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양을 주님의 품에 안겨 드리려면 상대가 어떤 포악무도하던 우리의 상식에 이해할 수 없는 대상이라도 주님이 피흘려서 생명 주시길 원하는 귀한 영혼이라는 마음이 없이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러한 전도는 한명도 못할 것입니다.
전도를 몇 명했느냐는 교회로 몇 명을 등록시켰느냐 에서 끝나는것이 아니고 그 한 영혼이 어두움에서 빛으로 옮겨지고 그 옮겨진 영혼이 또 다른 사람에게도 빛을 비출 수 있는 수준까지 되도록 먼저 사랑을 입은 우리가 도와주는 일을 하는 것이 모든 전도의 과정입니다.
잃어버렸던 양은 참으로 여러 가지 종류의 성품을 가지고 있습니다. 목자의 음성을 듣지 않고 마음대로 다녔었기에 처음에는 교회에 오다가도 옛 습성으로 돌아가려는 것을 많이 목격합니다. 그런 과정가운데서 우리가 인내하며 그들을 보살피고 하는 여러 가지 일들이 주님이 한 영혼을 사랑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우리가 배워 나가는 귀중한 사랑의 현장실습니다.
어제 마리나에게 저가 전화를 했을 때 오랜만에 제 전화를 받고 공손하게 다시 교회를 온다고 약속했습니다. 이 여인은 우리가 일 년치 집세를 내어주고 온 가족을 굶지 않고 살게 해 주었는데도 자신의 아들을 멍이 들도록 때리고 시설로 보내어서 지난번에 저가 갔을 때 그 아들을 안아 준 것이 분이 나서 얼마 전에 저가 먹을 것을 잔뜩 사가지고 갔을 때도 문을 열어주지 않았습니다. 옆에 있던 한국인 남편이 문을 열어 주어서 우리가 들어가니까 저와 박정화 전도사님을 보고는 방으로 들어가서 문을 잠그고 나와 보지를 않았습니다.
그날 남편이 집에 있는 것을 보고 명절이 다가왔는데 또 온가족이 굶고 있을까봐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틀 전에 쌀과 김 그리고 과일 한 상자를 경비실에 맡겨 놓았습니다. 저가 12층까지 올라가서 문을 안 열어 줄 경우 그집에 당장 필요한 물건들을 전달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제 윤권사님은 고기와 김치를 가기고 그 집을 다시 방문하니 전날 저가 전한 물건들은 그 집안에 들려져 있었고 눈물을 글썽이며 문을 열어 주더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윤권사님이 교회에서 서운한 것 있으면 사과를 한다고 하여 다시 마음 문이 열렸고 제가 전화를 하니 받았습니다.
“이번 주일날 차 가기고 갈 때 전화할 터이니 우리 같이 교회가고 예수님 잘 믿어요. 현주하고 예수님 잘 ale어야 살길이 있쟌어요?” 그녀도 공손하게 “네” 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왜 그런지 제가 눈물이 납니다.
오 년 전 만나서 지금까지 저에게 잃은 양 한 마리를 찾는 수업을 가르쳐 주고 있는 한 가족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이 집에 엄마가 요즈음 토요일 성경공부 모임에 나오는 것을 보고 와기가 그분이 전에 자신과 같이 갔던 집의 엄마가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이 당시 어릴 때 와기하고 같이 영어도 가르쳐 주고 아이들이 세상에서 삐뚤어지지 않게 사랑으로 성장하게 하기 위하여 갔었기 때문입니다.
그 아이들은 당시에는 어렸기에 만일 그때 아이들을 잘 돌볼수 있게 엄마가 협조를 했더라면 오늘날 학교가지 않고 속을 썩이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이 가정은 교회를 나오다 말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 가정과 단단한 끈을 묶도록 해 주십니다.
한 영혼을 바라볼 때 포기 하지 않는 주님의 사랑과 심정이 아니고는 그물이 찢어지는 경험은 하지 못할 것입니다. 또한 끝까지 같이 말씀과 기도로 주님께 붙어있는 포도나무의 원리를 어긋날 때 결코 알곡과 쭉정이를 가를 때 알곡으로 영글어 지지 않을것입니다. 알곡으로 천국에 들어가기 위하여서는 오직 주님께 붙어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모든 과정은 우리가 주님을 알아가는 사랑을 배워가는 과정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주님과 천국을 이루며 살아가기 위하여 배워야 할 필수 과목입니다. 그것은 곧 아가페 사랑입니다. “조건없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사랑”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