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리네이션스
칼럼 목록

한칸에 초가도 낙원이라

마마킴||조회 6,637

한칸에 초가도 낙원이라

1 사철에 봄바람 불어 잇고 하나님 아버지 모셨으니

믿음의 반석도 든든하다 우리 집 즐거운 동산이라

2 어버이 우리를 고이시고 동기를 사랑에 뭉쳐 있고

기쁨과 설움도 같이 하니 한 칸의 초가도 천국이라

3 아침과 저녁에 수고하여 다 같이 일하는 온 식구가

한상에 둘러서 먹고 마셔 여기가 우리의 낙원이라

(후렴)

고마와라 임마누엘 예수만 섬기는 우리 집

고마와라 임마누엘 복되고 즐거운 하루 하루

오늘 아침에는 이 찬양을 가슴속으로 불러 보았습니다. 임마누엘 주님이 함께 계시는 집안은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고 (어버이 우리를 고이시고) 그 사랑을 받고 자란 형제간은 동기들 사랑에 뭉쳐 있고 그 가족은 기쁨과 설음도 같이 하기에 비록 한칸의 초가도 천국이 되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가족의 모습입니다.

이러한 한칸의 초가도 천국이라고 고백하는 가족이 아니고 “부모는 자녀를 학대하고 동기들은 서로 원수지고” 상대방의 설음이나 고통은 아랑곳 없고 자신만 생각하는 지옥 같은 가족이 아닌 원수 집단 같은 모습을 보면서 정말 가슴이 아팠습니다.

몇가지 엄마들의 사례를 나누어 봅니다. 이들 모두가 강력한 내적 치유가 필요합니다. 이 사례는 저가 직접 목격한 일들입니다.

예 1)

이 여인은 아주 혀영심이 강한 여인이었습니다. 그 허영심을 채우기 위하여 그런 남자를 선택하여 결혼을 하였습니다. 한데 그 남자는 그녀가 바라는 대로 그 직책에 있으면서 돈을 번 것이 아니고 그 직장을 사임하였습니다. 그 다음부터 이 여인은 두 딸과 남편과 같이 자신이 생계를 이어 가야 했습니다. 평소에는 어린 딸들을 예뻐했습니다. 한데 다른 가정이 새 차를 구입했던지 아니면 자신이 입고 십은 명품 옷이나 물건을 샀다던 지 하면 6 살난 딸아이 에게 길에서도 폭행을 하며 화풀이를 했습니다. 계속 매를 맞던 어린 아이가 한번은 대나무가 많이 심겨 있는 길목에서 아이를 때렸는데 순간 자신을 방어하는 본능으로 나무 가지를 부러 트려서 그 엄마를 마구 때렸습니다. 이 여인은 놀라기도 하고 자신의 모습을 후다닥 놀라면서 아이를 끌어안고 울었지만 그 후에도 그런 일이 생기면 이성을 잃고 아이에게 깊게 상처 주는 일을 계속 했습니다.

예 2)

이 여인은 두 남자에게서 각각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 두 남자는 모두 이 여인을 배신하였고 세 번째 남자와 다시 결혼하여 세 번째 아이를 낳았습니다. 옆에서 볼때 이 여인은 첫째 둘째 아이를 바라볼 때 전에 자신을 배신한 그 남자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런 수많은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용서라는 것은 우리의 새로운 건강과 행복을 위해서 정말 필수입니다.

늘 아침에 아이들이 학교를 갈 때 밥을 해 준적이 없는 것을 옆에서 보았습니다. 아이들은 늘 배가 고팠고 그 아이들의 등을 만지면 정말 뼈에 가족을 입혀 놓은 것 같았습니다. 아이들이 학교 갔다 오면 우리가 가져다 준 쌀로 밥을 하는것을 시켰습니다. 둘째 아이는 배가 고파서 엄마의 지갑에서 돈을 꺼내서 요구르트를 사먹었습니다. 그 아이가 도둑질을 한다고 얼굴에 시퍼런 멍이 들도록 아이들 두들겨 패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가서 아이를 용서해 주라고 하니 이 여인은 그것을 가지고 우리에게 적개심을 품었습니다.

“아이가 도둑질 하는데 용서해요?” 모든 어린이들은 성장과정에서 그런 경험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 엄마의 교육이 사랑으로 고칠 수가 있는데 그 여인은 아이를 보육원으로 버렸습니다.

수 없는 사례를 옆에서 지켜보면서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려 보는 시간들입니다. 한 영혼에 어제 제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나는 왜 이 세상에 태어났을까요? 고통받기 위해 태어났을까요?” 그렇게 부르짖는 영혼도 가장 사랑해 주어야 할 가족에게서 받는 고통 때문에 그런 절규를 헌것입니다. 그 영혼의 고통 때문에 몇 주간 가슴에 망치질을 하는 고통이 밀려왔습니다.

창세기에서부터 성경을 읽어 내려가노라면 하나님을 떠난 모든 인간은 사랑하는 법을 전혀 모르는것을 봅니다. 첫 가정 가인과 아벨의 모습을 보아도 형이 동생을 죽이게 되는 끔찍한 이야기. 자신의 배가 아파서 진총을 하면서 낳은 두 아들 에서와 야곱을 편애하는 엄마. 야곱과 에서의 이야기는 동생을 사랑하는 엄마와 형을 사랑하는 아빠의 이야기 속에서 긴 고난의 시간들의 이야기가 전개 됩니다. 그리고 12 아들 사이에 시기 질투로 동생을 팔아버린 형들. 이런 이야기는 현대에도 이어지고 우리 주변에서 보는 이야기 들입니다.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는 이 주간에 그런 지옥 같은 우리 가족들이 다 같이 이 찬양을 부를수 있었으면 하는 소원입니다. “어버이 우리를 고이시고 동기들 사랑에 뭉쳐 있어 기쁨과 설음도 같이 하니 한칸의 초가도 천국이라” 그런 찬양을 할수 있는 사람은 오직 임마누엘 주님을 가족에 모시는 사람만이 가능합니다.

우리는 사랑을 다시 배워야 합니다. 누구를 사랑한다고요? 당신의 자녀를 위해 희생했다고요? 그것은 부모가 당연히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이 부모의 입장으로 자녀에게 무엇을 바란다고 하면 당신은 계속 상처 속에서 헤맬 것입니다. 사랑은 조건 없는 것이고 사랑은 오직 하나님께로 부터만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랑으로 우리 자녀를 끌어 안을 대 자녀들은 사랑을 배우고 동기간에 사랑하는 것을 할 수가 있을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