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한자 같으나 유명한자
은퇴목사님들의 모임에 가서 간증을 하였습니다. 목사님들의 모임에 가면서 전에 갔던 아름다운 목사님이 생각났습니다. 그 목사님은 자신도 하남시에서 개척교회를 하고 계시는 분이었습니다. 저가 아는 목사님이 그 목사님의 친구이신데 이 목사님은 일년에 한번씩 시골에서 목회하시는 목사님들을 하남시에 초빙하여 모두 양복 한 벌씩을 새로 해 드리고 새해 달력을 못하신 교회에 달력도 해 드리는 모임이었습니다.
금요 철야시간에 시골에서 오신 목사님들이 모였을때 간증을 해달라고 하여 밤길을 찾아서 장거리 운전을 하고 갔던 기억이 납니다. 그 교회는 골목도 찾기 힘든 곳에 있어서 여러번 길을 해맸습니다. 그날 살아계신 하나님을 간증할 때 목사님들은 모두 뜨겁게 눈물로 호응하며 기도를 드렸습니다. 자신의 어려움보다는 더 힘든 지역에서 목회하시는 목사님들을 위로하고 격려 하는 모습이 참으로 인상적이었습니다. 철야기도가 끝난 후 먼 길인데다가 길이 막히는 길을 운전하고 오면서도 제 마음에 감동이 남어 있었습니다, 윤권사님과 같이 동행하면서 서로 기쁨을 나누었습니다. 그때 마다 “우리 서로 받은 그 기쁨은 알 사람이 없도다” 라는 찬송이 나옵니다.
어제 저가 간곳은 은퇴 목사님들의 모임인데 전에 우리 선교회에 한번 오셨던 목사님이 제게 전화를 하셨습니다. 저는 화요일에는 우리 중보기도모임이 있어서 못 간다고 말씀드렸는데 또 다시 전화를 하셔서 꼭 오라고 하여 중보기도 모임을 빠지고 그곳에 갔습니다.
사실 목사님들 앞에서 어떤 내용이던 전하는 것은 늘 부담감이 앞서곤 합니다. 어제 뵌 은퇴 목사님들은 모두 고령이시기에 얼굴에 일생동안 살아온 인생관, 신앙관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것은 참으로 신기한 그림입니다.
은퇴 목사님중에 제 마음속에 깊은 아름다움을 남겨주는 두 분이 생각납니다. 한분은 전주 안디옥교회 이동희목사님이십니다. 일명 깡통교회라고 불리우는 이교회는 사실 강남에 한국에 모든 교인들이 알교 있는 교회보다 파송하는 선교사 숫자가 더 많습니다. 장애인들의 예배나 공간은 우리도 장애인들을 위한 무엇을 한다는 전시를 위한 프로그램 정도가 아니고 그분들은 교회 본당보다 더 당당하고 자신들만의 공간에서 찻집을 운영하도록 교회에서 지어 주었습니다. 요즈음 교회 건물에 공간이 필요하다고 하여 찻집이 교회내에 있는데 이곳은 장애인들이 직접 운영을 하고 있었고 교회에서 자립을 위한 비누공장도 세워 주었습니다.
교인들이 더 많이 늘어나자 교회의 깡통건물은 계속 깡통을 이어서 늘렸습니다. 감동 깊은 가장 중요한 방은 “갈멜산”이라는 기도실이었습니다. 이곳은 저가 세계 여러곳을 다녀본중에 볼수 없는 유일한 장소였습니다. 그곳은 24 시간 릴레이 기도를 하는 곳이었습니다. 특이한 것은 명절에도 쉬지를 않는 것입니다. 다음 기도 차례 자가 오지 않으면 먼저 기도 순서를 맡은 분이 그 자리를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마다 특별 작정기도를 하는 것은 보았지만 이렇게 기도하는곳은 유일하게 그곳에만 있었습니다. 그것도 아주 오랫동안 지켜온 기도자리였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아버지집에 언제나 들어올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그 교회는 24 시간 열려 있습니다. 도시에 다른 교회 같이 비싼 물건들이 있으면 그 물건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교회는 굳게 문이 닫혀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지키는 사찰이 또 있습니다. 이 교회는 사찰이 없었습니다. 경비를 조금이라도 아껴야 한명이라도 더 선교현장에 파송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목사님이 우리 학생들에게 그 신앙관을 전수 해 주기 위하여 오셨을때 그런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교회의 건물이나 어떤 물건을 통해서 하나님 사역이 남는 것이 아니고 그 안에서 행한 일들만 남는 것이기에 우리 교회는 모두 중고를 사용합니다. 그러면 잊어버릴까 염려 하여 교회 문을 잠그고 아버지 집에 들어오는 일을 못하게 하는 일이 없지요.”
그 말씀 그대로 그 교회안에는 아무것도 가지고 가서 돈이 될 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여름에는 찜통이고 겨울에는 추운 그 예배당에서 교회앞에 쓰여 있는 문구는 “좀 불편하게 삽시다.” 였습니다.
그 교회는 교통도 불편한 곳에 있고 실어 나르는 차 안대 없고 목사님 자신도 자가용이 없이 일평생 목회를 하셨지만 저가 본 가장 부자 교회중에 하나였습니다. 은퇴를 하시고 다른 목사님께 물려주시고 평생 살아오신 그 지역을 떠나 수원에서 사시면서 목사님은 세계로 다니시며 그 아름다움을 전하고 계십니다.
우리 학생들을 좀 가르쳐 주시라고 초빙했을 때도 목사님은 수원에서 전철을 타고 오셨습니다. 다른 교회를 방문하고 우리 외국인 학생들에게 무엇을 좀더 가르쳐 줄수 잇을지 전화를 교회에 걸으면 비서실전화 조차 일반에게 공개 되지 않아서 청와대보다 더 통화하기 어려운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이었습니다. 저가 전화를 드리기 전에도 이동희목사님이라면 틀림없이 허락하실 것을 믿었는데 역시 기쁨으로 달려오셨습니다.
또 한분은 70 대 중반인 북한을 다니시는 한 목사님이십니다. 저는 이분을 뵈오면 늘 이십대 청년의 사랑이 넘치는 것을 느낍니다. 다른 북한을 다니시는 한국에 큰 교회 목사님은 무엇을 한것이 대대적으로 보도되어 많은 일을 한것 같지만 사실은 이분이 한일은 정말 많습니다. 자신의 모든 재산을 다 팔아서 중국에도 수십개의 가정교회를 세웠고 북한에도 이분은 언제나 자유롭게 다닐수 있게 하나님께서 해 주tu서 많은 열매가 있습니다.
한목사님은 추운 겨울이 되면 그들이 난방이 없이 추운 겨울을 지내는데 혼자 따듯한 곳에 있을수 없다며 꼭 그곳에 가십니다. 갈 때마다 전화를 주시면 그 목소리가 마치 첫사랑에 연인을 만나러 달려가는 기쁨으로 하시지 거창한 자신의 자랑이나 공로의식을 나타내는 언어를 쓰는것을 들어본적이 없습니다.
하늘나라에 가면 “무명한자 같던 사람이 유명한자”가 되지 않을까 생각을 깊이 해본 날이었습니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고 보이지 않는것은 영원한것을 가르치는 교회에서 왜 그렇게 보이는것에 치중을 하는 것일까 라는 안타까움을 갖습니다. 서구 교회의 텅텅비고 팔려가는 건물이 전에 위상을 자랑했던 그것을 한국교회도 따라가는 것을 보며 전주 안디옥 교회에서 보았던 아름다움을 다시 새겨봅니다.
은퇴목사님들은 제 간증이 끝나자 이렇게 고백을 하셨습니다. “신학박사를 하면 지적인 교만으로 저런 영감이 나오지 않지요. 우리 권사님한테가 아니고 하나님이 하신일을 하나님께 박수를 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