 기도 해줄 때 마다 눈물바다였다고 합니다. 그런 사랑의 과정 가운데 다른 사람들이 “아휴 애기가 안됬어 쯧쯧” 하는 정도라고 하면 그 영혼을 생각하고 사랑하는 마음에 진정 눈물이 그렇게 나는 것입니다.
지난주부터 우리 기도 팀은 한 사람이 두명의 학생을 토요성경공부를 마치고 기도시간에 중보기도를 담당하기로 했습니다. 저는 지미와 보레이를 맡았습니다. 한 시간 정도 하는 기도시간에 제 계획은 한 명당 30 분정도 하려고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원래 그렇게 가슴에 손을 얹고 기도 하기 전에도 지미는 이런 저런런 생각과 감정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막상 손을 대고 점점 그 영혼 깊은 속으로 들어갈 때 전혀 제가 생각한것과는 다른 세계를 맛보게 되었습니다.
마치 그 영혼 속에 외로움은 몇 % 두려움은 몇 % 주님을 믿고 싶지만 왜 안될까 라는 고통, 그리고 미래에 대한 그의 생각, 또한 진정한 사랑에 대한 목마름 등이 마치 MRI 좔영을 하듯이 제 마음으로 전이되는 것입니다. 처음 기도를 시작하면 별로 느끼지 못하는 영혼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여행을 하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를 향한 기도가 끝나지 않아서 보레이 기도는 별로 하지 못했습니다. 그의 고통과 마음이 전이 되자 그의 심정이 되어 애통하는 눈물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영혼을 향하여 주님의 마음이 느껴지고 찬송을 부르기 시작하자 지미도 같이 찬양을 하는 것입니다. 건성으로 하는 찬양이 아니고 정말 가슴으로 하는 찬양을 저와 함께 불렀습니다. 정말 신비한 체험을 영혼을 위해 기도할 때 마다 하게 됩니다. 전혀 일어설 것 같지 않던 영혼도 소생을 하고 다시 봄과 같은 새 희망을 갖는 것을 보곤 합니다. 오후에 지미가 제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감사 하다는 것보다 더 좋은 표현을 할 수가 없습니다. 마마킴.......” 그리고 어제 교회에서 만났을 때 그의 눈빛은 소생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제 예배 후에는 우리 교사들이 외국인들을 위하여 성령의 이끌리심에 가장 기도가 필요한 영혼들을 위하여 울어주는 기도 시간을 가졌습니다. 저는 교회에 오래간만에 나타난 모슬림 나라에서 온, 가장 나쁜 짓을 많이 하는 외국인에게 가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영혼이 불쌍해서 또 눈물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영혼은 빨려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어떤 죄도 도말하실 수 있는 것을 선포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롬8:1-2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우리는 이 기쁨의 소식을 전하기 위해 그 어두움에 있는 영혼들을 위하여 뼛속 깊이 사무친 죄로 인한 그들의 고통을 자유롭게 하기 위하여 울어야 할 것입니다. 차분히 한 영혼 깊은 곳으로 성령이 인도하신대로 들어가면 그곳에는 놀라운 세계가 펼쳐집니다.
폴브랜드는 늘 많은 것을 가르쳐 주는 의사선교사입니다. 그의 스승 의사선생님은 차거운 청진지로 사람을 진찰하지 말고 손을 항상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따뜻하게 유지했습니다. 환자를 진료할 때도 위에서 서서 내려다 보는 것이 아니고 무릎을 끓고 환자의 위치에서 따뜻한 손으로 느끼는 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러면 차가운 청진기로 진찰하는 것보다 더 환자들의 상태를 편안한 가운데서 알 수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손도 그렇게 그 영혼의 고통을 만질 수 있을 때 그 고통은 예수님의 피로 치유되고 사라지는 것을 볼수가 있습니다.
어제는 또한 최화전도사님의 송별예배와 웬디의 아들을 떠나보내는 기도와 영혼들을 위한 기도로 우리 모두 눈이 빨갛게 되었습니다. 성령만이 그런 마음을 갖게 하십니다. 더 깊이 영혼을 만지며 중보기도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그런 과정가운데서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게 됩니다. 아버지가 그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전이되기도 합니다. 그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해 고통당하신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게도 됩니다. “주님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