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증인이 되어라
영국에 한 교회에서 여전도회 집회를 인도하기 위해 그곳에 가니 마당에서 한분이 차에서 내리는 제게 인사를 하는 것입니다. “권사님이시죠? 책에서 본 모습이 있어서 금방 알아 볼 수가 있네요. 저 그 책 다 읽었어요.”
그분이 어떤 느낌을 받고 책을 읽었는지는 그날 집회가 끝나고 그분의 고백으로 잘 알수가 있었습니다. “처음 그 책을 읽자 마자 속으로 이 사람은 환경이 선교만 해도 되니까 그 일을 전념할 수 있지 우리는 현실적으로 그럴 수가 없으니까 못한다 생각했어요. 한데 권사님 간증이 시작하자마자 그것이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을 알고 회개했답니다.”
그와 같은 오해를 하는 분들을 위하여 우리 삶속에서 나의 증인이 되어 달라고 부탁하며 세상 끝날 까지 함께 하신다는 주님의 약속이 신실하다는 것을 먼저 증언하고 싶습니다. 저는 그렇게 말씀하는 분들에게 우리 부부가 둘 다 하나님이 공부를 시켜 주지 않으면 교육을 받지 못했을 것 이라는 것을 말해 줍니다. 그 은혜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외국인들에게 장학금을 주어 공부하게 한다는 것도 덧붙여서 사실을 증언합니다.
미국은행을 근무하던 남편의 직장에서 홍콩에서 1985 년 4 월부터 87 년 8 월까지 근무하게 하였습니다. 홍콩에 도착한지 일 년 후에 한인교회에서 며칠 동안 집회가 있었는데 그때 강력한 성령이 제 영혼을 뚫고 빛을 비취기 시작했습니다. 성령은 주님이 십자가에서 하신 일이 무엇인지를 마치 확성기를 대고 제 귀에 말하고 영화의 장면처럼 그 고난이 리얼하게 다가왔습니다.
당시 그것을 깨닫자마자 제 몸에 온 힘이 빠지듯이 쓰러지며 너무나 통탄하며 회개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밤과 낮 눈물을 흘리며 침상을 적시는 회개를 했습니다. 그 집회는 며칠만에 끝났지만 저의 회개는 한 달 정도 했습니다. 그렇게 회개하고 나니까 인생관, 가치관등, 보는 모든 관점과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회개의 시기가 지나고 즉시 이 귀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주님의 증인이 2009 년 현재까지 진행이 되고 있고 주님이 오실 때까지 이 길을 갈 것입니다. 만 23 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 그 시간들을 되돌아보면 얼마나 행복한 시간들이었는지요!!!!
그 시간들은 영광의 시간이었고 행복과 기쁨이 넘치는 시간이었습니다. 만약 주님의 증인이 되는 이 길이 아니었으면 인생의 삶속에서 그렇게 주님의 임재를 보며 즐거워 하며 생상하게 역사하시는 약속을 늘 지키시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지 못하는 수 많은 교회 문턱만 드나드는 사람들과 같았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증인의 삶을 살아야 하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전도를 해야 효과 적인지를 잘 모르니까 한인교회내에 사놓은 중국어로 된 전도지를 매일 길에서 나누어 주어 몽땅 처분을 하였습니다. 동시에 필리핀 도우미로 온 자매들과 홍콩대학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때 홍콩한인교회에 CCC 선교회에서 단기로 와서 우리에게 전도 훈련을 시켜 주었습니다. 모두 은혜롭게 들었지만 실지 나가서 전도하지는 않았고 저만 복음을 전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 전도하였습니다.
곧 세월이 한국으로 돌아갈 시간이 와서 87 년에 귀국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 선교를 위해서 남편의 직장이 다시 외국으로 갈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저가 그렇게 기도한 것은 저는 평범한 가정주부였기에 남편을 따라 가야만 외국에서 복음을 전할수 있지 제 임의대로 장소를 선택할 수가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확률은 거의 희박했습니다. 왜냐하면 미국은행 한국지점에서 많은 직원 중에서 아주 소수만 해외 근무를 하였고 한번 갔다 온 사람을 다른 사람들 제쳐 놓고 또 보내줄 확률은 희박했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항상 드라마틱했습니다. 삼년 반 후에 다시 홍콩으로 가게 되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런 과정가운데서 하나님이 하신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작업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홍콩에 두 번째로 가자 마자 우리가 속해 있는 미국 은행 외에 모든 외국은행에서 대대적인 구조 조정이 있었습니다. 당시에 한국에는 노조가 데모하는 것이 격렬했습니다. 한 외국은행에서 노조가 본국까지 가서 데모를 하였습니다. 외국인들은 그때 쇼크를 받고 한국에서 영업을 계속 하다가는 손실이 클 것으로 생각하고 너도 나도 축소작업을 하여 당시에 400 여명이 직업을 잃게 되었습니다. 만약 우리가 속해 있는 은행 한군데서 구조조정을 하면 다른 곳에 지원을 할 수가 있지만 너도 나도 구조조정을 하니 외국은행 전체가 그런 풍토기에 다른 직장을 찾을 수도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1990 년 10 월에 저희 남편은 먼저 홍콩을 가 있었고 저희는 방학을 맞이한 다음에 아이들과 갔습니다. 저희는 홍콩에 있어서 그런 회오리 바람에 우리에게는 예외인줄 알았는데 91 년 2 월 말에 모든 직원들에게 통보를 했습니다. 그때 사직서를 내는 사람들에게는 퇴직금을 좀더 많이 주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퇴직금을 정상적으로 받고 일하는 것이었는데 저희 남편의 직급을 가진 모든 사람들이 그만 두었습니다. 저희도 일주일 앞두고 결정을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런 추세였기에 저희 남편도 사직서를 내고 다만 남편은 홍콩에서 잠시 더 일하고 저는 자녀들과 방학이 끝나고 한국으로 다시 왔습니다.
퇴직금을 타기 위하여 사인을 해야 하기에 저가 은행에 대리 사인을 하러 서울지점에 가니 같은 동료들이 모두 불안에 들떠 있었습니다. 물론 그분들도 교회에 다니는 분들이었습니다. 저가 그분들에게 이야기 했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온 것은 미국은행덕으로 산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 왔기에 앞으로도 인도하심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도 제 말에 귀를 기울이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은 대로 된다는 성경말씀대로 400 여명중에 저희 남편만 그 은행에서 이미 퇴직금을 받고도 홍콩에서 현재 채용한 것으로 하여 다시 계속해서 일을 할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치 만나를 매일 주듯이 그곳에서 삼년 계약을 하고 직업을 주셨습니다. 저는 다시 홍콩으로 가게 되었고 다시 선교를 시작하였습니다.
홍콩으로 가기 전 3 년 반 동안 한국에 있을때 대학부 일년 그리고 청년부는 이년을 맡게 되었습니다. 저가 대학부와 청년부를 맡았을 때는 40 대 초반이었기에 처음에는 많이 떨리고 두려웠습니다.
대학부를 맡았을 때 군대 갔다 온 이십대 후반의 형제듥과 자매 여덟명이 모여서 대학부의 발전을 기대했는데 그 교회역사상 여자가 맡은적이 없는데 저가 등장하니 저를 보는 눈이 아주 실망스럽고 기분이 좋지 않은 눈빛들이었습니다.
잔뜩 두려워 하는 제게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셨습니다.
잠3:5-6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잠언 말씀을 의지하고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였더니 놀랍게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대로 인도하셔서 대학부가 크게 부흥하여 40 여명이 되었습니다. 그 다음해에 청년부를 할때 하나님께서 교회도 잘 나오지도 않고 말도 잘 듣지 않는 소수의 청년들만 있는데 다시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시110:3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참 흥미로운 것은 하나님 일은 하나님께서 직접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루는 새벽기도를 마치고 났는데 그 교회에 나오지 않는 청년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청년은 처음 만났는데 제 옆에서 기도하는데 저희 집 기도방에 지금도 걸려 있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그림이 저희 집에 걸려 있는것을 보았고 저희 아들과 딸도 보았다고 하는것입니다. 우리 집에 한번도 와본적이 없는 청년이 그런 이야기를 하는것입니다. 그는 서울교대 학생이었는데 그날 제 옆에서 환상을 보고 자신이 다니는 학교의 신우회 모임에 저가 한번만 와달라고 초대를 했습니다.
저가 그곳에 가고 그 다음주에 그곳에 있는 청년들이 지남철 따라 오듯이 교회로 모두 왔습니다. 그들은 교회에 와서 성가대로 교사로 봉사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때도 느끼고 지금도 보고 있지만 하나님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적으로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것입니다.
대학부 청년부 이렇게 하나님께서 훈련을 시키신 다음에 다시 두 번째로 홍콩으로 가서 주님의 증인의 삶은 이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