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웨슬리
똑같은 책을 다 같이 읽어도 각자의 영적인 상태에 따라 소화를 시키는 능력은 전혀 다릅니다. 한 개인도 같은 책을 읽어도 자신의 신앙의 성숙도에 따라 그 책이 주고자 하는 의미를 이해하는 정도는 엄청난 격차가 있습니다.
요한 웨슬리에 관한 책을 이십여 년 전에 읽은 책을 다시 읽어보며 그 의미를 새롭게 깨닫고 배우며 혼자 은혜의 바다를 들어가 보았습니다.
그는 목사의 가문의 아들이었고 자신도 옥스퍼드에서 경건한 훈련을 하여서 세계를 흔드는 영적 거성이 된 것은 아닙니다. 그가 광풍이 불어 죽음이 겁났을때 죽음을 무서워 하지 않는 모라비안 교도들을 보고 자신의 구원에 심각한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거룩함에 무엇인가가 잘못된 것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모라비안 교도들의 목사님 스팡엔베르크와 상담을 요청하였을 때 목사님은 세 가지 질문을 요한 웨슬리에게 하였습니다. 그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 질문을 깊이 묵상해 보면 우리는 정말 자신을 잘 알수가 있으리라 믿습니다.
“당신은 당신안에 증거를 가지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성령께서 당신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시는 확신이 있습니까?” 이것은 요한을 마치 목사의 정신적 발꿈치에 놓고 뒤흔드는 것과 같은 결과였다. 비록 그가 이전의 설교에서 이런 증거와 가능성의 비추긴 하였지만 그것은 이론에 근거한 것이지 경험에 근거한 것이 아니었다.
당시 그 모리비아교도의 목사님은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있습니까?” 라고 물었다. 이 질문은 요한의 생각에 좀더 익숙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그리스도가 세상의 구주이심을 알고 있다고 대답했다. “사실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그리스께서 당신을 구원하셨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하고 그 는 덧붙였다.
이것은 요한을 유도하는 질문이었으니 그는 그것에 대한 말을 알지 못하였다. 그래서 그는 “그가 나를 구원하기 위하여 죽었다는것을 믿고 싶습니다” 하고 말함으로써 자신을 옹호하였다. 그러나 그 목사님은 다시 또 물었다. “당신은 당신 자신을 알고 있습니까?” 그는 제대로 답을 찾지 못했다.
롬8: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받는 보배로운 존귀한 존재하는 것을 알수 있는것은 오직 성령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며 우리 애기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 아기는 만 세 살이지만 자신이 우리 집에서 사랑받는 존재라는 것을 알기에 우리 집에 들어오는 순간 아주 당당한 모습으로 들어옵니다. 우리 집에 강아지가 짖어 대면 어떤 어른들은 무서워하는데 우리 아기에게는 짖거나 덤비지를 않습니다. 비록 강아지지만 우리 아기에게 함부로 했다가는 큰일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아기는 오히려 강아지를 놀려줍니다.
냉장고에 자신이 먹고 싶은 것 어떤 것도 당당하게 요구하고 없으면 저가 사달라고 하면 사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받는 존재라는 것을 성령이 증거해 주는 즉시 우리는 패배자가 아니고 항상 정복자로써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지적으로 아는것이 아니고 성령만이 가르쳐 줄수 있는 부분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인지 아는가? 그 질문 이전에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면 주님이 우리에게 해 주신 것이 어떤 것인지 우리는 그저 감사할 분입니다. 어떤 분은 이렇게 가르칩니다. 우리가 사랑을 위해 노력하고 용서도 노력하면 될 수가 있다고. 그것은 인간의 본성이 어떤것인지를 모르기 때문에 스스로 선하다고 착각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어떤 선을 행할 능력도 사랑도 용서도 우리의 타락한 본성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존재들인 것입니다. 자신이 열심히 노력하면 할수록 우리에게서 풍겨 나오는 죄성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좌절할 것입니다.
그런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신 주님은 이 모든 것에서 진정한 자유를 주십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갈라디아서 2 장 20 절의 말씀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자신의 어떤 수고가 아닌 오직 믿음으로 성령이 주관해 주는 새 인생을 살수가 있을 것입니다.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오직 은혜, 긍휼을 깨닫기에 다른 사람의 부족함과 실수도 용납할 수 있으며 사랑을 전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신앙이란 성령 안에서 사랑과 평안과 기쁨이다...그렇기 때문에 신앙은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것이다. 그것은 침울하고 어두운 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으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조건 없는 사랑에 근거한 것이다” 웨슬리는 자신이 노력이 아닌 은혜의 복음을 깨닫고는 이렇게 고백을 하였습니다.
위선이 벗겨지고 철저히 자신을 비울 때 성령은 우리 속에 들어와 속삭일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의 피로 구속받은 하나님의 귀한 자녀라고 말입니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는 한 우리는 늘 패배자밖에 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 아기는 우리집에 있으면 자신은 완전하게 보호 받고 사랑받는 자녀라는것을 알기에 두려움이 없습니다. 우리도 늘 함께 하신다는 그 말씀을 성령이 우리속에서 속삭여 줄때 믿음으로 사는 인생을 살기에 자유하며 하나님의 자녀로써 사는 권리를 알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