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모델 우리 주님
시16:11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생명의 길을 보여주시는 주님을 찬미합니다. 성령님은 전에 깨닫지 못하는 말씀의 진수를 깨닫게 함으로써 죄악으로 달려가는 우리의 본성을 제지시켜 주십니다. 그 생명의 길에는 충만한 기쁨이 주의 앞에 있으며 주의 오른 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어야 정상입니다. 만일 이 시간에 우리 안에 충만한 기쁨과 영원한 즐거움이 없다면 다시 죄에 끌러 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고백합니다.
오늘 아침에는 아침 준비를 하던 중에 주님의 가상 칠언 중에 한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눅23:34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그들이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
이 말씀을 수없이 설교를 들었고 또 읽었고 다 안다고 생각하는 말씀입니다. 한데 저는 오늘 아침에 이 말씀이 떠올랐을 때 저는 아는 것이 전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안다라고 하는 것은 그 말씀을 우리도 듣고 배우고 삶속에서 실천할 때 비로서 그 말씀의 의미를 깨닫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기 위하여 마태복음을 읽는 순서가 아닌데 마태복음 전체를 읽었습니다. 마태복음에도 마가복음에도 그 내용이 기록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성령의 의사 누가가 기록한 누가복음에 이 귀한 말씀을 기록한 것을 오늘 아침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두 가지를 더 성경을 통하여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마9:13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마12:7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긍휼을 원하시고 제사를 원하지 않는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고 하셨는데 저는 배웠는가? 자신에게 물었을 때 역시 배우지 못했다는 것을 대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못박는 그들을 용서해 달라고 그 고통가운데서 중보하시는 주님의 기도의 모범을 묵상하니 애통하는 눈물이 또 쏟아졌습니다. 요즈음은 애통하는 눈물을 자주 흘리게 됩니다.
우리의 중심을 꿰 뚫어 보시는 성령님은 말씀을 통하여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을 시켜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왜 오늘 아침에 주님의 기도가 떠오르게 되었는지는 제가 계속 질문을 마음속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어려운 모든 순간 가족의 생명을 구하는 도움을 받고 있는 어떤 외국인이 자기네 언어로 소통하는 사이트에 교회에서는 아무것도 도와주지 않는다는 글을 올렸다고 그 언어를 아는 분이 전하는 말을 듣고는 정말 그 영혼을 위하여 기도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런 연고로 계속 제 마음속에 질문을 하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외국인 내국인들을 선교회에서 돕고 그들을 주의 앞으로 이끌기를 원하는데 도움을 받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경우보다는 그것을 바라보는 옆에 있는 영혼들이 하나님께 돌라오는 경우가 더 많은 것을 목격합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 지르던 군중들도 예수님이 행하시는 기적을 목격한 수많은 사람들이 끼어 있을 것은 당연합니다. 다른 사람 아닌 수제자인 베드로도 세 번 부인할 때 강도가 한 단계씩 높아지는 것을 읽어보았습니다.
마26:70 베드로가 모든 사람 앞에서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겠노라 하며
마26:72 베드로가 맹세하고 또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더라
마26:74 그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이르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곧 닭이 울더
라
첫단계, 그냥 부인하고, 두 번째는 맹세하고 부인하고 세 번째는 저주하며 맹세하며 부인하는 예수님께 직접 성경을 배우고 기적을 목격한 수제자 베드로가 그럴진데 하물며 그냥 옆에서 기적을 보았다고 하여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것이 그들에게는 대수롭지 않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그들을 향하여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라는 중보기도를 하시는 주님은 우리가 그 값없는 은혜를 어찌 이해할 수가 있겠습니까?
예수님이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라고 기도한다면 우리도 끊임없이 어두운데서 해매는 영혼을 위해 중보기도를 하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명하신 것이라 생각하니 “측량할수 없는 은혜” 라는 의미가 우리 인간으로서는 할수 있는 언어가 전부일 것이라고 깨달었습니다.
하이디 베이커가 모잠비크에서 어린이들이 자신에게 맨토가 된다는 표현이 조금은 이해가 될것 같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얼마나 악하고 죄에 끌러 가는 죄인인 것을 잘 모르고 넘어가지만 선교현장에서 다른 사람들을 통하여 우리의 모습을 볼수 있기 때문에 진실로 우리의 맨토가 될 것입니다. 끊임없이 받고 또 받고도 교회에서는 아무것도 도와 주지 않는다고 글을 올린 영혼은 우리가 기도를 더 많이 해야 하는것입을 묵상해 보는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