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
한 민족을 전도하려면 언어가 되지 않으면 절대 한계를 넘지 못합니다. 우리 선교회에서는 학생들을 많이 유치하고 키우기 때문에 다른 선교회에서 할수 없는 다민족의 통역이 가능하고 부흥을 기대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 선교회에 언어가 되지 않는 베트남 사람들은 전도해 와도 오래 다니고 변화되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언어는 가나안 땅을 차지 하기 위한 요단강을 건너는 필수 무기입니다.
힘보레이는 캄보디아에서 신대교수님이 초청해서 학생으로 왔습니다. 후원이 생각보다 힘들어서 일학기를 마치고 다시 캄보디아로 돌려보낼 생각도 하고 있다고 손광수집사님이 우리 교회에 데리고 와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힘보레이가 손광수집사님하고 같은 교회에 다니고 있었던것이 그를 초청한 신대교수님이 그 교회 교인이었기 대문입니다.
처음 그가 우리 교회에 온 날은 추수감사절날이었습니다. 한국에 처음와서 겨울을 맞게 되면서 추수감사절에 잠바를 주니까 같이 가자고 김영훈전도사님의 초청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 겨울 잠바는 힘보레이를 한국의 겨울로부터 뿐만 아니라 한국의 외로운 나라에서 그를 보호해주는 방패가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아직 깊지 않은 신앙의 초보인 상담학과 학생이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생글거리며 밝게 웃는 그의 얼굴을 쳐다보며 푸른 꿈을 가지고 해외에 왔을 힘보레이가 일학기만 마치고 돌아가야 한다면 많은 상처를 받게 될 것 같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가 그렇게 자국으로 돌아갈 경우 예수님도 믿지 않게 될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학생들의 장학금을 지급하고 난 후 그를 위한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 응답으로 전화한통을 받았습니다. 금년에는 선교헌금을 얼마씩 작정하여 일년에 두 번으로 나누어서 보내시겠다는 것입니다. 선교사가 세운 이화대학의 졸업생인 그분에게 그 대학도 선교사가 한 명으로 시작한 학교이기에 저도 외국인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데 쓰겠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잠시 후 다시 전화를 해서 은행이라고 하시면서 일 년치를 모두 보내셨다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그날 아침에 출근하기 전에 전날 밤 보너스릍 타서 보통 달보다 더 많은 액수의 헌금을 우리 딸이 봉투에 주고 갔습니다. 하루에 힘보레이의 등록금이 모두 마련되었습니다.
수천 명의 교인이 모이는 교회에서 한명의 후원이 어렵지만 하나님이 하시면 단번에 장대비를 내릴수가 있는것입니다.
힘보레이가 교회를 처음 올 때까지 우리 교회에는 캄보디아 사람들이 한 명도 없었는데 캄보디아 사람들에게 소문이 났다고 합니다. 자국민중에 신학교 학생이 있다고 알려져서 한명 두명 그리고 여러명이 오게 되어 캄보디아 민족들이 구원을 얻게 되는 길이 열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전도의 여왕”이라고 저희 남편이 별명을 부쳐준 윤권사님이 캄보디아 사람들이 있는 공장에 힘보레이를 대등해서 가서 전도를 하니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고 특히 이 나라 사람들도 의료 서비스가 필요한 많은 사람들이 교회로 와서 많은 부흥을 가져왔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사람은 캄보디아로 돌아간 속힝형제입니다. 그는 우리 선교회 주선으로 큰 병원에서 사시 수술을 했으나 얼마후 다시 눈이 잘 안보였습니다. 힘보레이와 함께 기도해 달라고 우리에게 요청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눈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가 떠날 때 송별인사를 통해 자신의 체험을 이야기 하며 여기 앉아 있는 사람들은 진실로 예수를 믿으라고 힘보레이 통역을 통해 전도인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캄보디아에 돌아가서도 신앙생활을 잘 함으로 그의 눈은 계속 치유를 유지한다고 전해왔습니다.
힘보레이는 석사 과정을 마치고 지금은 박사과정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캄보디아에 돌아가서 큰 부흥을 가져 오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