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
토요일 아침, 다음 월요일부터는 꼭 직장을 구해달라는 인도 형제 티파리의 부탁을 놓고 기도하면서 한 공장을 방문하였습니다. 그 공장 사장님은 사람이 없어서 구하던 중 3명을 쓰겠다고 약속을 하여서 나는 기쁜 마음으로 달려와서 티파리에게 다음 주부터 일을 하게 되었다고 하나님께서 기도응답을 하셨다고 알려 주었습니다. 티파리는 기뻐서 돌아갔는데. 점심때 그 사장님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며칠 동안 벼룩시장 신문에 구인광고를 하여도 오지 않아서 외국인을 쓴다고 하였는데 아까 다녀가신 다음에 한국 사람들이 왔답니다. 그래서 외국인을 쓴다는 약속을 취소할게요." 나는 순간 맥이 탁 빠지면서 그 크리스천 사장님에게 부탁을 하였습니다. 그분이 먼저 약속을 하셨고 신앙인으로서 선교를 생각해서, 사정이 그러면 한 명이라도 써 줄 수가 없느냐고 사정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애원을 하고 부탁을 하여도 안 된다고 자신의 약속을 번복하였습니다. 나는 울면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어떻게 크리스천이 이럴 수가 있습니까? 나는 힌두교 신자를 전도하기 위하여 이 일을 하면서 그 형제에게 이미 하나님이 기도를 응답하셨다고 하였는데 이제 무어라고 해요? 온다고 약속한 그 한국 사람들이 오지 않게 해주세요." 약간 심술궂은 기도를 했습니다.
그 다음날, 주일 예배를 마치고 식당으로 내려가니 네 명의 못 보던 남자들이 내려 왔습니다. 그분들이 누구냐고 물어보니 한국인 노숙자들이라고 하는데 꼭 한국 사람같이 생긴 그들은 몽골사람 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직업을 찾아 공장들을 찾아 가다가 점심때가 되어 배가 고파서 요기를 하려고 찾아왔던 것입니다.
오갈 데 없는 그들은 그날 외국인예배까지 드리고 교회에서 자게 되었습니다. 직장을 구할 때까지 임시로 자기로 하였는데 수요예배 때 가보니 종일 공장을 찾아서 일산에서 금촌 까지 걸어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추운 날 너무 걷다 보니 힘도 들고 양말도 구멍이 났다고 하면서 한숨을 쉬었습니다. 나는 그 다음날은 내가 공장에 같이 차로 안내를 하겠다고 하고 집에 와서 그들의 직장을 위해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들의 직장을 놓고 기도하면서 바로 이틀 전, 한 공장에서는 몽골 사람을 한 명 쓰겠다고 하였으나 내가 주일날 일 시킨다는 이유로 거절을 한곳을 생각하였습니다. 주일날 일 시키는 데는 취업을 알선하지 않기로 해놓고 네명이나 직업을 못 구하고 있으니 생각을 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날 새벽기도를 하면서 나의 잘못된 생각을 회개하고 절대로 세상적인 것과 타협하지 않기로 다시 결심을 하고 주님만을 의지하면서 그들의 문제를 주께 말씀 드렸습니다. 10시에 같이 나가 보기로 하였는데 9시40분에 전화가 왔습니다.
"여기 00 공장입니다. 사람 좀 구해줄 수 있나요?"
"그곳이 어디지요?" 하도 많은 공장을 찾아 다녔기에 그냥 이야기 하면 알 수가 없었다.
"여기 지난번 토요일에 외국인을 쓴다고 한 공장 이예요. 한국사람이 온다고 약속을 하고 삼일이 지나도 오지 않아서 그러는데 다시 3명만 보내 줄 수 있어요?" 나는 속으로 쾌차를 불렀습니다. 바로 그렇게 기도를 했으니까요. 그러나 내색은 하지 않고 웃음을 참으면서 말했습니다.
"세명은 안되고 네명을 쓰시면 데려다 드릴께요" 그래서 네명이 모두 취업이 되었습니다. 나와 같이 공장을 찾아 보겠다고 기다리던 몽골 형제 들에게 취업이 된 것을 알려주니 그들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였습니다.
나는 운전을 하고 가면서 그들에게 강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도 하나님께서 자신을 인도하신 것을 체험적으로 잘 느꼈습니다. 할렐루야! 그중 한명의 이름은 바다라고 하는데 바다를 통하여 많은 몽골인 들이 교회를 찾게 되었습니다.
몽골사람들 또하 의료 서비스를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찾게 되었습니다. 캄바르트는 한국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아서 영어는 물론 한국말도 하지 못해서 전혀 의사 소통이 되지 않았습니다. 형인 볼드바르트와 같이 일을 하였는데 하루는 형이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그만 음주 운전하는 여자 운전사에게 치어서 다리를 다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혼자 공장에 남은 캄바르트는 일 년 전 부인을 상처하고 여섯살짜리 딸을 누나 집에 맡겨 놓고 돈을 벌러 왔는데 형마저 병원에 입원을 하니 외로움에 술을 많이 마시고 아침에 못 일어나곤 하다가 공장에서 해고당했습니다. 가시 같이 마른 그의 체격을 가지고 하루는 교회에 와서 쓰러졌습니다. 주일 날 아침 그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예배를 마치고 부랴부랴 병원에 입원을 시키니 폐병 말기였습니다. 일주일을 일산복음병원의 독실에 입원을 시켰는데 이는 약을 전혀 먹지 않은 상태라 전염 될 염려가 있다는 병원의 권고 때문이었습니다.
처음 병원에 입원을 하니 주사가 아프다고 뽑아 버리고 계속 울고 성질만 내었습니다. 병원에서는 이렇게 성질이 고약한 환자는 처음 보았다고 그가 협조하지 않는다고 계속 전화가 왔습니다. 대화가 통하지 않기에 손짓 발짓을 하면서 이야기 하면 "알았어요" 하다가 내가 집에 오면 다시 그러는 것이었습니다. 장기 입원을 요하는 결핵이기에 서대문시립병원으로 옮겨야 했습니다.
그 병원은 88년부터 환우들을 방문하여 잘 아는 병원이었습니다. 독실에 입원한 결과 일주일 만에 약150만원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일년을 입원하는 경우 대단한 금액이 나올 것을 예상해야 했습니다.
삼층에 있는 무료병동에 있는 환우들은 내가 데리고 온 외국인이라고 사랑을 나누워 주었습니다. 과일도 가져 다 주고 다른 먹을 것을 가져 다 주면서 따뜻하게 대해주니 첫날 눈물을 흘리면서 외로워 하던 캄바르트는 미소를 띄우고 자신은 괜찮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에 들어오는 자는 모두 복 있는 사람들입니다. 들어오기만 하면 그곳에서 생명을 구할 수 있고 희망과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지불하셨으니까. 캄바르트는 그곳에서 약 반년을 입원하고 퇴원하였습니다. 이런 모든 일들이 몽골사람들을 하나님 앞에 인도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한 부부가 주의 종으로 헌신하게 되었으니 현재 부인은 신대원 공부를 마치고 돌아간 나라와 남편 마그나이입니다. 이미 몽골에는 교회가 지어져 가고 있습니다. 그 교회는 울란 바트르 몽공 수도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2009 년 1 월부터 나라 전도사님 집에서 예배가 시작되었고 이제 교회 건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또한 더러너고비 도 산샨드 고 라는사막 출신인 어뜨마는 이제 신대원에서 공부하기 시작하여 자신의 고향에 복음을 전할 예정이니 몽골은 도시와 지방에서 복음이 전해질 예정입니다.
2009 년 8 월에 몽골을 방문하였을때 이곳에서 세례를 받은 부부, 병 고침을 받았던 형제, 쉼터에서 묵던 자매들, 이곳 쉼터에 현재 목고 있는 몽골 사람들의 가족등 모두 30 여명과 같이 예배를 드릴때 너무나 감격스러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