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으로써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2)
결혼하기 전에 저는 유한양행 비서실에서 근무를 했습니다. 유한양행을 세운 유일한 사장님이 사재를 헌납해서 세운 유한 공고가 있었는데 그곳 교장 선생님은 가끔 유한양행을 방문하곤 했습니다. 그분은 미국유학을 다녀오신 것 같았습니다. 가끔 제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그분이 들려준 이야기 중에 지금도 기억을 하고 그 가르쳐 준 이야기가 제게 소중한 가르침으로 남았고 실천하게 된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어린애들이 무엇을 아느냐고 하면서 좀 큰 다음에 교육을 시킨다고 하지만 세 살전에 한 사람의 인격은 다 형성이 되지. 서양사람들은 어릴때 교육을 더 잘 시키고 크면 인격적으로 대하는데 그 결과가 전혀 달라. 그들이 어린아이에게도 인격적인 대화를 하고 모든 것을 가르쳐 준단다.”
또한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 마음에 그렇게 합한 사람이라고 칭찬을 받던 다윗도 자녀들 때문에 고생을 한 이야기나 엘리 제사장이 자녀교육을 못시킨 결과 톡톡히 자신이 심은 대로 겨두는 이야기는 젊은 날에 제 마음에 깊은 교훈을 받았습니다. 어떤 분들은 우리가 하나님 일을 하면 하나님이 지키신다고 하면서 자녀를 내 팽개치듯 다니는데 성경의 교훈은 하나님이 맡겨준 자녀를 잘 키우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라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맡기셨는데 거꾸로 자신이 할 일을 하지 않고 하나님께 책임전가를 하는 것은 비 성경적입니다.
저는 아주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선교사역을 하게 되었는데 그런 가운데서도 성경의 가르침이나 유한공고 교장선생님이 가르쳐준 대로 자녀에게 하는 것도 또한 가정 일을 하는 것도 선교의 중요한 하나님의 일이라 생각을 하고 왔습니다. 그 일은 지금도 진행 중인데 매일 하루에 한번씩 자녀들에게 메일을 보내고 전화를 서로 주고 받고 외국에 있는 딸에게는 할수 없지만 아들에게는 일주일에 한번씩 가서 같이 성경공부를 하며 기도의 시간을 갖습니다.
저를 “싸부”라고 부르는 임전도사님은 말레이시아에 있을 때 정말 짦은 시간의 만남을 가졌을때 우리가 곧 한국으로 이사를 가게 되는 가운데도 이삿짐을 싸야 되는데 당시 초신자였던 시간에 제게 성경공부를 가르쳐 달라고 우리 집에서 진치고 있어서 그 정성이 감동적이라 한명을 놓고 가르쳤습니다. 십여년이 지난 지금 얼마전에 제게 그렇게 배우고 싶었던 이야기를 털어놓았습니다. 하루는 우리집에 전화를 걸었는데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우리 딸이 “엄마” 부르는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어떻게 부르는 목소리의 뉘앙스를 사람이 만들 수가 없는데 다정하게 들렸나 봅니다.
우리는 아들도 딸도 아주 친밀합니다. 하나님이 제게 부탁하신 귀한 자녀이고 제 소유도 아니면서 제가 최선을 다하지 못했을 때 지금쯤 그 당시 최선을 다 하지 못한 열매를 보며 지금 한탄을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섬기고 하나님 말씀을 전하여 성숙하게 되어가기를 바라는 한명 한명도 주님이 잃은 양을 안고 있는 주님의 모습을 상상하며 그리스도의 심장이 되기를 기도하며 나아갑니다.
지난번에 한 엄마가 자신의 자녀들에게 하는 것을 보면서 그 어린것들을 생각하면 얼마나 가슴이 아픈지 모릅니다. 이 엄마는 늘 어린것들한테 아침도 해 주지 않고 아이들을 때리면서 아이가 배 고프다고 다른집에 가서 그랬고 학교에 가서 무엇을 훔쳤다고 무섭게 위협을 하면서 때리는것입니다. 한참 나이에 학교갔다 오면 엄마가 먹을것을 챙겨주는것이 아니고 아이들이 와서 밥을 해서 엄마를 차려주고 집안일을 하게 하는것입니다. 그 어린것이 어느 날 어떤 성인으로 자랄것인가를 생각하면 가슴이 저녀 옵니다. 어린 심정에 얼마나 충격과 상처와 사람들을 불신하는 감정이 쌓일까 생각하니 답답합니다.
[엡6:4]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