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훈련 - 성경과 우리의 행동(선행)
10 년전 한국교회는 너도 나도 외국인 노동자 선교를 시작했다. 몇 번 그런 선교회를 하는 선교사들과 같이 자리를 한적이 있다. 그들중 다수는 이런 의견을 말했다.
“외국인 노동자들을 상대하면서 그들의 문제나 뒤치다꺼리나 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 아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지 그런 사역을 하는 사람들인가?” 라고 했던 그런 단체는 거의다가 긴 시간이 걸리지 않고 선교회가 문을 닫던지 축소해 버렸다.
우리 선교회에서는 그들을 치료하고 쉼터를 운영하며 그들의 아픔과 고통을 같이 나눌 때 계속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그들에게 나타나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복음은 행동이 뒤따르는것이다. 그만큼 우리의 행위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던지 아니면 우리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이 모독되던지 둘중의 하나이다. 우리의 행동은 그만큼 중요하다.
[마5:16]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롬2:24]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로 인하여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
하나님의 진리는 오직 성령의 능력을 통해서만 균형을 유지할수 있다. 사람들이 실수 하는 부분은 “진리의 부정” 이라기보다는 “진리의 왜곡” 즉 진리의 일부를 다른 일부와 맞서게 하는 것이다. 신학의 역사는 이런 사실을 분명하고도 진지하게 설명해 준다. 한 세대의 사람들은 그 당시에 가장 필요한 진리의 한쭉 측면에 타당하게 그리고 열성적으로 동의 한다. 그 다음 세대는 이를 받아드려 발전시키는 대신 그것을 “자기네 편”의 두드러진 특징으로 옹호하여 싸운다. 그리고 보통은 공격의 대상이 되는 부분을 변호하는 과정에서 상대편에서 주장하는 균형을 이루는 진리에 대해 경청하기를 거부한다. 그 결과 그들은 올바른 안목을 잃고 자기들이 성경의 일부에 근거해 믿고 있는 것을 강조한다. 결국 다음 세대에 하나님의 참된 종이 부르심을 받고 나타나서는 그들의 그토록 소중하게 여겼던 것들을 무시하고 또한 그들이 전적으로 무시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것에 대해 거의 통찰력을 잃어버렸던 것을 강조한다.
가령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 은혜에 의한 선택과 복음의 보편적 선포, 바울의 이신칭의와 야고보의 이행칭의 교리 중 분명한 진리의 선을 긋기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 강조되는 곳에서 인간의 책임이 무시되는것은 너무도 흔하다. 그 결과 무조건적인 선택을 고집스럽게 주장하는 곳에서는 구원 받지 못한 사람들을 향한 자유로운 복음 전도가 소홀하게 취급되어 왔다. 반면에 인간의 책임이 강조되고 북음 전도 사역이 흥왕 하는 곳에서는 보통 하나님의 주권과 선택에 관한 진리가 소홀해지거나 전적으로 무시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기에 믿음과 선행의 정확한 관계를 설명하고자 할 때도 동일한 어려움에 부딪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한쪽에서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의로워지는 것이 어떤 행위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심각한 잘못이 된다. 그러나 다른 쪽에서는 천국에 이르기 위해서는 선행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부인하고 선행은 단지 우리의 칭의에 대한 증거나 열매에 불과 할분 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정통” 이라고 이름을 갖고 있는 진영세서는 선행이 그것에 합당한 자리를 받는 경우가 거의 없으며,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이 사도적인 열정을 품고서 선행을 하도록 하는 경우는 더욱 드물다.
그러나 성경에 말씀으로 돌아가보자. [딛3:8]이 말이 미쁘도다 원컨대 네가 이 여러 것에 대하여 굳세게 말하라 이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로 하여금 조심하여 선한 일을 힘쓰게 하려 함이라 이것은 아름다우며 사람들에게 유익하니라
“선행”이라는 표현은 신약에서 30 번이상이나 단수 혹은 북수 형태로 사용된다. 하지만 진전한 믿음을 지닌 것으로 알려진 설교자들도 이렇게 강조된 선행을 별로 강조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1. 성경을 통한 선행의 진정한 위치
값없이 거저 주시는 은혜이지만 거룩함이 없이는 아무도 하나님을 볼수가 없다 라고 성경은 또한 강조한다.
히12:14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성도가 천국에서 살아가는 삶은 그들이 거듭난 이후에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삶의 본성과 성취에 다름이 아니다. 만약 이 세상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없다면 하늘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 역시 없을 것이다. 시간 속에서 하나님과 진정한 교재를 나누지 않는다면, 영원 속에서 그분과의 교제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죽음은 아무런 변화를 일으키지 않는다. 죽눈 순간에 성도에게서 죄의 잔재가 영원히 떠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때 새로운 본성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만약 그가 죽지 전에 죄를 미워하지 않고 성결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죽은 다음에도 마찬가지이다.
지옥에 가기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필연적으로 지옥으로 이어지는 넓은 길을 기꺼이 포기하려는 사람도 거의 없다. 선행이 구원을 얻게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구원과 분리될 수 없다. 선행이 천국에 갈수 있는 자격을 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구원과 분리될수 없는 하나님이 정해준 가르침 중의 하나이다. 즉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성령의 역사, 우리의 회개, 믿음 순종등 중의 하나인 것은 사실이다.
2. 성경에서 가르쳐 주는 선행의 목적
선행은 우리의 행함을 통하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려는 것이라고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
마5: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착한행실은 사람들의 주의를 우리가 아니라 우리 안에서 선한 일을 하시는 하나님께 향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사람들에게 우리의 행위의 근원이 초자연적인 위로부터 나오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하려고 한다.
벧전2:12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은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한다 요 8:29” 에 말씀하셨다.
3 어떻게 우리는 착한 행실을 할 수가 있는가?
우리는 스스로 좋은 생각을 할수 없으며 선핸 행위를 할수 없다. .고후3:5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생각하여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나느니라
주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수 없다. 요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우리는 이렇게 기도해야 한다. 골1:10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