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배고픈 사람
우리에게 주어진 한번밖에 없는 인생에서 무엇을 해야 하고 배워야 하는 시간일까요? 우리 인생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하나님과 더불어 사는 에덴동산에서 떠나와 잠시 이 땅이라는 곳에 살면서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우리도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배우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사랑을 배우는 일번지가 바로 가정입니다. 우리 타락한 본성으로는 사랑을 못하니까 하나님께서는 본능으로 사랑의 일단계가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게끔 만들었습니다. 특히 모성애는 자신의 몸을 빌어서 고통가운데서 해산을 하여 자신의 자녀가 귀하게 사랑스럽게 느껴지게 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 사랑은 인간이 존재할 수 있는 유일한 생명의 원천입니다. 고슴도치도 제 자식은 귀여워한다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자녀를 사랑할 줄 모르는 수많은 부모들. 본능적인 모성애가 없는 엄마. 어릴 때 가장 무서운 폭군의 이미지 아버지 등은 한 생명을 무너뜨립니다. 이 일단계의 사랑이 부족하게 자란 사람이 다음 주어진 단계가 친구 간에 우정이라는 코스로 하나님은 인도하십니다. 성인이 되면 이성간에 사랑을 하게 만들어서 한 가정을 다시 이루게 만드셔서 창조사역을 이어가게 하십니다.
부모에게서 친구에게서 이성간에 사랑을 통하여 사랑을 배우고 다시 자신의 자녀에게 사랑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원래의 목적에 잘 따라가고 있으며 하나님이 가르쳐 주고 싶은 사랑은 그보다 한단계 높은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바로 사랑할 수 없는 사람까지도 사랑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배우는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라”라는 말씀을 순종하기 위하여 이 코스를 밟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그 사랑의 최고의 표시가 십자가에서 아들을 죽게 하신 사랑이며 우리도 그 사랑의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사랑을 통하여 생명이 살아나게 하는 일을 오늘도 배우는 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을 배우지 못한 사람은 사랑을 할줄 모르기에 아무도 그 사람을 좋아하지 않으며 그 사람은 외롭고 우울합니다. 일생동안 사랑을 단 한번도 받아보지 못해서 불쌍한 사람으로 살아온 한분의 인생이야기를 듣고 그 영혼을 향한 뜨거운 사랑과 연민을 느끼며 그 인생의 이이ㅑ기를 경청했습니다.
한 젊은 남녀가 가정을 이루어 칠남매를 두었습니다. 이 가정은 그리 궁색하게 살지 않았기에 칠남매 중에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재산을 가지고 사업을 한다고 결혼 후에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이 둘째 아들은 어수룩해서 곧 아버지의 재산을 모두 날렸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탕자의 아버지는 그런 아들을 받아들이고 잔치를 베풀어 주었으나 이아들의 엄마는 그때부터 아들의 명칭을 “저 원수 덩어리”라고 불렀습니다.
원수 덩어리라고 불리는 그 아들에게는 네 명의 자녀가 있었습니다. 굶는 것을 밥먹듯이 하여서 며칠을 굶고 초등학교에 갔다가 도저히 어지러워서 선생님께 말도 안하고 집에 돌아온적이 있었다고 회고를 합니다. 그리고 중학교를 올라가게 되자 초등학교도 당시에는 무상이 아니고 적은 학비를 내었는데 그것을 못내서 학교에서 집에 가서 가지고 오라고 선생님께 돌려보낸 것을 당한적도 많은데 중학교는 꿈도 꿀 수가 없었습니다.
서울에서 사업을 그럭저럭 하는 동생에게 아버지는 아들이 똑똑하니까 중학교 공부를 시켜 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마음이 너그러운 동생은 지방에서 조카를 서울로 데리고 와서 공부를 시켰습니다.
문제는 바로 할머니였습니다. 친손자인데도 재산을 다 날린 원수 덩어리의 아들이라고 그렇게 미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얼마나 구박을 하는지 그 집은 마치 지옥과 같았습니다. 방학을 맞아 부산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서울로 올라 가려고 하면 마치 지옥으로 들어가는 기분이었습니다. 지금도 친할머니의 꿈을 가끔 꾸면 마치 그때의 악몽이 다시 살아나는 것 같을 정도로 할머니는 손자를 미워했습니다. 어린 소년은 생각하기를 할머니가 차라리 자신이 교통사고라도 나서 죽기를 바라는 심정일 것이라고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소년은 생각하기를 이 모든 것이 돈 때문이라고 생각하여 이를 악물고 돈을 벌어서 복수 하는 길만이 본인이 가야 할 길이라고 다짐에 또 다짐을 했습니다.
그후 일본 유학을 떠났습니다. 그곳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생을 하며 공부를 했습니다. 가정교사 노릇을 하기도 하고 온천에 나무를 어깨에 매어 나르는 일도 했스니다. 오직 목표는 돈을 벌어 잘 사는 것이었습니다. 좋은 학교를 졸업하고 일본회사에 취직을 하였고 수입도 한국직장보다 좋게 받았으며 더 확실한 미래를 위하여 재력이 있는 아내와 결혼을 했습니다. 이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져 간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 둘이 번 돈으로 재산은 증식이 되었습니다.
친할머니에게 구박덩어리여서 돈을 벌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할머니 대신 아내에게 구박은 여전히 받고 살았습니다. 자신보다 훨씬 수입이 좋은 아내는 남편을 항상 우습게 취급했습니다. 그러니까 자녀들에게도 아빠의 위신은 땅에 떨어진 상태로 살아왔습니다. 그러다가 49 세에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그후 여전해 재력이 있는 아내에게 더 구박덩어리로 살게 되었습니다.
일생동안 피해자의 입장에서 사랑을 받아 본적이 없는 그분은 자신의 아내도 자녀들도 또 예쁜 손자들도 사랑할 줄을 모르는 사람이 되어 그렇게 일생을 외롭게 살게 되었습니다. 돈만 있으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될 줄 알았는데 돈으로 영혼은 배부르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 긴이야기를 들으며 일찍 진정으로 예수님을 만났으면 할머니에 대한 용서를 배웠을 것이고 그 상처에서 자유 할수 있었을 것인데 라는 안타까움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만났으면 자신이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존귀한 존재라는 것을 알았을 터인데 라는 마음으로 예수의 사랑을 힘껏 전했습니다. 지금이라도 그 긴 인생의 시간을 다 보냈지만 구원의 기쁨으로 자유함을 얻을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인생에서 사랑을 배우며 사는것이 사랑의 하나님과 살아갈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