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열쇠 -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
하나님을 경외 허자 않으면 우리는 어떤 기도 제목도 하나님께 상달되지 않는 것을 잘 생각하지 않습니다. 요셉은 자기 자신을 소개할 때 스스로 자신은 하나님을 경외 하는 자라고 소개 하였습니다.
창42:18 사흘 만에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노니 너희는 이같이 하여 생명을 보전하라
성경에 묘사하는 인물 중에 오바댜 라는 인물은 그냥 하나님을 경외 하는것이 아니고 지극히 경외 하는 자라고 그 인물의 특징을 기록하였습니다.
왕상18:3 아합이 왕궁 맡은 자 오바댜를 불렀으니 이 오바댜는 여호와를 지극히 경외하는 자라
성경에 나오는 한 인물이 하나님을 지극히 경외 하는 자라고 인정을 받는 것은 얼마나 영광입니까? 우리는 기도할 때 하나님 앞에서 말씀을 드리고 있다는 자세와 생각을 하고 기도를 시작하는지 한번 짚어보면 기도에 놀라운 새로운 세계가 열릴 것입니다.
우선 기도라는 개념 자체에서 여러 번 반복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소원 성취 통로가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예우를 하는 입장에서 얼마만큼 하나님 그분과의 교제를 기뻐하는지를 자신을 살펴보면 기도가 더 능력 있어질 것입니다. 우리는 외출을 할때 휴대폰을 잊고 나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시 집으로 들어가서 휴대폰을 챙기는 경우가 허다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과의 관계가 두절되는 것을 현대인들은 아주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잠시 휴대폰을 잊고 나옴으로 생기는 연락 두절을 두려워합니다.
한데 하나님과의 친밀한 연락은 어떻게 되는지를 한번 생각해 보면 우리의 기도가 왜 응답이 되지 않고 또 기도를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하나님을 서운하게 해 드리는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전에 어떤 분이 영국 여왕을 만난 이야기를 책에다 쓴 것을 읽었습니다. 왕실에 가기 전에 많은 주의 사항이 있었다고 쓰여 있었습니다. 그중 특이한 것은 여왕이 먼저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 방문객이 먼저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왕실의 예의 에 어긋난다는 것입니다. 그이유는 여왕을 예우하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에서 우리는 하나님께도 적용을 해 봅니다. 하나님께도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태도라고 봅니다. 먼저 청종하고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알고 우리의 언어를 시작해야 될 것입니다. 성경에는 조급한 언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가르쳐 줍니다.
[잠29:20]네가 언어에 조급한 사람을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바랄 것이 있느니라
기도회로 모이던 성경공부로 모이던 저는 항상 성경말씀 읽을 것을 매번 권합니다. 이제 우리 모임에 온지 두 달이 될까 말까 하는 유정자매는 즉시 순종하여 성경 일독을 한달반만에 마쳤습니다. 한데 교회에 오래 된 분들은 늘 같은 이야기를 반복합니다. “나는 읽어도 돌아서면 무슨 말인지 다 잊어버린다” 어떤 사람은 마태복음 1 장을 펴놓고 “누구는 누구를 낳고” 성경에는 이런 글만 있어서 머리가 아프다고. 언제가 반복되는 같은 이야기입니다.
성경말씀을 읽고 청종하지 않는 한 영원히 하나님의 말씀을 소홀히 여긴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말씀을 청종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그분을 무시한다는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그분의 뜻대로 구하는 모든 것을 들으시는데 왜 그런 감격이 없을까요? 우리가 영국 여왕을 만나러 왕실에 간다면 일생 일대 그날의 만남의 순간을 감격으로 가질 것입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사람과는 시간을 내는 것을 좋아하면서 하나님은 성경 절절이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는 나의 백성이 되기를 소원하는 말씀을 전혀 등한시 하고 경외하는 마음이 없이 요구만 하기 때문에 우리의 기도는 늘 어린아이 수준에서 벗어나지를 못할 것입니다. 우리도 요셉처럼 “나는 하나님을 경외한다”라는 고백을 당당하게 할수 있을까요? 한편 하나님이 우리를 평가할 때 “지극히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는 평점을 받을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