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로 홍콩에 가서는 일주일에 두 팀이 우리 집에서 성경공부를 같이 하였습니다. 한팀은 일반 주재원들이고 한 팀은 국제결혼한 팀이었습니다. 그중에 한명이 지금도 같이 걸어가는 오득주집사님 가정도 그때부터 한 배를 타고 가고 있습니다.
성경 공부 외에 다섯 명이 팀이 되어 홍콩정부병원에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홍콩 퀸메리 병원과 막레이도 병원에서 복음을 전하려고 시작할 때도 하나님께서 직접 문을 여신 이야기는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즐겁습니다.
처음 퀸메리 병원에서 우리가 복음을 전하고자 계획을 가졌을 때 병원의 허가 없이 함부로 그런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병원장에게 우리가 그곳에서 찬송과 율동을 하며 환자들에게 복음을 전해도 되는지를 허락해 줄수 있는지를 묻기 위해 편지를 보냈습니다. 병원장비서는 그 편지를 받자마자 쓰레기통에 집어넣었기에 아무런 회신도 오지 않았습니다. 우리 몇 명은 직접 그 병원에 가서 다시 전도의 문을 열어 보기로 했습니다.
복지과에 가서 물어보면 될까 생각하고 복지과 앞을 왔다 갔다 하는데 한 간호사가 나오더니 우리에게 무슨 일로 왔느냐고 물었습니다. 사실대로 이야기 하였더니 그 간호사는 우리에게 복지과에 가서 될 일이 아니라고 하면서 한 방으로 안내를 하였습니다. 지금도 그 상황이 눈에 선한데 그 방에 임자는 회의 중이었습니다. 어떻게 간호사가 회의 중인 사람을 노크를 해서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말도 안되는 용건을 가지고 회의를 방해 하며 이야기 했는지 절로 웃음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감동시키니 미세스츄라는 그분은 회의를 중단하고 그것 참 좋은 생각이라고 하며 원장에게 전화를 해서 제 편지를 받은 적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원장이 그런 편지 본적이 없다고 하니 저보고 편지를 다시 쓰라고 하면서 병원에 무순과를 방문하고 싶으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모든 과를 다 방문하고 싶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곧 될것 같은 표정이라 우리는 그렇게 믿고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얼마동안 소식을 기다렸는데 아무 전화 연락이 없어서 다시 미세스 츄에게 전화를 하니 그분 대답은 저를 더 놀라게 하였습니다. 그 병원에서 그런 일을 하려면 의사 간호사 병원직원 모두에게 설문조사를 해서 통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의사가 회진을 도는데 한쪽에서 찬양하고 율동을 하며 복음을 전한다? 이것은 한국에서도 불가능한데 더군다나 크리스천이 5% 도 안되는 홍콩에서 설문조사를 해서 그런 일이 통과된다면 오직 “사람은 할수 없으데 하나님은 할수 있느니라.” 라는 것 외에는 말도 안되는 소리였습니다.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창 18:14)” 하나님께서 사라에게 말씀하신 그 말씀을 깊히 목상하며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몇주일 기다리고 있었더니 그것이 통과 되어서 우리를 위한 스케쥴이 나왔다고 하였습니다. 우리 다섯 명은 설레는 마음으로 그 병원에 가니 오전에 의자가 회진 도는 시간에 몇월 며칠은 어디에서 우리의 특별한 공연(?) 을 할수 있는지가 나왔습니다. 이미 통과된 결의 사항이라 저희가 가면 그 담당자가 환자들이 앉아서 들을 수 있도록 우리를 위하여 특별 좌석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단지 움직이지 못하는 환자만 병실에서 들었습니다. 그때 저는 이 말슴을 떠올랐습니다.
[행28:31]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가르치되 금하는 사람이 없었더라
더 놀라운 것은 음악을 전공한 사람이 한 명도 없는우리 다섯명이 중국어 영어를 썩어서 찬양을 부르고 율동을 하고 겨우 겨우 하는 중국어로 한명이 복음을 전하면 사람들이 감동을 받고 눈물을 흘리기도 하며 성경을 받기를 너도 나도 원하였습니다. 그때 일년에 천권 정도의 중국어 성경을 사서 돌려주었습니다.
정말 즐거운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저희 남편의 직장은 삼년 계약을 하였는데 쏜살같이 그 시간들이 지났습니다. 삼년이면 보통 미국사람들의 주재원 시간도 그 정도 시간에 변경이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 계약기간이 끝나는 시간은 저희 아들이 고등학교 2 학년이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자녀를 키우면서 아이들을 고등학교 까지는 신앙의 전인교육이 필요하여 일찍 혼자 떨어져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입니다. 요즈음은 기러기 엄마 아빠가 유행하여 자녀 교육상이라고 가족이 떨어져 사는데 더 중요한 것을 노친다고 생각합니다.
삼년이 끝나갈 즈음 딱 한 달만 그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선교를 위하여 제 삶을 드리는 것은 너무나 기쁩니다. 그러나 엄마로써 자녀가 바르게 자라지 않았을 때 그것보다 더 마음 아픈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즉시 기도를 응답하셨고 우리 아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까지 홍콩에서 더 살도록 하셨습니다.
너무나 정확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홍콩을 떠나는 날은 95 년 6 월 12 일 우리 아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한 다음 날이었고 대학은 이미 결정이 되어 있었습니다.
두 번째 홍콩에서 오년동안 사는 기간에 홍콩에 집세는 상상하기 어렵게 올랐습니다. 처음에는 주재원으로 모든 집세가 올라도 그대로 은행에서 내 주었는데 두 번째는 계약을 할때 집세를 정해주었는데 91 년 당시 한국돈으로 월세가 350 만원이었습니다. 우리를 놀라게 하는 집세는 일년에 두배로 뛰었습니다. 우리가 떠나올때는 US!0000 였습니다.
처음 두배로 뛰어서 갈바를 모르고 있을 때 미국 본부에서 일주일을 출장온 높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저희 남편은 그 사람의 인상이 아주 무섭게 생겼는데 같이 면담을 하자고 하여 무슨 일로 하나 긴장을 하고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집세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보내주신 사람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저희 남편에게 열심히 일을 한다고 들었는데 자신이 도와 줄일이 없느냐고 물었고 갑자기 두배로 오른 집세가 문제라고 하니 즉시 그 집세만큼 지불하도록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집이 금새 또 두배 정도로 뛰어서 상상을 할 수가 없는 액수를 내야 했습니다. 그럴때 저는 이런 식으로 기도합니다. 어떤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어떤 환경에서도 저가 불평하거나 하지 않고 감사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런데도 근심이 생기면 저는 그동안 하나님께서 제게 해 주신 것을 죽 나열하면서 그때 끄때 해 주신것을 기억하며 감사를 하기 시작하면 어느새 근심은 사라지고 감사와 신뢰가 더 굳어지곤 하였습니다.
이번에는 홍콩에서 근무하는 저희 남편의 상관인 미국사람이 뉴욕에 있는 자신의 상관에게 전화를 해서 상황을 설명하고 이 집세 문제를 해결하였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복음을 전하고 여러 가지를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을 보고 있노라니 또 다시 계약 기간이 끝나고 하나님은 또 새로운 연장을 하여서 우리 가족을 말레이시아로 보내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