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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대일 사랑

마마킴||조회 7,096

일대일 사랑

제자 훈련이라는 말을 1986 년 처음 들었습니다. 제자 훈련을 어떻게 하는 것인지 모르기에 많은 책을 읽어보았습니다. 제가 그 말뜻을 충분히 알던 모르던 또한 앞에서 좋은 모범을 보여 주는 교사가 없는 가운데서 처음 제자 흔련 이라는 것을 홍콩대학에서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연이어서 대학부 청년부 새 신자부 장년부등 수 많은 대상들에게 이십여 년이 넘게 이 일을 해왔습니다. 처음 홍콩 대학에서 할 때는 CCC 영어로 된 교재를 가지고 했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성경공부를 많이 배우고 또 많이 준비해서 하면 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아주 열심히 공부를 배워서 다시 가르치는 일을 했습니다. 똑 같은 교재와 똑같은 것을 가지고 전해도 각자가 다른 반응을 보여 주었습니다. 처음에는 그것을 이해하기가 힘들었습니다.

또한 열심히 신앙이 올라가는 것 같은 사람이 어느 날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지는 것을 보면 그런 경우에도 왜 그런 것인지 잘 알수가 없었고 안타깝기만 했습니다. 저는 또 이렇게 저렇게 해야만 살수가 있다고 열심히 설명을 했습니다. 그런데 제게 이런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할 힘이 없거든요.” 저는 왜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적용하면 신앙이 자라는데 못하는 것일까 라고 생각하며 그 말뜻도 잘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 이십여 년이 지났고 이제는 셀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았고 성경의 말씀도 더 깊은 의미를 알게 되었으며 우리 인간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각자 살아온 환경과 기질과 여러 가지가 다르기 때문에 일괄적인 것으로 동일하게 반응을 하기기 불가능한 것을 저는 배웠습니다. 너무나 연약한 성품, 두려움이 많은 사람, 자존감을 전혀 느낄 수 없게 자라온 환경, 거절감, 수치감, 열등의식, 무기력함, 외로움 등으로 쌓여서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받은 상처는 하나님이 더 보이지 않게 만들며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지도 못합니다. 어떤 선교단체에서는 일대일 양육만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것을 보기도 합니다. 새 신자 십 단계 훈련이라는 과정을 공부해도 아니 그 이상을 배운다 하여도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가지는 사람은 드뭅니다. 대부분 이론 속에서 지식 속에서 갇혀 있는 하나님만 알뿐입니다.

놀라운 것은 이 모든 것을 뛰어넘는 사람들에게 특효를 주는 능력은 일대일 훈련이 아니고 “사랑”입니다. “사랑”은 국적을 뛰어 넘고 인종을 뛰어 넘으며 빈부나 교육에 상관없이 모든 영혼을 일깨워 주고 새롭게 만들어 줍니다. 사랑은 실패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영혼 깊숙한 곳까지 뚫고 들어갈 능력이 있습니다. 이 사랑을 느낄 때 한 영혼은 반응을 하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분의 말씀을 들어 보려는 귀와 열망이 생깁니다. 상처가 아주 심하면 더 많은 사랑으로 인내하며 한 영혼을 붙들어 주어야 합니다. 그것은 잠시 하는 정도가 아니고 한 영혼이 완전하게 살아날 때까지 몇 년이 걸려도 나아가야 하는 과정입니다. 이 과정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어떠한 사랑으로 자녀 삼으신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요한 일서 3 장 1 절의 말씀의 의미를 깨닫게 될것입니다.

[요일3:1]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

오늘도 우울증으로 아팠던 자매가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처음에는 좋은 것 같다가 다 떠나 버린 다구요. 그 결과 아무도 하나님을 보여 줄수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마음이 상한 영혼을 끌어 안을 수가 있습니다. 사랑만이 영혼을 살릴 수가 있으니까요. 그래서 일대일 양육이라는 말때신 일대일 사랑이라는 표현이 맞다고 생각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