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지수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연인들도 경험에 의해서 무엇이 행복이고 불행인지를 알고 터득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불행인줄 알지만 여전히 세상 사람들이 가는 길로 끌려갑니다. 어느 교수님을 만났는데 그분이 한 이야기를 저희 남편이 나누어 주었습니다.
선진국 사람들이 행복지수가 절대적으로 낮은 이유가 수입이 늘면 거기에 맞게 지출을 하면 통계가 나오는데 사람들에게는 통계가 나올수 없는 또 다른 지수가 있다고 합니다. 그것이 바로 지출 옆에 붙어 다니는 “욕망지수” 라는 것입니다. 통제할수 없는 욕망지수 때문에 사람들은 영원히 만족하지 못하고 목마르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후진국 사람들은 아예 수입이 별로 없기 때문에 “욕망지수” 라는 것 자체가 없어서 더 행복지수가 높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도 부강해 지면 동일해 진다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삼십 년 동안 한국에 한 번도 나오지 않다가 한국에 나와 보니 경제 부흥과 더불어 가장 변한 것이 사람들이 그렇게 이기적으로 변해 있더라는 것입니다. 삼십 년전에 한국은 가난한 시절이기에 욕망지수가 지금보다 훨씬 낮았을 것입니다.
그러면 물질의 풍요가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일까요? 그것은 물질을 소유하려고 하기 때문에 오는 결과입니다. 물질을 더 많이 맡길수록 그 물질로 이웃사랑에 사용한다면 우리의 욕망지수는 존재 하지도 않을뿐더러 더불어 행복해 질것입니다.
지난 화요일에 26 년 동안 쓰던 옛날 자개장농이 저희 안방에서 사라지고 방도향선생님이 이사하면서 4 년 동안 사용했던 장농이 우리집 안방으로 들어왔습니다. 저가 그 장농을 받기 전에 저희 가족에게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혹시 제 계획을 알면 “새로 사지” 라고 할까봐 비밀로 한것입니다. 놀랍게도 장농을 한 번도 어떻게 생겼나 보러가지도 않고 받았는데 새로 산 것같이 아주 좋은 물건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온유하고 겸손하기로 늘 변함없는 분이 사용한 것이라 그 장롱에서도 그러한 냄새가 풍깁니다. 저는 아주 기쁜 미소를 지었습니다.
아침에 남편이 출근하자마자 저는 헌 장농의 옷을 모두 꺼내고 헌 장농을 밖으로 내 놓았습니다. 26 년이나 정이 들은 물건이 떠났습니다. 그리고 그 옷을 열심히 새 장농에 정리를 하고 있는데 보통 때보다 남편이 일찍 퇴근하였습니다. 안방에 벌어진 광경을 보고 “이게 어떻게 된 거야?” 하고 깜짝 놀라는 것입니다. 저가 웃기느라고 “모처럼 장농을 새로 샀지.” 라고 대답하니 오랜 세월동안 자기의 부인의 성격을 잘 알기에 믿기 어렵다는 표정이었습니다. “당신이 웬일로 아무 말도 없이 샀어?” 그래서 저가 방도향선생님것이라고 이야기 하니 처음에는 어안이 벙벙해서 놀라는 표정이었습니다.
그러나 곧 “장농이 정말 새것 같이 좋은데. 그러면 그렇지 당신이 살 리가 없지.”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며칠 장농 이야기 하며 웃는 것입니다. “그런데 농 생각하면 아주 웃겨.”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욕망지수”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물건 욕심이 없는 사람이 어디있어?” 라고 형님이 영국에 갔을때 이야기 하니까 “아니야 김권사는 정말 없어”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우리 집에 왔다가 장농이 바뀐 것을 보고 어떻게 치수가 맞느냐고 물으면서 저가 장농을 들여오기 전에 가서 한번 보았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너무 바뻐서 방도향선생님이 장농을 보러 오라고 했지만 갈 시간이 없을뿐더러 선생님의 취향이라면 저와 맞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사이즈가 안 맞으면? 하고 물었지만 저는 그럴 리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 장농은 거의 새것 수준이고 우리 집 안방에 자로 잰 것 같이 딱 맞았습니다. 사실 선생님 집에 여러 번 가 보았지만 저는 어느 집이든 그 집 가구나 배열에 별로 관심이 없어서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안방을 들여다보지 않았고 보아도 보이지 않았는지 처음 보는 물것인데 꼭 맞는 물건이었습니다.
“원래 욕심이 없으면 항상 좋은 것이 온답니다.” 저가 우리 집에 와보고 장롱을 보고 묻는 그분에게 웃으면서 대답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 물건을 구하지 않는 사람에게 그분의 물질을 맡깁니다. 이웃 사랑에 써야 되기 때문입니다.
요한 웨슬리의 물질에 관한 글을 보고 공감을 하며 그 글을 여기에 옮깁니다.
요한은 일년 동안 받은 30 파운드 중 28 파운드로 생활을 하고 이렇게 절약한 돈을 구제에 썼다. 아무리 많은 돈 심지어 일 년에 150 파운드까지 받았지만 그는 여전히 전과 같이 생활했다. 일생동안 200 권 정도의 책을 써서 그 책이 많이 팔려서 나중에는 부자가 되었지만 그는 여전히 같은 생활을 하였다. 그가 자기의 소유물을 세상을 떠날 때 남긴 것은 은 숟가락 두 개, 하나의 찻 주전자, 닳아빠진 코트 한 벌과 감리교회였다.
주님이 오신 이 기쁜 성탄날, 주님이 우리 안에 계시면 세상에 어떤 다른 욕망이 우리를 지배할까요? 이 비밀을 아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이런 찬양을 부를 것입니다.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부귀와 바꿀 수 없네
영 죽을 내 대신 돌아가신
그 놀라운 사랑 잊지 못해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자랑 다 버렸네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예수 밖에는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