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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여행(2)

마마킴||조회 6,507

영국여행(2)

조지뭎러는 1805-1898 년 동안 이 세상에 있다가 하늘나라에서 주님과 더불어 있을 것입니다. 그분이 떠난지 이미 101 년이 지났습니다. 그러나 세상 그 누구보다도 제게 기도를 가르쳐 주었고 책을 통하여 가르침을 자세히 써 놓았기에 그분의 자취를 돌아보면서 성경에 기록된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케 하는 삶이 무엇인지를 보여준 모델이기도 합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 다는 말씀의 의미가 바로 그런것이라고 묵상했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이 땅에 없지만 영원히 우리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가르쳐 주시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요11:25-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저는 조지뮬러에 관한 책을 세권을 이미 읽었으나 그곳에서 두권의 책을 또 사는것을 주저하지 않고 샀습니다. 다른 어떤것도 쇼핑을 하지 않았으나 그분의 가르침은 더 많이 배우고 싶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책에는 이렇게 기록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 책은 조지뮬러와 하나님과의 우정을 보여주는 책입니다.”

“ 이 내용은 살아 있는 현실속에서 하나님을 늘 체험하는 이야기입니다.”

어느날 책 꽂이를 보면서 300 권의 책이 꽂혀 있는데 성경에 관한 책은 많이 읽고 성경 그 자체를 읽지 않은것을 발견하고 성경 그 자체를 읽기 시작하여 200 독을 하였다는 하나님과의 교제의 발란스를 보여줍니다. 성경을 끊임없이 읽으며 기도를 최우선으로 하지 않고 절대 다른 일을 우선으로 하면 되지 않는다고 강조한 그 모습은 우리에게 어떻게 하나님과 교제를 해야 하는지를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한 부분입니다.

저는 그런 모델을 볼수 있는것이 너무 행복했고 그 가르침을 따라 왔던 이 길이 너무 행복합니다.

요한 웨슬리

요한 웨슬리 또한 하나님의 사람이며 영국에 다시 그런 인물이 나서 새로운 모습이 되기를 기도했습니다. 오한 웨슬 리가 키가 160 cm 밖에 되지 않았다고 그 집을 지키는 안내원이 설명해 주고 그의 침실을 보여 주었는데 역시 그렇게 작은 키의 침대처럼 침대가 짧았습니다. 그는 말을 타고 다니며 말씀을 전했다고 하기에 그 교회 앞에는 웨슬 리가 말을 타고 한손에는 성경을 들고 있는 모습의 동상이 세워 있었습니다.

웨슬리가 미국으로 선교사가 되어 갔지만 그가 실패하고 돌아오면서 풍랑을 만났고 그는 두려워했으나 같은 배에 탄 모라비안 교도들은 평온한 모습으로 찬양을 부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웨슬리는 자신에게 없는 것이 그들에게 있는 그 무엇이 그렇게 죽음 앞에서도 평온할수 있게 하는것이 무엇인가 라는 의문점을 가졌습니다. 왜냐하면 그때까지 성경읽기나 모든 경건의 생활을 하였지만 그는 미국에서 실패했습니다. 웨슬리는 영국으로 다시 돌아가서 성령세례를 받은 후 한 나라가 한 사람의 교구로 돌아왔고 세계를 뒤흔드는 설교자가 되었습니다.

웨슬리는 조지 휫휠드의 권유로 극빈자들을 위한 야외 설교를 시작했습니다. 그의 사역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의 필요성을 느끼고 자그마한 부지를 장만하여 건물을 짓고 “Our new room in the Housefair" 라 불렀습니다.

그곳은 예배처소인 동시에 가난한 자들을 위한 진료소와 교실로 사용되었습니다. 또한 찬송가 작시자인 찰스 웨슬리가 함께 사역하여 교회 이층에 있는 웨슬리의 집에는 두 사람의 사진이 걸려 있었습니다. 그 교회에서 극빈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중심지였고 여러 설교자들의 숙소로서 사용되었던 곳입니다.

열여섯 명의 자녀를 두었던 웨슬리 어머니의 기도를 생각해 보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한 어머니의 기도는 그렇게 위대한 하나님의 종을 만드는 것입니다. 웨슬리가 나타나면 술집이 자진하여 문을 닫았다는 말씀을 기억하며 현재 영국에 식당마다 저녁에 남녀가 모여서 술을 마시는 장면을 보며 웨슬리가 다시 나타나야 영국이 살아나지 않나 생각하며 기도했습니다.

Hanham Mount

조지 휫휠드가 요한 웨슬리 형제와 같이 사역을 하던 그곳에 처음 그의 설교를 들으려고 왔던 청중은 50 여명이었지만 그후 야외설교지인 한함 마운트에 30,000 명까지 늘어났다고 합니다. 그는 친화력과 인격을 갖춘 사역자로서 다른 사역자들과의 화합에 힘썼으며 나중에 미국으로 가서 복음을 위해 100% 삶을 드려 미국 복음운동에 지대한 기여를 했습니다.

그가 외쳤던 바로 그 야외 강단에 이런 글이 땅위에 새겨져 있었습니다.

사52:7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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