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2월부터 섬겨왔던 외국인 노동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찬양합니다. 한국의 외국인 노동자 사역을 단일민족만 하는 교회가 더 많습니다. 단일민족도 처음에는 여러교회에서 많이 시작하였지만 단순하게 생각했던 이 사역이 그들이 직면하고 있는 많은 어려움들 - 예를 들면 질병, 체불임금, 그들의 개인적인 고민들 - 을 교회로 가지고 들어오자 대부분 이 넘어서야 할 산들을 넘지 못하고 문을 닫은 곳이 너무나 많습니다.
다 민족선교를 하는 경우에 한 민족이 우수하면 다른 민족은 소수 이다가 없어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교회에는 여러 다민족이 고루 고루 믿음이 아름답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교회에 한 번도 가본적이 없던 그들이. 새 신자는 전도하여 태워 가지고 오지만 오래된 정규교인들은 보통 두 세번 버스를 갈아타고 교회에 출석합니다. 가장 어렵게 나오는 형제는 버스를 다섯 번이나 갈아타고 교회에 오고 있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보통 공장이 외지에 있기 때문에 버스정류장까지 걸어 나오는데도 20 –30 분은 보통입니다. 교회 오는데 두 시간이 넘는 곳에서 오고 게다가 그 귀한 돈을 벌어 십일조를 꼬박 꼬박 하는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합니다. 술잔을 기울였던 손으로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하게 되었고 삶 자체가 경건한 삶으로 변화가 되었습니다.
각 나라별로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간단히 정리해 보았습니다. 모든 하나님 일이 하나님께서 직접 하시는 것을 보고 기뻐하는 것이 우리의 일입니다.
인도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
뺀데이는 한국에 도착한 다음날 친구 더베의 컨테이너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나이는 42세 이나 나이보다 더 늙어 보였습니다. 그 다음날 공장에 취업을 시켜주었는데 그날 오후에 그를 찾아가 봐야 한다는 강한 마음을 성령이 주셨습니다.
그곳에 도착하니 이게 웬일인가? 멀쩡했던 뺀데이는 다리가 퉁퉁 부어 곪아서 빨리 병원에 데려가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역시 하나님께서 가 보고 싶은 싸인을 주실 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을 확인하고 그날 병원에 바로 입원을 시켰습니다. 토요일 오후였으나 응급실에서 수술을 하고 병실로 입원을 했습니다. 영어도 한국어도 잘 통하지 않는 그를 두고 나오면서 다른 인도 형제들에게 그가 입원한 사실을 알려주고 병문안을 가보도록 하였습니다.
일주일 후에 퇴원을 하였으나 그 후 한 달 을 목발을 집고 통원 치료를 하게 되었습니다. 뺀데이는 한국에 처음 왔기에 한국음식이 맞지 않아서 거의 한국음식을 먹을 수가 없어서 인도 식으로 닭고기를 카레로 요리를 해서 가지고 가니 웃음이 만면하여서 식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힌두교인 뺀데이가 퇴원하여 병이 다 나아갈 무렵 매일 밤 교회에서 자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자신을 찾아오셨다는 것이었다습니. 하루도 아니고 연속적으로 찾아 오셔서 자기가 누워 있는 곳을 도시면서 나가셨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정말 좋으신 분이라고 짧은 언어로 이야기 하면서 "이샤모시(예수님), 이샤모시" 하면서 기도를 하였다고 손으로 이야기를 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병원에 갔던 금요일에 그 다음주부터 취업이 되어서 뺀데이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뺀데이는 공장에 데려다 주는 나에게 교회 오는 버스를 타는 방법을 물어 보았습니다. 공장에 가면서도 교회 오는 것을 제일 먼저 묻는 그가 몹시도 내게 기쁨을 주었습니다. 뺀데이가 혼자 일을 하면 한국어가 되지 않아서 힘이 드는데 그 공장에서 두 명이 필요하다고 사장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다른 인도 사람과 같이 일하게 해 줄려고 기도를 하면서 운전을 하고 오는데 식사동을 돌아 나오면서 기도를 하면서 갔습니다. 한 외국인 형제가 지나가기에 늘 습관대로 차를 세우고 전도를 하였습니다. 그 전날 인도 형제 라키가 자기 친구 범마가 직업이 없다고 내게 직업을 부탁하였는데 길에서 만난 형제에게 이름이 무어냐고 물어보니 바로 그 범마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는 길에서 범마를 만나게 하시지? 전에 만난 적도 없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범마와 뺀데이는 한 공장에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말도 안 통하는 사람에게 복음을 어떻게 증거 하느냐고 믿을 수 없다는 질문을 많이 한다. 그것은 성령의 사역을 이해 못하는 말입니다.
"예수께서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할 수 있느니라 (막10:27)"
뺀데이가 완쾌되어 범마와 열심히 교회를 출석하자 마자 환자가 또 발생했습니다. 두번째 입원환자도 인도사람이었습니다. "마마,비키가 많이 아파요." 마침 휴가중인 남편과 딸과 함께 아침식사를 하는데 전화가 왔습니다. 이런경우 여느 때처럼, 식사를 마치지도 못하고 눈이 와서 미끄러운 길을 운전을 하고 비키가 있는 공장으로 달려갔습니다.
전에도 몸이 많이 아파 보이는 비키를 보고 병원에 가보자고 권하였지만 공장에서3명이 한 조 가되어 일을 하기 때문에 한 명이 빠지면 2명이 같이 쉬어야 한다고 허락을 하지 않았습다... 그래서 사장님에게 말씀을 드려보자고 비키에게 제안을 하고 하루는 사장님을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유로 쉬게 할 수가 없다고 거절 당하였는데 비키가 얼마나 아팠으면 소니를 통하여 전화를 한 것입니다.
눈이 와 길이 미끄러워서 운전하기가 조심스러우나, 비키의 공장은 산 밑에 위치하고 있어서 대중교통으로는 갈수가 없고 환자를 운반할 수가 없기에 미끄러운 길을 운전을 하여 갔습니다. 마음이 매우 급했습니다. 공장에 도착을 하여 그의 얼굴을 보니 얼굴이 창백하고 신음을 하고 있는데 영어도 한국어도 잘 못하는 비키에게 "내 손을 잡아요." 하고 위로하는 말 외에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급히 차를 운전하고 가는 동안에 비키가 혹시 암이나 심장병이 아닐까 걱정이 되어 병원이 어찌 그리 멀게 느껴졌는지.…
너무나 급해서 응급실로 달려들어갔습니다.미처 접수하지도 못하고 응급실로 달려 들어가서 비키를 누이고 접수하고 올 터이니 먼저 진찰을 부탁 드렸습니다.. 검사를 하면서 비키를 입원시키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의사선생님이 말씀하셔서. 입원을 시키고 검사한 결과 내가 우려하던 암이나 심장병은 아니고 맹장염이었습니다.
맹장염이라는 진단을 들으니 한편 안도의 숨을 내쉴 수가 있었습니다.비키는 며칠 입원을 하고 퇴원을 하게 되었고.비키의 친구들은 멀리 용인, 퇴계원 등에서 모두 병문안을 왔습니다. 그 친구들이 주일날 10명이 넘게 병원에 와 있었는데 모두 예수님은 참 좋으신 분이라고 하면서 교회의 예배에 참석을 하여 복음을 듣게 되었습니다. 비키의 입원은 이렇게 인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좋은 기회가 된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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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원하는 날도 또 다시 눈이 와서 길이 빙판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채용하신 119대원은 언제나 조이고 닦고 출동을 해야 하기에 미끄러운 길을 마다 않고 비키를 퇴원 시키러 병원에 갔다. 소문을 들은 인도사람들이 사방에서 교회로 몰려들었다.
그후에도 수 많은 환자들과 직업이 없는 인도인들을 도우면서 인도인들은 선교 시작인 초창기에 가장 많이 모이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후 법이 바뀌어 외국인 고용 비자가 생기면서 동남아 사람들이 많이 오기 때문에 인도사람들은 거의 없어졌습니다. 그러나 수 많은 복음은 들었고 보았던 그들이 자국으로 돌아가서 가족들에게 그들이 만났던 예수님을 전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한 인도형제는 자국으로 돌아간후에 이곳에서 인도를 잠시 방문하고 돌아오는 인도 사람편에 인도 성경을 자비로 사서 보내준것만을 보아도 우리는 그 열매가 헛된것이 아닌것을 믿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