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여행 (1)
저는 8 박 9 일의 영국 방문을 마치고 어제 돌아왔습니다. 런던 조선족교회, 레인즈파크 한인교회, 일링한인교회, 런던 베델교회에서 각각 집회를 하고 하루는 브리스톨에 조지뮬러, 요한웨슬리, 조지 휫휠드 사역지를 보고 돌아왔습니다. 참 유익하고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세 교회에서는 다섯 시간씩 집회를 하였고 두 군데서는 한 시간씩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처음 고석만선교사님이 저를 위하여 스케줄을 짜시고 열 두시간 비행기를 타고 와서 시차가 있는데 너무 강행군 하는 스케쥴이 아니냐고 질문을 하였는데 그곳에서 베델교회에서 철야시간에 요청이 와서 하루가 더 늘어났습니다. 전에 샹햐이에서 이랜드 직원 수련회때 강의와 몽골에도 그런 시간을 가졌지만 장거리 배행을 하여 시차가 완전히 바뀐 가운데서 이런일을 처음 해 보아서 과연 체력이 감당이 되는지는 저 자신도 몰랐습니다.
전에 이런 집회 말고 이십 일 개국을 여행할 때 때 마다 비상약을 챙겨 갔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전혀 아무런 약을 가지고 갈 필요을 느끼지 않아서 그냥 갔습니다. 가장 명의사 대시는 우리 아버지께서 함께 하시는 것을 확실히 알기 때문이었습니다. 저 자신도 놀란 것이 그런 강행군에도 여전히 저는 기쁨의 에너지가 넘쳐 나고 있었습니다. 어제 밤에 도착하여 오늘 아침 송학식품에서 드리는 직장예배에 말씀을 전하러 가면서도 전혀 어제 비행기를 타고 온 상태가 아니고 아주 기쁜 마음으로 여전히 새벽에 일어나서 기도하고 8 시 30 분에 시작하는 예배 전에 도착할 수가 있었습니다.
저는 운전을 하고 가면서 상쾌한 기분으로 화나님의 말씀을 외쳤습니다.
“느 8:10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맞숩니다 하나님을 기뻐하기에 우리는 힘이 있습니다.”
또한 중보기도가 얼마나 보호해주고 새힘을 주는지요. 우리 중보기도팀이 저를 위한 기도의 힘이 저를 잘 감당할수 있게 해 준 것이 참으로 신기했습니다. 저가 떠나오기 전날 철야기도에서 말씀을 전한 베델교회에서는 목사님께서 한 시간이 너무 아쉽다고 하시며 오늘 말씀을 못 들었으면 큰일 날 뻔 했다고 하시며 내년 여름에 유학생 청년 수련회에 저를 강사로 초빙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특히 청년들에게 복음전파에 동기 부여를 주는 것을 아주 기뻐합니다.
저를 며칠 같이 따라 다니며 메시지를 듣던 분이 제 목소리가 상하지 않을까 걱정하며 집에서도 목소리를 위해 소금물 양치 같은 것을 하라고 권면 해 주었지만 제 옆에 계시는 명의사가 붙들어 주시가에 그런 것 하지 않아도 여전히 건재했습니다.
우리 선교회 파송선교사 가족인 고석만 백경아 선교사님은 참으로 다른 선교사님들과는 다른 귀한 분들이었습니다. 조선족교회를 설립하여 섬기는 가운데 이년 반전에 입양한 수현이를 노상 데리고 다니며 선교를 하고 있었습니다. 수현이는 잠시도 엄마를 떠나지 않고 엄마에게만 매달려 안겨 있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사역을 하기도 보통 바쁜 일이 아닌데 애기 엄마 노릇을 하는 가운데 너무나도 사랑하며 애기를 예쁘게 키워 놓았습니다. 한국의 물가와 비교가 안될 정도로 비싼데도 한 번도 돈 이야기를 기도편지에 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스무명 정도 모이는 조선족교회에서 장소 빌리는 헌금내고 빠듯한 가운데서도 우리 선교회의 특징처럼 다른 곳에 30% 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앞으로 더 귀하게 쓰실 것을 믿습니다. 첫날 도착하자 근처 식당에서 여자 남자 모두 술을 마시는 영국 사람들을 보았기에 요한 웨슬 리가 나타나는곳에 술집이 자진하여 문을 닫었던것을 기억하며 요한 웨슬리 같이 쓰임받는 고석만선교사님 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런던에 귀한 하나님의 사람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김진숙권사님은 처음 단돈 300 만원을 가지고 런던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처음 어떤 분이 도시락배달을 열다섯 개 해도 별로 돈이 남지 않으니까 해 보겠느냐고 이분에게 넘겨서 이분은 정성을 다하여 도시락을 만들어서 배달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영국에 삼성공장에 직원들에게도 배달을 하였는데 그 도시락을 먹은 사람들이 영국직원이 많아서 구내식당을 열지 않았는데 영국사람들도 맛있다고 하여 구내식당을 맡게 되었다고 합니다.
권사님은 280 명분의 식당을 운영하여 하나님이 주신 물질로 런던에 집을 두채 샀습니다. 한 채는 가족들이 사용하고 한 채는 그곳 교민의 60% 가 유학생인데 기숙사에 들어가지 않은 학생들과 갈 곳이 없는 학생들에게 그 집을 제공하고 숙식을 무료로 해 주는 손길이 되었습니다. 남편 되시는 분은 주일이면 차가 없어서 교회 오기 힘든 학생들을 태워 가지고 오가는 일을 하십니다. 너무나 아름다운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도 이러한 사람들을 표현할 때 다름과 같이 기록해 주었습니다.
딤후1:16-18 원하건데 주께서 오네시보로의 집에 긍휼을 베푸시옵소서 그가 나를 자주 격려해 주고 내가 사슬에 매인 것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로마에 있을 때에 나를 부지런히 찾아와 만났음이라 (원하건데 주께서 그로 하여금 그날에 주의 긍휼을 입게 하여 주옵소서) 또 그가 에베소에서 많이 봉사한 것을 네가 잘 아느니라
삼십년전에 처음 “조지뮬러에 생애”를 일고 신앙의 모델로 생각하며 그의 모델을 따라서 지금껏 왔기에 영국에 가면 꼭 그의 발자취를 찾아가 보고 싶었습니다. 드디어 고석만선교사님이 운전을 해 주어서 그 귀한곳에 가볼수가 있었습니다.
더 감사한것은 영국 서남부에 위치한 브리스톨은 조지뮬러의 발자취뿐 아니라 항구를 통한 종교 문화 교육 무역등으로 알려진곳으로 노예 장사였다가 회심한후 “Amazing Grace(나 같은 죄인 살리신)” 를 작시한 존 뉴톤, 세계적인 설교자 조지 휫휠드, 감리교 창시자 요한 웨슬리의 발자취를 볼수가 있어서 너무 영광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에 인도를 방문했을 때도 다른 사람들이 만날 수 없는 마더 테레사를 만날 수 있게 하여 제게 배움과 깨달음을 주셨고 이번에도 더 많은 것을 느낄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조지뮬러가 고아들을 위하여 하나 둘씩 시작하여 다섯 개의 건물은 그의 사후 백년이 지났는데도 지금 대학이 사용할 정도로 아름답게 그대로 있습니다. 그 건물을 바라보며 그곳을 걸어 다니던 조지뮬러를 회상해 보았습니다. 그의 손을 거쳐간 고아는 18000 명으로 한번에 그 건물 수용인원이 2050 명이었다고 합니다.
뮬러 하우스에는 그가 쓰던 책상이 그대로 보관되어 있고 그 자리에 앉아서 그의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맛보며 사진을 찍기도 했습니다. 죽기 하루 전까지 그가 읽었던 성경책도 그곳에 보관이 되어 있었고 고아들에게 입혔던 옷과 사진들이 보관되어 있어서 마치 그 시대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더 좋은 최선의 길을 보여주신 것을 감사합니다.”라고 시작한 책을 그곳에서 사서 읽어보았습니다. 오직 기도로 대학 건물로 쓸수 있는 고아원 건물 다섯 동을 지을수 있었고 그 수 많은 고아들에게 아주 깨끗하고 좋은 환경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했던 하나님의 사람을 느껴 보는 것은 너무나 특권이었습니다.
영국 날씨는 겨울에는 거의 비가 수시로 뿌리고 바람부는 것이 특징이라 으시시 하게 춥숩니다. 보일러가 고장이 나서 고칠 때 조지뮬러가 추운 난방이 되지 않는 숙소에서 고치는 동안 추워할 고아를 위하여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남풍을 불게 하셔서 따뜻하게 했다는 말씀을 그날도 기억했습니다.
마침 고속도로 운전을 하는 내내 비가 세차게 와서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차안에 보니 우리는 네명이 타고 있는데 우산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저는 비가 멈출 것을 기도하였더니 도착하자 비가 멈추고 우리가 모두 그곳을 돌아 볼 동안 비가 한 방울도 오지 않았습니다. 조지뮬러의 기도를 들으신 아버지는 동일한 우리 아버지 이심을 찬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