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한 웨슬리의 생애 중에서 함께 묵상하고 싶은 글들입니다**
성령세례를 받기전:
나는 여전히 공중기도와 개인기 도를 하였고 신앙서적 특히 신약주석을 읽었다. 그러나 이런 것을 하는 동안에도 내겐 내적 거룩함에 대한 개념이 별로 없었다. 그냥 습관적으로 해 나갔으며 심지어 알고 있는 어떤 죄 가운데서도 만족하며 살아갔다. 때로는 일 년에 두 번 참여해야 하는 성찬식 전후에는 잠깐 멈추기도 하고 갈등도 있었지만. 거룩한 불꽃이 그저 깜빡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신앙 면에서 그는 무관심하였다. 그런데 어느 날 저녁 늦게 신앙이 깊은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그는 옥스퍼드의 대학교의 수위였다. 그들은 함께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날 저녁에는 날씨가 너무나 추웠기 때문에 초라하게 옷을 입은 수위 아저씨는 코트를 가지러 집으로 가야만 했다. 돌아오는 길에 낡은 하나 밖에 없는 코트에 대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 또한 마실 것이라고는 물밖에 없었는데 그것에 대해서도 감사했다. 오한은 그에게 감사할 수 있는 또 다른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 보았다. 그때 그는 “내게 누울수 있는 마른 돌을 주셔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싶습니다.” 하고 덧붙였다. 요한이 계속해서 말씀해 보라고 했을 때 “하나님께서 나의 생명과 삶을 주신 것 그리고 그를 사랑할 수 있는 마음과 섬길수 있는 열망을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그날 밤 자기 방으로 돌아온 요한은 구원에는 단순한 이론만이 아닌 우리 심령 속까지 깊이 관여함을 깨달았다. 하나님의 법은 말과 행동뿐 아니라 우리의 생각에까지 뼏쳐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하였다.
물질관:
요한은 일년 동안 받은 30 파운드 중 28 파운드로 생활을 하고 이렇게 절약한 돈을 구제에 썼다. 아무리 많은 돈 심지어 일년에 150 파운드까지 받았지만 그는 여전히 전과 같이 생활했다. 200 권 정도의 책을 써서 그 책이 많이 팔려서 나중에는 부자가 되었지만 그는 여전히 같은 생활을 하였다. 그가 자기의 소유물을 세상을 떠날 때 남긴 것은 은 숟가락 두 개, 하나의 차주전자, 닳아빠진 코트 한 벌과 감리교회였다.
성령이 깨닫게 해준 교리
영혼을 회개 시키는 데는 성령의 역사만이 가능하다. 마음에 할례란 영혼에 습관적으로 계속되는 죄의 성품을 육과 혼의 모든 더러움으로부터 깨끗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 결과로 그리스도안의 새 성품을 부여받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성화를 말한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완전성을 말한다. (내려놓음, 더 내려놓음, 아닌 완전 내려놓음이 맞는 표현이다)
성령만이 하나님께 대하여 죽어 있는 사람들을 소생 시킬수 있고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생기를 불어 넣을 수 있다. 이와 같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난 사람들에게는 소망을 인하여 강한 위로가 있게 된다. 이것은 마음의 할례를 받는다는 의미 그 다음의 것이다. 즉 그들의 마음속에서 증거 하는 성령과 더불어 그들 자신의 영도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무서운 죄인이었다. 그러나 일단 회개하면 하나님께서는 나를 사용하셔서 나로 하여금 다른 사람을 강건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마음을 땅 끝까지 전하게 하는 것이다. 나는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고 그렇기 때문에 나의 마음은 온통 부패하고 가증스럽고... 나 자신의 행위와 고난의 의를 통해서는 진노하신 하나님과 회해 될 수가 결코 없다. 나는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다 라고 외치게 하는 바로 그러한 신앙을 원한다. 성령이 친히 그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실 때 나는 그 믿음을 원하는 것이다.
신앙이란 성령 안에서의 사랑과 평안과 기쁨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은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것이다. 그것은 침울하고 불쾌한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그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피로 이루어진 것이다.
나는 위험한 일이 없을 때 나 자신을 믿을 수 있다. 그러나 조금만 태풍이 나를 엄습해 와도 나의 영은 괴로움을 당하게 된다. 요한이 자기 방법으로 천국에 가기를 원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높은 꼭대기에서 그는 내리시고 친히 안전하게 인도해 주신 것이다. 무서운 일이 닥칠 수 있는 미래에도 그의 영혼을 휩쓸어질 폭풍을 초월해서 그가 살 수 있는 이것은 단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만 될 수 있음을 이제 그가 깨닫게 되었다.
그가 자기 자신을 텅 비웠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의 안으로 들어오셨다. 아무 쓸모없던 요한이 이제는 복음의 일군이 되었다. 그의 영혼의 망치는 그의 인격을 조각하는 끌을 아주 세게 쳐서 그가 조작한 상은 하나님께서 이루신 업적으로 남아 있다. 그것은 너무나 경이로운 것이었으며 그 경험은 너무나 장엄한 것이었기에 요한은 그것에 대하여 쉴 새 없이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올더스게이트 사건이 있기 전에 웨슬리는 무능한 인간이었다. 그러나 그 후에 패배라곤 모르면서 하나님의 왕국에서 살아온 사자와도 같은 존재가 되었다. 그 변화 이후 웨슬레는 다음과 같이 고백을 하였다. “여러 가지 유혹 때문에 나는 몹시 괴로웠다. 그러나 크게 소리치자 유혹은 물러갔다. 전에는 때때로 정복을 당하곤 하였다. 지금은 나는 항상 정복자이다.” 요한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이 성령이 증거해 주기 때문에 영적인 담대함을 가질 수 있었다. 그때부터 그는 자신이 경험한 진리의 말씀을 듣고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을 시작할 수가 있었다.
모든 영국교회가 그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았는데 그것은 교회의 부패를 표시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왜냐하면 교회가 남을 감동시킬 수 있는 사람의 신앙적 열성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조지 휫필드 또한 교회에서 그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기 때문에 브리스톨에서 4 마을 떨어진 곳에 킹스우드란 곳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교회 안을 한 번도 구경한 적이 없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광부들이었는데 영국에서 인간성이 가장 나쁜 사람들의 표본이었다.
“나는 산을 교단으로 하늘을 울리는 칠판으로 삼으시고 그의 복음이 유대인에게 거절 당했을때 복음을 전했던 주님의 모델을 따랐다.” 처음에는 소수였다가 나중에는 30000 이라는 관중이 모였다고 지금도 그 복음을 전했던 hanham mount. 에는 기록이 되어 있다.
웨슬 리가 설교를 할때의 사람들의 반응을 일기에 기록했다. “ 4 월 29 일 위이버 홀에서 한 청년이 갑자기 벌벌 떨더니 얼마 후에 땅에 쓰러졌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를 일으켜 세우시고 평안과 기쁨이 충만하게 하실 때까지 하나님을 불렀다. 5 월 21 일 일기 저녁에 내가 니콜라스 거리에서 설교를 하기 시작하자 마음에 찔림을 받고 용서와 평안을 얻기 위해서 강렬하게 부르짖는 사람 때문에 내 말이 중단되었다. 또 어떤 사람은 반대 교리를 강하게 주장하는 사람 가까이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가 그 광경을 보고 깜짝 놀라서 있을 동안 그 옆에 있던 어린 소년이 똑같은 식으로 사로 잡혔다. 뒤에 서 있던 젊은 사람이 그를 빤히 쳐다보고 그 자신도 죽은 사람처럼 쓰러졌다. 곧 그도 큰 소리를 치기 시작하고 땅에다 돌을 부딪쳤다. 그의 힘이 너무 강해서 여섯 사람의 남자로도 그를 들 수가 없었다. 6 월 22 일 그 모임에서 내 앞의 사람이 죽은 사람처럼 쓰러졌다. 곧 이어서 둘째, 셋째가 그렇게 되었다. 반 시간 안에 다른 다섯 사람이 쓰러졌다. 이들 대부분은 몹시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들이 고통스러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평안의 해답을 주셨다. 하나님을 모욕하던 사람들도 긍휼을 베풀어 달라고 소리쳤고 죄인들은 죄를 깊이 깨닫고 땅에 엎드렸고 지나가는 행인까지도 크게 감동하셨다.
웨슬리는 자신의 아버지의 무덤 옆에서도 설교를 하였는데 토요일저녁에는 구원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외치는 소리가 너무 커서 요한의 목소리는 들리지도 않을 지경이었다. 마지막 집회는 3 시간 동안 계속되었다. 천국의 감촉과 유대 깊은 교제는 퍽 따뜻한 것으로 느쪄졌다.
폭도들이 웨슬리와 그의 동역자들을 맹공격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은 목사로부터 눈살 찌프림을 당하고 감독들로부터 반대를 당하였다. 그러나 장차 영국과 세계가 그의 운동을 그 품으로 받아들인 것을 볼 때 이것은 그의 성공을 위해서 요한이 마땅이 지불해야 할 대가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번은 폭도들이 왔을 때 목청껏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폭도 중 한 사람이 앞으로 나와서 “선생님, 나는 당신을 위해서 나의 생명을 바치겠습니다. 나를 따라오시죠. 그러면 어느 누구도 당신의 머리카락 중 한 오라기도 만질 수 없을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람이니까 하나님은 그의 편이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무리의 수가 많았지만 우리는 한 사람도 죽일 수 없었습니다.“ 라고 폭도들은 대답했다.
요한을 반대하는 설교가 폭도들의 난동 만큼이나 거창하게 나왔다. 1743 년 브리스톨에서 어떤 목사가 웨슬리에 대해서 무서운 비판을 가하였다. 그 다음에 그가 성 니콜라스 교회에서 다시 그 말을 되풀이 하기 위해서 성경 분문의 말씀을 소개 하였다. 바로 그 순간 그는 숨이 가빠 씩씩거리더니 강단 뒤로 쓰러졌다. 결국 그는 그 다음 주일에 죽고 말았다. 다른 경우에 있어서도 요한의 설교자들에게 상처를 입히거나 또는 살해 하려고 하는 자들은 오히려 그들 자신이 무장한 동료들의 손에 의하여 부상을 입거나 죽음을 당하였다. 요한은 항상 궁극에 가서 승리하곤 했다. 폭도들이 그를 대적하고 목사들이 그의 사역을 비난했다. 그는 어려운 시간동안에도 웨슬리는 미래를 향하여 줄곧 전진해 나갔다. 그의 정신은 갖가지 계획들로 여념이 없었고 영혼은 말씀을 증거 하려는 열망이 불타 있었다.
그는 설교할 때 평범하고 쉬운 말로 설교했다. 새벽 5 시에 그가 설교를 하기 시작하였을 때 사람들은 그것을 듣기 위하여 떼를 지어 몰려들었다. 마침내 요한의 추종자들은 그 도시에서 존경을 받았을 뿐 아니라 그 시민들의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그는 50 년 이상 말을 타고서 25만 마일을 여행하였다. 그는 42000 번의 설교를 했고 전부 200권 이상의 책을 저술하였다.
85 회 생일에서 그에게는 실제적인 아픔이나 고통이 전혀 없었다. 그는 자신의 완벽한 건강 상태의 비결을 일기에 기록해 두었다.
1. 계속적인 운동과 기분전환
2. 태어난 이후로 육지에 있든 배를 타든 몸이 아프던 건강하든 밤에 수면을 꼭 취한 것
3. 마음대로 잠을 잘 수 있게 함. 거의 녹초가 될 때는 낮이든 밤이듯 수면을 취한 것.
4. 60 년 이상 끊임없이 새벽 4 시에 기상한 것
5. 50 년 이상동안 계속해서 새벽 5 시에 설교를 해 온것
6. 내 삶에 고통이 거의 없었기에 슬픔과 걱정 없이 살수 있었던것. 그는 고백하기를 똑같이 느끼며 슬퍼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어떠한 것에 대해서도 속상해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친히 모든 것을 해결하시기 때문이다.
말을 타고 다니면서 사역한 40 년동안 그는 하루 20 마일을 달렸다. 또 어떤 경우에는 24 시간 내에 100 마일을 갈 때도 있었다. 그가 어마 어마한 업적을 이룰수 있었던 비밀은 하루의 일과를 짜놓은 치밀한 계획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말을 타고 가는 동안에도 그는 책을 읽거나 메모를 하였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장 값 싸고 짧고 가장 쉬운 책을 공급해 주시를 원하였다. 세월이 흘렀지만 웨슬리의 육체적인 정력은 감소되지 않았고 시력도 좋았다. 웨슬리의 능력은 그가 한 권의 책의 사람이었다. 그것은 바로 성경이었다. 그는 88 세가 되었을때도 “하나님 내가 쓸모 없는 존재로 살아가지 않게 하소서”라고 기도했고 그대로 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