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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성한 공급자이신 하나님(2)

마마킴||조회 6,333

* 하나님께서 장학금을 공급하셨던 몇가지 이야기들*

처음 학생이 소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만큼의 액수를 주셨습니다. 저가 말씀드린 것처럼 적은 액수였는데도 처음에는 숨을 죽으며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미리 주시던 아니면 날짜를 마감하는 날에 주시던 지금은 당연히 시간을 넘기시지는 않는다는 확신을 가지고 당당하지만 처음에는 지켜보는 마음으로 긴장하며 있었습니다. 그렇게 마지막 날이 다 되었을 때 밤에 전화를 한통 받았습니다.

전화를 한 분은 서로 바쁘기 때문에 일 년에 한두 차례나 소식을 주고받을 정도인데 전화를 헌것입니다. “권사님, 제가 특별히 헌금을 좀 하고 싶은데요, 이 헌금은 좀 목적을 장학금에만 쓰고 싶은 헌금이거든요.” 라고 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런 목적으로 사용할게요.”라고 저는 기쁘게 대답을 하였습니다.

또 한 번은 정말 은행 마지막 마감 시간까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시간에 채워 지지 않으면 여태껏 하나님은 절대 실망 시키지 않으신다는 그것이 깨어지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그 마지막 순간에 “하나님께 약속을 지킬수 있어서 감사”라고 하면서 장학금을 보내 주었습니다. 그 보낸 분은 스스로 약속을 하나님께 한 액수를 할수 있던것에 감사했고 우리는 정확하게 그 액수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힘보레이는 한 학기를 지원하고 더 이상 할 수 없다고 다시 캄보디아로 돌려보낼까 생각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우리 학생으로 받아들이고는 우리 학생들 등록금은 이미 지불하였는데 그의 등록금을 위해 다시 기도했습니다. 그의 지원은 삼천 명이라는 교인인 그 교회에서 한번만 온 교인이 만원씩만 헌금을 하여도 한국까지 부푼 꿈을 안고 온 그를 실망 시키지 않고 삼년을 공부 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이 사람이 많다고 진행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많은 숫자의 교인들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하나님께 말씀드리니 오전 중으로 끝났습니다.

기도를 시작하자 한분이 전화를 해서 일 년에 두 번에 걸쳐서 얼마씩을 작정해서 하겠다고 연락을 하셨습니다. 저는 기뻐서 그분이 나온 이화여대도 선교사가 한명의 학생으로 시작하여 세계에서 가장 큰 여자 대학교를 만들었으며 우리는 그분이 보낸 헌금으로 빚을 갚는 마음으로 외국인 장학금을 주는데 사용하겠다고 하니 그 이야기를 듣고는 반년 치씩 보낸다고 하시더니 은행에 가서 일 년치를 송금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아침 출근을 하면서 우리 딸이 특별헌금을 더 하겠다고 하며 제게 맡져준 헌금을 합치니 힘보레이 등록금은 단번에 해결이 된 것입니다. 그렇게 시작한 힘보레이는 석사를 마친 것뿐 아니라 처음 상담학을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목회학으로 바꾸어 박사코스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이제 학생들이 이미 많아졌고 많은 액수가 필요한 상태였습니다. 등록금 마지막 말 저희 남편이 보너스를 타서 모두 충당하게 하셨고 금년에는 경기가 안 좋아서 보너스를 주지 않는다고 하더니 저가 하나님께 보너스를 받을 수 있어야 학생들 모두 장학금을 줄수 있다고 말씀드리니 지급이 안 된다고 하던 예상을 뒤엎고 작년보다 더 많이 지급되어 여전히 공부를 가르치는데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이것은 단지 몇가지 사례를 들었을 뿐이고 한번도 부족함이 없이 날마다 필요한 만큼 항상 넉넉하게 공급을 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 수 많은 외국인 환자들의 병원비를 공급해 주신 이야기들*

처음 선교회 문을 열자 마자 2000 년에는 아무도 정식 비자를 가지고 있는 외국인들이 없기에 모두 의료보험이 없는 환자들로 넘쳐났습니다. 첫 환자를 병원에 실고 가서 병원비를 지불하자 연이어서 소문에 소문을 듣고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환자들로 첫해부터 시작하여 현재까지 수백 병의 입원 수술환자가 선교회를 거쳐 간것 같습니다.

이들은 의료 보험숫가가 아니고 일반 숫가로 적용하기에 우리 한국인보다 몇 배가 비쌌고 이들의 작업장이 위험하고 더러운 작업장에서 하는 일들이기에 각종 생명이 위험한 병들에 걸리기 쉬웠습니다.

처음 우리도 이런 상황을 맞이하여 교사들과 회의를 여러 번 하였습니다. 어떤 기준으로 이들을 도울 것인가? 교회에 얼마 이상 나온 사람들을 선별하여 도울 것인가? 둡는다면 어느 정도를 도울 것인가? 병원은 어디를 거래해야 하는가? 이런 등등의 일뿐만 아니라 이 외국인들을 병원으로 데리고 다니는 일도 엄청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기도하며 생각하였지만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모두” “조건없이” “전액을 도와” 생명을 돌보기로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동시에 암환자가 두 명이 있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암환자가 가장 개인에게 병원비가 많이 들은 경우인데 한명은 4500 만원이 들었고 다른 한명은 천만원이 넘게 들었습니다.

지금 세월이 많이 흘러간 지금 “모두, 조건 없이” 환자들을 돕기로 한것은 성령이 주신 특별한 마음이었던 것을 고백하며 그런 마음을 주셨기에 하나님의 무한한 공급을 볼수 있는 현장에 있던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만약 교회에 나온 사람만, 교인 등록이 된 사람만, 일부만 돕는다, 아니면 의료 같은 것은 인한다, 이렇게 정했으면 우리는 그 풍성한 하나님을 보는 축복을 노쳐 버렸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고치고 치료하는 것을 기뻐하신다는 증거가 아버지의 집의 문을 두들기며 도움을 요청한 모두에게 치료비를 공급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왜 그렇게 중환자 들이 많이 몰려오는지 눈 코 뜰 새가 없었습니다. 온 몸에 고름이 흐르는 희귀병이 걸린 외국인, 간농양 환자, 손가락이 잘린 환자들이거나 뇌출혈을 일으킨 환자도 있고 폐결핵 등등 정말 셀수 없는 환자들이 아버지의 집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심지어는 병원에 입원하러 자기들끼리 가면서 우리 전화번호를 주고 병원 측에 요청하니까 병원에서는 우리에게 이 환자를 받아 주어도 우리가 병원비를 낼지를 묻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그때도 그 환자를 하나님이 보내신 귀한 영혼으로 받아들였고 치료를 해 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본인이 아픈 것뿐 아니라 친구들이 아파도 우리 선교회를 가르쳐 주니까 그야말로 아픈 사람들이 줄을 섰습니다. 우리는 우리 에게 찾아온 모든 환자를 맞이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어느 병원에 누워 있으면서 우리 도움이 필요하면 우리는 그곳을 찾아가서 그들을 도왔습니다.

이 일은 또한 우리 아버지가 얼마나 풍성하게 그들을 사랑하시며 채우시는가를 보여주신 일들이었고 우리는 그것을 눈으로 보는 기쁨이었습니다.

처음 젊은 이십대의 금발 청년인 루스란을 이대 동대문 병원에 입원 시켰을 때 원무과 직원이 암환자가 의료보험도 없이 얼마나 거금이 드는것을 아니까 우리에게 못을 받아 놓았습니다. “외국인 도와준다고 한국사람 괴롭히기 없기예요.” 라고 하는 것입니다. 저는 웃으면서 대답했습니다. “그런 일은 사전에 없을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그분이 거꾸로 우리에게 도움을 청해서 돕게 되었습니다. 방글라데시 어린이가 입원하고 퇴원을 하는 날 부모들이 돈이 없다고 하자 우리에게 그 병원비를 도와 줄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물론 도왔습니다.

천만 원이 넘게 들던 환자들도 많이 있었고 중환자실에 입원 했던 외국인들도 많았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그 시간들을 회고하니 이렇게 신이 나는 여행을 주님과 함께 할수 있어서 감사할뿐입니다.

사례 1

가장 신이 났던 이야기부터 해 보겠습니다. 왜 이 사람의 이야기를 하면 신이 나는가 하면 이 사람을 고쳐 주고 저가 인도네시아에 가서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닌데도 부모님이 아들의 목숨을 교회에서 살려 주었다고 하여 자진하여 교회를 다니시기 시작하였기 때문입니다.

데니는 이층에 있는 숙소를 올라가려다가 뒤로 넘어져서 머리뼈가 부러지고 피를 많이 흘려서 중환자실로 입원을 시켰습니다. 병원 측에서는 피가 폐로 흘러 들어가 호흡 곤난을 일으키고 곧 생명이 위독하여 세상을 떠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를 맡아서 치료를 하면 병원 측에서 생명이 위험하다고 하였는데 저가 어떻게 그 일을 감당할 것인가를 주위에서 걱정했습니다. 그리고 중환자실은 하루 하루 쌓이는 병실값이 눈덩이처럼 쌓이는 곳입니다.

그는 마치 죽은 사람처럼 머리 전체 붕대에 감겨 있었고 호스를 코에 끼고 숨을 쉬고 있었습니다. 온몸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고 주위 모든 사람이 그가 곧 죽을것으로 병원측을 포함하여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를 바라보면 두 가지 부담감이 보통 사람들에게 따릅니다. , 한 가지는 그가 죽을 것이라는 이야기들과 그의 눈덩이 같은 병원비라는 것이 바로 물위를 걸어오는 예수님과 풍랑을 보았을 때 빠져 들어가는 베드로의 믿음의 현실입니다.

주님만 바라 보았을 때 데니는 살아났고 데니의 부모님은 비자를 받아서 두 달 후에 한국에 오셨습니다. 많은 외국인 환자 중에서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습니다. 그 부모님은 두 달 전에 아들이 다쳤다는 소식을 들을 때부터 매일 저희 집에 전화를 해서 상태를 물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때부터 교회에 자진해서 나가기 시작하였고 그 어머니는 우리 교회에 와서 찬송가를 연주해 줄 정도 였습니다.

더 저를 놀라게 한 것은 그 아버지가 천만원이 넘는 병원비를 모두 가져 오신 것입니다. 데니의 아버지는 인도네시아에서 아주 부요한 사업가였고 그는 돈을 벌러 온것이 아니고 친구들이 한국에 오니까 왔다가 사고를 당한 것입니다.

그는 살아났을 뿐 아니라 저가 병원비를 전혀 부담될것이 없도록 하나님께서 해결하셨고 그 가족 구원까지 되는것을 보는 이런 특권이 있는데 무슨 고생이나 수고를 한다고 하겠습니까?

저는 다른 사람들이 볼때 그의 생명이 위독한 것과 병원비 때문에 근심하는 자 같아 보이나 항상 기뻐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사례 2

카자스탄에서 온 부부와 그분들의 아들 초등학생이 한국에서 살고 있는 가정이 있습니다. 초등학생 아들은 학교를 자전거로 통학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날 아침 학교에 자전거를 타고 가던 중에 교통사고가 났습니다. 이 부부는 저희 교회에 한 번도 온 적이 없지만 근처 대학병원 응급실에 아이를 옮기고는 제게 전화를 했습니다. 저는 그때 파주쪽에 공장을 가기 위해 운전을 하고 가던 중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그 전화를 받고 병원으로 핸들을 돌려서 가는 도중에 그 아버지는 여러분 제게 전화를 했습니다.

그는 우리 교회 잘 참석하고 있는 외국인의 이름을 대면서 그의 조카라고 하는 것입니다. 실지는 조카는 아니고 서로 아는 사이일 뿐인데 그렇게 이야기 하면 더 잘 도와 줄것이라고 생각하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우리는 거짓말을 하던 어떤 상황이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써 마땅히 할 일을 함으로써 복음을 전하는 계기가 되는 것을 보곤 합니다.

병원이 바로 보이는 옆에 신호들이 바뀌는 것을 기다리고 있는데 어느 교회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그때 부활절이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그 부활절 헌금 전액을 우리 선교회로 송금하였다는 것입니다. 병원에 도착하였을 때는 이미 병원비가 다 마련된 상태입니다.

사례 3

병원비가 어떤 때는 급히 마련이 되어야 하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시간을 가지고 준비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너무나 즐거운 것은 급할 때는 급한대로 천천히 해야 할때는 또 그렇게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한국인들도 꼭 필요한 분들에게는 함께 나누는데 한 가정에 부부에게 틀니를 이민희 선생님이 원가도 안 되는 돈으로 해 주셨습니다. 처음 남편 되시는 분의 틀니를 해 드릴 때 저는 먼저 우리가 돈을 내겠다고 말을 꺼낸 것이 아니고 속으로 우리가 저 돈을 내드렸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실비도 안 되는 돈이지만 그분께는 그 돈이 큰돈인 것을 알기 때문이었습니다. 저가 마음에 소원만 먹어도 하나님은 응답하시곤 했습니다. 집에 돌아오니 그 필요한 액수보다 넘치는 금액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아내 되시는 분도 동일하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로 부부 두분이 모두 틀니를 할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님이 오병이어를 일으키시려면*

병원비는 단지 몇 경우만 기록을 하였지만 실지 환자는 수백 명에 이르렀고 현재도 동일하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손길을 보며 계속 동일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이 글을 읽는 사람은 하나님이 언제나 공급하시니까 나도 전에 그렇게 해 보자 하고 결심을 하고 실천에 옮겼는데 아무 응답이 없었고 기도해도 소용이 없었다고 하나님께 불평을 하고 하나님은 영적인 것에만 관심이 있다고 단정을 짓는 분도 있을 수가 있겠습니다.

성경에 보면 모든 해답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명을 먹여서 오병이어의 기적이라고 우리는 부릅니다.

그때 주님께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자신이 먹으려고 가져 왔던 그 소년이 주님을 믿으며 또한 허기진 그들에게 별 대단한 것 아니고 아무 도움도 될 것이 아닌 정도 인 것을 주님께 드리지 않았으면 그 기적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요6:5-13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 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시니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가 오천 명쯤 되더라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은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그들이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

사르밧 과부가 마지막 먹고 죽으려고 했던 그것을 엘리야에게 내어 놓을 수 있는 결단이 그가 삼년 육개원동안 굶지 않고 오히려 살 수 있는 축복의 빌미가 되었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 분들에게 먼저 심을 것을 저가 권면합니다. 그러면 그분들은 그것을 할 여력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가난한 농부도 종자를 먹어버리면 수확할 것이 없습니다.

고후9:10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이 원리를 알기 때문에 우리 부부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주님의 손에 올려드리는 역할을 기쁘게 합니다. 언제나 주님의 손으로 들어가면 주님은 “친히 어떻게 하실것을” 기대하며 우리는 주님의 손만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