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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쁘다 구주 여기 계시네(2)

마마킴||조회 7,344

기쁘다 구주 여기 계시네(2)

지용이가 깨닫고 하는 이야기는 정말 심오한 것을 성령이 깨닫게 하신 것을 봅니다. “권사님, 사람들은 누구를 돕는다고 할 때 한번 돈을 주면 돕는 것으로 아는데 그게 아니지요. 그것보다는 서로 만나고 대화를 나누며 그 사람을 알아 주는 게 더 중요하지요. 어디서 들은 이야긴데요 눈으로 보는 것보다는 손을 잡아주고 그 보다는 안아주는 것이 더 났다 라는것을 들었어요.”

저가 대답을 했습니다. “맞어. 지용아, 사람이 한번 먹고 살아나는 것 아니지.” 저가 지용이 손을 잡고 기도하니 지용이는 두 손으로 제손을 꼭 잡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마치 “내손을 놓지 말아 주세요” 라고 호소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기도가 끝나고 모든 사람들이 듣는데 전에는 목소리가 모기 소리만 하더니 자신이 한마디 해도 되느냐고 하면서 말을 이어가는 것입니다.

“저는 여기 처음 왔을때 사람들이 모두 방언으로 기도하는데 마치 느낌이 장터에서 사람들이 그냥 떠드는 소리 같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 방언기도가 바로 하나님께 성령 안에서 직접 말씀드린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하는 것입니다. 지용이도 이미 몇 달 전에 방언을 받아서 같이 방언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우울증으로 이곳에 오시는 다른 집사님도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집사님은 낯선 새로운 장소에 가는 것을 아주 꺼려하시는 분입니다. 대부분 우울증인 분들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우리 모임에 오면 아주 따뜻한 느낌을 받으셔서 매번 똑같은 김밥 먹는 것도 맛이 있으시다고 하십니다.

눅7:2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먹은 사람이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저는 이 말씀에 이런 깨달음을 받았습니다. 물론 육체적인 나음을 갖는 것도 너무나 멋있습니다. 저가 앞을 보지 못하며 못 걷는 사람이 걷는 것을 본 것은 이미 자신 안에 하나님이 주신 총명과 지혜가 있는데 보지도 못하고 다리는 온전한데 항상 제대로 걷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그 안에 임함으로 여지껏 “너는 바보야, 무엇을 할수 있니?” 라는 속임수에 그렇게 주저만 앉아 있었습니다. 입은 말할 수 있는 기능이 있지만 말을 하면 늘 겁과 두려움이 따랐습니다. 왜냐하면 한 번도 자신이 “존귀한 자”라는 하나님이 들려주시는 음성을 들어보지 못하게 귀가 막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자신이 얼마나 귀한 존재이면 그를 살리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주님이 대가를 지불한 귀한 영혼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셔서 드디어 귀가 열렸습니다. 앞을 보지 못하다가 보게 되었습니다. 꾸부정하게 걷던 걸음은 달릴 수가 있었습니다.

“맞어. 기쁘다 구주 여기 계시네. 나는 두렵지 않다. 나는 사랑받는 존재다. 나는 부족함이 없다. 나는 외롭지 않다. 늘 주님이 함께 계시는 것을 나는 안다. 보았다. 만졌다” 이렇게 외치는 것입니다. 그동안 자신의 깊은 쓴뿌리 상처 밑에 매장되었던 귀중한 자산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합니다.

주님, 맞어요. 저는 눈먼자가 저는자가 걷지 못하는자가 고침을 받는것을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런 현장에 불러주시다니요. 할렐루야!!!

우리 홀리의 여인들을 지칭할 때 “씩씩이 부대” 라고 해서 웃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기쁨이 부대”이기도 하지요. 아침마다 주님은 새 힘과 기쁨을 주십니다. 그 기쁨은 억눌려 있는자를 일으키는 주님을 전달할 수 있는 원천입니다.

[사55:1]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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