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과 함께 하는 여선교사님(64세)
아래글은 한 의사 선생님이 추천하고 싶은 여선교사님의 글을 보내왔는데 주님의 임재가 강력함이 무슬림 나라에서 일어난 감동깊은 이야기들이라 일부 같이 감동받고 배우기 위해 여기에 올렸습니다.
이야기 1
고려인 알라의 여동생 나리사는 후잔에 도착한 후 처음으로 내가 기도해준 사람이었다. 알라가 오른쪽 다리의 염증으로 잘 걷지 못하는 여동생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해서 간절히 기도해 주었다. 다음날 아침, 나리사는 전화로 피고름이 흐르던 다리가 깨끗해졌다고 알려왔다. 얼마나 기쁘던지 "하나님, 감사합니다"를 100번도 넘게 외쳤다. 이후 나리사는 헌신적으로 교회 일을 도왔다.
1994 년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교회 설립 허가를 받기 위해 경찰서에 갈 때 나리사가 동행했다. 경찰서 안에 역겨운 냄새가 진동해 순서 기다리기가 힘겨웠다. 긴 의자에 앉아 있는데 모슬렘 전통복을 입은 한 남자가 자꾸 옆으로 다가앉았다. 내가 피해도 그 남자는 계속 다가앉았다.
"가까이 오지 말아요."
나리사가 야단을 쳤지만 그 사람은 "난 이슬람 지도자인데 저 여자에게서 사람을 끄는 이상한 힘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나리사는 "저 분은 기도로 병을 고치는 사람이다. 당신과는 다르다"고 말했다. 그런데 나리사의 이 말이 온 동네에 퍼져 다음 주일, 많은 사람들이 교회로 나오는 기적이 벌어졌다. 7명의 성도로 시작한 교회에 사람들은 줄지어 들어왔다. 그것도 들것에 실려서 또는 업혀서 환자들이 많이 왔다. 속으로 겁이 났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말씀으로 설교했다. 한인회장인 세라핌이 통역을 하겠다고 나섰다. 그런데 설교를 하다 보니 뭔가는 모르겠지만 세라핌이 다른 말을 하는 것 같았다. "공산당이 전쟁에서 이겼고, 김일성 주석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는 나쁜 의도를 숨기고 통역을 자청했던 것이다.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서 찬송가 405장을 불렀다. 눈물이 났다. 말이 안 통한다는 것이 너무나 답답했다. 울면서 찬송하며 속으로 하나님을 원망했다. 그런데 울다 고개를 드니 모든 사람이 다 일어나서 울고 있었다. 그들이 왜 우는지는 몰랐다. 아마도 내가 불쌍해서 우는 것 같았다. 그런데 웬일인가? 이들이 방언을 하며 손을 들고, 또 어떤 이는 가슴을 치며, 어떤 이는 춤을 추는 것이었다. 더 놀라운 일은 들것에 실려온 사람이 일어서는 것이었다. 성령의 역사에 너무나 놀랐다. 예배가 끝나자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몰려와 입을 맞추고 포옹을 해서 당황했다.
이야기 2
선교지의 하루는 유수처럼 빨랐다. 그래도 어떤 날은 고국이 그리워 시간이 멈춰버린 날도 있다. '하나님 저는 이 나라 말도 잘 못하는데 언제 이 민족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요?' 교회에 나와 풀 죽은 모습으로 성경을 읽었다.
그때 갑자기 한 성경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28:18∼20)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는 말씀이 가슴에 요동쳤다. 학교를 다닐 수 없는 가정환경 속에서 교육을 받게 하시며 '이때를 위해 내가 너를 준비했노라'고 말씀하셨던 주님을 기억했다. 선교사의 꿈도 없던 나를 이곳에 보내신 주님을 기억하고 다시 새 힘을 얻었다.
태권도를 선교의 도구로 젊은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리라는 계획을 좀 더 구체화시켰다. 이들에게 신학교육을 시켜 목회자로 길러낼 계획을 세웠다. 태권도를 배우기 위해 몰려오는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수련 조건으로 교회출석을 의무화했다. 또 단급심사 때 성경암송과 신앙기준을 척도로 삼았다. 순박한 신앙 때문인지 복음의 흡수력은 엄청나 기적과 회심이 잇따랐다. 4개월 만에 1000여명이 모이는 믿기지 않는 일이 일어났다.
1994 년 7월, 45명이 21일 동안 합숙하며 성경공부하는 '미스바' 집회를 가졌다. 45명 전원이 성령충만하고 방언을 받았다. 두 달 후 '아카데미'를 개설했다. 참가자들은 40일 동안 말씀공부와 찬양, 태권도 훈련을 받았다. 지역주민들의 호응은 놀라웠다. 술 담배 마약을 하는 젊은이들이 동네에서 사라졌다며 교회에 고마워했다
이야기 3
1997 년 4월. '하나님께서 강권적으로 나를 이곳에 보냈는데 이 나라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를 골똘히 생각했다. 이 나라는 1991년 소련에서 독립한 후 몇 년 동안은 아무것도 생산하지 못했다. 새것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었다. 아파트 벽이 너무 지저분해서 도배하고 싶었지만, 같은 무늬의 벽지를 다량으로 구할 수 없었다. 이집 저집에서 벽지를 사다가 서로 다른 무늬로 도배하고 한참 웃은 일이 있다. 경제적으로 이런 상황이지만 교육을 시키면 이 나라의 상황이 나아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나라 최초의 사립학교 설립을 결심했다. 모든 건물은 국가소유였다. 2000평의 운동장, 교실 24개가 있는 2층 건물을 600달러에 20년 임대하기로 계약했다. 기아대책기구와 여의도순복음교회 김영준 장로님, 이순생 권사님의 도움으로 난방시설, 화장실 등을 전면 리모델링했다.
교사들을 모집했다. 국가가 주는 월급의 5배를 주기로 했다. 장기간으로 볼 때 학교 운영비를 한국의 선교헌금으로는 충당하기 힘들 것 같았다. 그래서 기도하면서 모험을 결심했다. 학생수업료를 매월 20달러로 정했다. 이 금액을 받지 않으면 학교를 운영할 수 없다는 계산이 나왔기 때문이다. 당시 시장 월급이 3달러였을 때였다. 사람들은 교육비가 비싸서 누가 오겠느냐고 걱정했다.
그러나 학생 100명을 모집했는데 423명이 지원했다. 러시아어로 배우는 학급, 타직어로 배우는 학급으로 나누고 교사들도 두 분류로 나누었다. 가난한 나라 타지키스탄에서 고액의 교육비를 낼 수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에 현지인도, 정부 관계자들도 놀랐다. 국민의 5%는 아주 잘사는 것 같았다.
선민학교의 교사, 학생 모집도 무난히 끝났는데 예기치 못한 일이 생겼다. 이 나라는 매년 정부로부터 학교운영 허가를 받아야 했다. 문교부의 한 장학관이 전화를 해왔다. 학교 벽에 페인트로 쓴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합니다'를 지우지 않으면 라이선스를 발급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 말은 진리인데 어떻게 지울 수 있습니까. 나는 지울 수 없습니다."
"그러면 지웠다가 라이선스를 받고 다시 쓰면 되잖소."
학교 교사 43명, 교장 1명, 교감 3명 전 직원이 63명인데 모두 나에게 그 글씨를 지울 것을 간청했다. 미술교사는 지웠다가 허가를 받은 후 더 아름답게 써놓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난 라이선스를 못 받는 일이 있어도 지울 수가 없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학교 라이선스 문제로 교사들과 갈등하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문교부 관계자는 "오늘 문교부 차관이 학교를 방문한다며 교문 앞에 나와 기다리라"고 했다.
문교부 차관은 친척 결혼식에 참석했다가 이 지역에 외국인이 세운 이 나라 최초의 사립학교가 있다고 해서 방문했다고 했다. 그가 웃으면서 한 다음 말에 내 가슴은 또 철렁 내려앉았다.
"교문 옆에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누가 써 놓았지요?"
'주님, 이 학교를 세운 것이 제 뜻이었나요? 하나님의 뜻이었나요? 하나님 뜻으로 세워졌다고 믿고 담대히 나가겠습니다.' 나 역시 웃는 얼굴로 "왜 그 말이 잘못 되었습니까?"라고 물었다.
"아닙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내전으로 많은 사람이 마음에 상처를 입었기에 이런 포근한 말이 필요합니다. 참 잘 썼습니다."
그의 말이 믿어지지 않아 다시 한 번 얘기해 달라고 했다.
"아주 좋아요. 시설도 좋고요. 이런 학교를 세워주어 고맙습니다."
나는 차관을 수행했던 장학사 두 명에게 "들었지? 알았지?"라는 눈짓을 보냈다. 그들은 얼굴을 돌렸다. 다음날 라이선스를 받을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믿고 나가면 반드시 통쾌하게 해결해 주시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셨다.
선민학교는 일주일에 한 번씩 성경을 가르쳤다. 모슬렘 국가에서 어떻게 성경을 가르칠 수 있을까? 이 나라 구소련 시대의 과목 중에 '하나님은 없다'는 과목이 있다. 이것을 이용해 우리는 성경과 코란을 가르치겠다고 약속했다. 교사 자격증이 있는 교회 전도사들이 성경을 가르치고 있다. 문교부에서 "언제 코란을 가르칠거냐?"고 물으면 "성경 교육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보고한다. 사실 성경에서 배울 것이 얼마나 많은가. '선민학교에 가면 예수쟁이가 된다며 모슬렘 강경파들은 자녀를 그 학교에 보내지 않는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그래서인지 자녀가 선민학교에 다니는 것을 공개하지 않는 사람도 많았다.
교직원의 40%가 예수를 믿는 사람이다. 교사들은 부유층 자녀들을 가르치고, 월급도 타지키스탄 안에서 제일 많이 받기 때문에 다른 학교 교사들보다 경제적으로 넉넉했다. 또 졸업생의 99%가 대학에 진학하고 있으며 그 중 70%는 외국 대학으로 갔다.
해마다 크리스마스 때는 전 학년 발표회를 갖는다. 학부형, 문교부 장관과 지도자급들을 초청한다.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 퍼지고 성탄 축하송을 할 때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곤 했다. 지난해 12월25일에는 더 감사함이 넘쳤다. 1학년부터 시작해 11학년을 졸업하는 학생들이 선민학교의 역사를 연극으로 무대에 올렸다. 남녀학생 대표가 큰 화환을 내게 걸어주며 "이런 학교를 세워주어 감사하다"고 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선민학교는 날로 번창했다. 경시대회가 있을 때마다 우리 학교가 1등을 차지했다. 이 나라 독립기념일 행사가 있을 때마다 후잔시로부터 한국적인 것을 준비해달라는 요청을 받아 부채춤과 소고춤을 선보이기도 했다. 복음성가에 맞추어 소고춤을 추고 태권도 시범도 보였다. 주지사, 시장들, 귀빈들과 시민들에게 환대를 받았다. 입학식, 졸업식에는 태극기를 게양하고 애국가를 연주했다. 하나님의 딸로서 대한민국 국민으로 감사를 드렸다. 내가 올림픽에 나가 금메달을 딴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