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
외국인들은 한국에 오면 배우는 첫번째 단어가 ‘“빨리 빨리’” 하라는 말과 “‘소주”’라는 말을 배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빨리 빨리’ 라는 말은 급한 것이 없던 이들의 풍습에 급한 성격의 한국인들이 옆에서 하는 말이고 또 ‘소주’는 물보다 싼값으로 즐길 수 있는 술의 문화에서 배운 말입니다. 그래서 자국에서 술을 마시지 않던 이들도 한국에 오면 술이 취해서 있는 외국인들을 많이 봅니다. 그 중에서 참피온급을 매기려면 태국이 일 순위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점심시간의 막간을 이용해서도 놀음을 하고 주일 아침부터 술을 마셔서 교회에 온다고 건성으로 대답한 그들을 찾아가보면 이미 만취하여 거동도 힘든 것을 보곤 합니다.
게다가 전에 태국의 유명한 바닷가에서 난생 처음으로 모두 윗몸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여인들과 게이들을 본적이 있습니다. 서양여자들도 그곳이 마치 자신의 몸매를 과시하듯이 몸에 살짝 가린 팬티만 입고 활보를 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아침에 그 아름다운 바닷가에서 창문을 열면 호텔 창문가로 전날 마셔댄 술 냄새가 진동하는 경험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다른 나라 에서 온 외국인중에 에이즈로 숨을 거둔 사람도 태국을 거쳐 한국에 들어왔다고 자신의 행로를 이야기 해 준 적이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는 그 구원을 펼치사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한 형제의 간증을 나누고 싶다. 꼬맷은 태국어 통역을 담당해 주고 있으며 우리 선교회의 집사님입니다.
그리스도안에서 변화된 새로운 피조물
이렇게 저의 간증을 나눌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저는 2001년6월에 한국에 와서4년 동안 일을 했고 태국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합법적으로 2006년3월에 같은 공장에서 일을 하게 되어 앞으로3년 더 한국에서 머물 수 있게 되었습니다. 8개월 반 만에 돌아왔어도 사장님은 저가 쓰던 방을 그대로 잠 구어 두었다가 사용하게 해 주어서 전혀 낯설지 않게 다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와 같은 경우는 거의 드물고 특히 저의 나이가 한국나이로44 세가 되었기에 한국 법에 노동자는 40세 미만으로 올 수 있게 되어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고만 말할 수 있겠습니다.
저는 23 세에 처음 해외에서 일을 시작하였습니다. 첫 번째 나라인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3년을 일하였고 두 번째는 바레인에서 2년 그리고 일본에서 4년을 일하였습니다. 태국으로 돌아왔을 때는 33세 살이었습니다. 그때 나는 젊은 나이로 돈을 많이 번 것이 매우 자랑스러웠습니다. 아름다운 집과, 차, 그리고 통장에는 US$ 30,000이 저금되어 있었습니다. 나는 이제는 더 이상 해외로 가는 일은 여행이나 가고 일을 하러 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다짐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계획은 오직 꿈 이었을 뿐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내가 태국 권투를 중개하는 텔레비전을 보고 내기에 걸기를 하면서부터 모든 것은 변화되었습니다. 그 내기는 빨간색과 파란색을 드는 아주 간단한 일이었습니다. 또한 나는 매달1일과 16일 에 복권 판매 브로커로 일했습니다. 나는 마치 바람둥이처럼 술 마시고 여자들과 노는 생활을 일 삼았습니다. 그때까지 나는 미혼이었기에 우리 집에는 많은 친구와 방문객들이 들끓었습니다. 우연히 그 당시 누군가 교회에 가자고 하였지만 매 주일 아침마다 권투 시합에 내기를 하느라고 거절하였습니다. 나는 마치 백만장자의 아들처럼 돈을 써 버려서 저금은 곧 바닥이 났습니다.
그런 연고로3년 만에 땅과, 집, 차 그리고 친구들 모두 다 잃어버렸습니다. 내가 가진 것이라고는 빚만 남게 되었습니다. 이 어려운 시간에 나를 이해하고 사랑하여 돈도 아무것도 없는 나와 결혼을 해준 나의 아내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만일 그때 나의 아내가 없었다면 이렇게 간증을 할 수도 없었을 뿐더러 다시 용기를 내어 한국에 일을 하러 오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내가 한국에 오지 않았더라면 하나님을 믿게 될 기회가 없었을 것입니다.
요즈음 나는 하나님께서 얼마나 나와 나의 가족을 사랑하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나와 나의 아내의 기도를 들어주시기 때문에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없이는 우리는 살아 갈수도 없기에 후회스러운 것은 좀더 일찍 젊은 날에 하나님을 믿지 않은 것입니다.
저가 떠나고 공장에 인력이 부족하여 유공자 자녀로 귀국하여 한국 귀하를 기다리고 있는 중국동포를 공장에서 채용하였다고 일년 동안 저의 사장님은 외국인 초청자격이 정지되어 있었습니다. 한데 저가 다시 한국으로 올 수 있는 6개월이 되자 한국 법이 바뀌어서 사장님은 저를 다시 초청했고 나이가 40세 미만으로 정해졌지만 사장님이 직접 좋다고 초청하여 모든 장애물을 없게 하고 한국에 돌아올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2001년 한국에 왔을 때 처음에 한국에 적응하기는 저가 생각한대로 쉽지가 않았습니다. 한국어도 못할뿐더러 처음 가진 직장에서는 월급도 제대로 주지 않았을 뿐더러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친구도 없고 여러 가지로 너무 힘들어서 집으로 되돌아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며칠 후에 어떤 사람이 저를 교회로 데려가 주었습니다. 그곳에서 마마킴을 처음으로 만났습니다. 그분은 제게 용기를 심어 주었고 평안한 마음을 갖게 해주면서 예수님과 성경말씀을 가르쳐 주기 시작하였습니다. 한국을 오기 전에는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였습니다.
예배 후에 저는 성경책을 숙소로 가지고 와서 읽기 시작하였고 계속해서 주일날이면 예배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골로새서4:2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는 말씀과 같이 저는 기도를 배웠고 기도 하면서 사는 삶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또한 감사하면서 신앙으로 하나님을 믿고 사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저의 삶은 날마다 변화되어 가고 있고 예수님을 저의 인생에 가운데 모시고 살기에 더 이상 외롭지가 않았습니다. 오랫동안 성경공부를 한 것도 아니고 영적으로 아직 어리지만 하나님께서는 저를 사랑하는 것을 느꼈고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저는 거듭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고 후에 영광스럽게 세례도 받았습니다. 아직 완전한 성숙한 모습은 아니라도 주님을 따르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자 하는 열망이 저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마마킴은 제게 좋은 사장님이 있는 공장으로 소개해 주었습니다. 그곳은 월급도 잘 주고 저녁에는6시30 분이면 일이 끝나는 좋은 곳이었습니다. 한데 그곳은 저를 시험하는 훈련의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젊은 한국인이 매일 저를 때리고 멱살을 붙잡고 소주 사오라고 괴롭히는 것이었습니다. 작업 도중에도 무릎을 발로 차고 괴롭혔습니다. 저는 태국사람 중에서 키도 크고 체격이 좋은 편이라 같이 싸우면 그 한국인은 작고 어려서 얼마든지 때려줄 수 있었습니다.
마마킴은 같이 기도하면서 이겨나가자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한국인이 공장을 떠나서 좋아했더니 다시 들어와서 전과 같이 괴롭혔습니다. 어린 나이의 사람에게 그렇게 당하는 것은 참으로 모욕적이었습니다.
인격이 참으로 좋으신 사장님은 제게 사장님을 믿고 신뢰하며 참아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제게 주님이 안 계셨더라면 참을 수 없는 일이었으나 인내와 용서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때 참지 못하고 그 공장을 나갔더라면 나이가 많은 저를 사장님이 다시 초청해 주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진심으로 주님께 감사 드립니다. 그때 얼마 기간이 지난 후 그 한국인은 여기 저기 떠 돌다가 다시는 그 공장에 오지 않았습니다.
처음 저가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였을 때는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었습니다. 그러나 세례를 받고 얼마 후에 담배를 먼저 끊게 되었습니다. 술은 조금씩 마셨는데 그런 결과로 혈압이 200까지 올라가서 하루는 헛소리를 하고 물체가 몇 개가 보여 병원에 실려갔습니다. 그 이후로 술도 완전히 끊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후 혈압은 정상으로 돌아왔고 건강한 몸을 가지게 되어 영과 육이 구원을 받은 것을 감사했습니다.
2005 년도에 태국으로 돌아가서 가족들에게 저를 구원하신 예수님과 한국에서 생긴 모든 일들을 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고후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저의 간증을 듣는 모든 분들은 오늘 이 시간에 마음 문을 여시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 하십시오. 그러면 주님이 준비하신 새로운 풍성한 삶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